"무서운 땅주인"…보상가 알아서 결정

- 주민평가제 도입 이후 감정평가 가격 격차 커져
- 시세보다 높게 보상, 분양가·주변 집값 끌어올려
- 보상제도 개선 시급…과다·과소 평가 논란 끝내야

2004년 5월 당시 1단계 토지보상이 시작된 경기 파주시 운정1·2지구는 축제 분위기였다. 시가를 훨씬 웃도는 높은 값에 보상가가 산정돼 땅주인들의 입은 귀에 걸렸다. 이곳의 3.3㎡당 평균 보상가는 130만원. 일부 대지의 경우 3.3㎡당 300만∼400만원에 보상이 이뤄지기도 했다.


파주시 운정1·2지구와 바로 맞닿아 있는 교하지구의 경우 이보다 3년 전인 2001년 5월 3.3㎡당 평균 52만원에 보상이 이뤄졌다. 3년새 평균 보상가가 2.5배 뛴 셈이다. 이 기간에 전국 공시지가의 연간 변동률이 평균 10% 안팎이었음을 감안하면 지나치게 가파른 오름세다.

같은 파주지역의 보상가가 크게 차이난 이유는 감정평가사가 재량으로 정하는 기타요인 보정기준 때문이다. 기타요인이란 토지물건의 개별(모양·면적 등)요인이나 지역요인에서 평가되지 않은 시장거래가격, 개발이익 등을 반영한 수치로 보정률이 높을수록 최종 보상평가액이 늘어난다.

기타요인 보정률이 1일 경우 표준지공시지가와 지가 변동률, 지역요인, 개별요인을 곱한 금액이 그대로 보상비로 책정되지만 기타요인 보정률을 2로 하면 보상비는 2배, 3이면 3배로 치솟는다.


수도권 보금자리주택지구, 신도시 등 공공개발 사업지에서 적정 보상가를 둘러싼 정부와 주민간 갈등이 잇따르고 있다. 땅주인들은 시가수준의 토지보상을 원하는 반면 정부는 개발이익이 반영되기 이전 공시지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수준에서 보상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어서다.

특히 감정평가업자 3명 가운데 1명을 주민이 추천하는 주민추천제도가 도입되면서 기타요인 보정률이 급등, 과다보상 문제가 심화됐다. 주민들이 의뢰한 감정평가업자가 적정수준보다 높은 보상가를 제시하면서 보상가가 급등하는 부작용을 낳고 있는 것이다.

◇주민추천제, 보상가 급등 주범(?)…시세보다 높게 보상하기도
현재 보상평가시스템은 사업시행자가 2명, 주민이 1명의 평가업자를 각각 추천해 총 3명의 감정평가사가 평가한 금액의 산술 평균치를 평가액으로 정한다. 당초에는 사업시행자만 2명의 감정평가사를 선정했으나 주민들의 이해관계를 반영하자는 취지에서 2003년부터 주민추천제가 시행됐다.

하지만 주민들이 추천한 감정평가사가 평가액이나 기타요인 보정률을 높게 제시하면서 토지보상가가 급등하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9일 토지주택연구원에 따르면 주민추천제 도입을 전후해 8개 사업지구의 평가가격 격차율을 조사한 결과 평가가격차 10% 초과 비율은 제도 도입 전 3.3%에서 32.2%로 10배나 급등했다. 이는 사업시행자가 추천한 감정평가사와 주민이 추천한 감정평가사간 평가액 차이가 매우 확대됐기 때문이다.

평가가격차 5∼10% 범위 비율도 주민추천제가 도입되기 전 10.9%에서 제도 도입 이후 31.9%로 대폭 상승했다. 반면 제도 도입 전 85.8%를 차지한 가격차 1∼5% 범위 비율은 도입 이후 35.9%로 급락했다.

한국감정원 관계자는 "주민추천제 도입 이후 책정된 파주 운정지구의 보상가가 앞서 보상한 교하지구보다 월등히 높은 것을 보면 평가액 격차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며 "주민들이 추천한 평가업자가 과도하게 높은 평가액을 제시해 시세 또는 그 이상 높게 보상이 이뤄진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정부－땅주인 갈등 증폭…보상제도 개선 시급
과다보상 등으로 매년 토지보상가가 치솟으면서 정부가 보상시스템 개선을 검토하고 있다. 과도한 고가보상은 조성원가와 분양가 상승, 주변 집값 상승 등으로 이어지는 만큼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감사원도 지난해 8월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대한 감사에서 일부 감정평가사가 해당 사업지구와 무관한 곳의 과다보상 선례나 개발이익이 반영된 인근 지역의 매매사례를 인용해 땅값을 높이 평가했다고 지적했다.

감정평가사가 기타요인 항목으로 보정할 수 있도록 정한 감정평가협회의 '보상평가지침'도 무효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현재 매매가격 또는 고가보상 전례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경기 하남시 일대 보금자리지구 주민들이 LH가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제시한 보상가격에 반발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전문가들은 △토지보상평가 심사위원회 설립 △기타요인 보정률 산정근거 제시 의무화 △해당 지역 최근 실거래자료 감정평가사에 열람 허용 등 제도개선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최근 토지보상작업에 참여한 한 감정평가사는 "감정평가업계의 과당경쟁으로 서로 보상가를 높게 책정해주겠다는 등 노골적인 제안이 잇따르고 있다"며 "주민추천제를 폐지하고 감정평가사 공공추천제 도입을 검토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최종 보상가를 좌우하는 기타요인 보정률 산정근거를 평가서에 구체적으로 기술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며 "보상수준에 대한 객관적인 기준을 명시하고 공평하게 보상이 이뤄지는 시스템을 갖춰야 과다·과소평가 논란을 끝낼 수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