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드라마에선 전화를 늦게 받을까?

드라마를 보다 문득 드는 생각 하나.
휴대폰 벨소리가 귀를 찌를만큼 울리는데도 왜 그렇게 전화를 늦게 받을까. , '저럴 거면 차라리 진동으로 해두지' 받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서 온 전화이거나, 다른 일을 하느라 벨소리를 못 들었을까.
실제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드라마 간접광고(PPL)의 힘이다.

드라마에 등장한 제품은 많은 시청자들의 관심을 받게 된다. 이 때문에 드라마 장면의 배경이나 소품에 제품을 노출시키거나 스토리에 소재로 활용하는 등의 협찬광고가 뒤따른다.


현실에서는 사람들이 다양한 휴대폰을 사용하지만 유독 드라마에서만 특정 회사 제품으로 도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광고주의 요구는 주인공의 휴대폰을 자사 제품으로 바꿔놓는 것에서 그치지는 않는다.

한 작품당 억대의 협찬금을 주는 휴대폰 제조사는 드라마 제작사 입장에선 VIP나 마찬가지. 그래서 까다로운 요구조건에 불만 없이 응한다.

한 시트콤 드라마의 경우 1억원의 협찬금을 받는 조건으로 주조연 배우들의 휴대폰을 모두 자사의 최신 제품으로 노출시켰다. 방영기간중 신제품이 출시되면 2개월에 1번씩 휴대폰을 바꿔준다는 조항도 계약에 포함됐다.


특히 매회 다른 스토리로 엮어지는 시트콤의 성격을 활용해 총 3회 이상 휴대폰을 주제로한 에피소드를 제작해 방영하고 자사 휴대폰의 우수성을 알릴 수 있는 기능 연출도 4회 이상 넣는 것을 조건으로 했다. 에피소드와 기능 연출은 건별로 각 1000만원과 500만원으로 협찬광고 단가를 산정했다. 휴대폰 클로즈업 역시 1당 50만원의 단가를 정했다.

과거 제품의 단순 노출과 협찬 자막 고지를 조건으로 2000만원의 협찬광고 단가가 산정돼있기는 하지만, 최근엔 이런 단순 PPL보다는 스토리에 제품을 녹여넣는 더 전략적인 PPL이 관행화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휴대폰 기능을 연출할 때는 1회당 10초 이상 지속돼야 한다는 등의 세부적인 조항도 뒤따른다.

휴대폰 컬러링의 경우도 15초 이상 노출돼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드라마 '시크릿가든'에서 문자메시지 알림음 "문자왓숑"이 반복 노출되고 주인공이 이를 따라하는 장면 등이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었던 것처럼, 드라마에서 노출되는 컬러링의 광고효과는 상당하다.

이때문에 드라마에서의 컬러링 협찬도 무시할수 없는 수준. 위에 언급된 시트콤의 경우도 컬러링 노출의 대가로 제작사가 1500만원을 협찬받았다.


광고주 입장에서는 드라마 스토리와 제품의 특징을 묶어 더 큰 광고효과를 누릴 수 있지만, 작가가 스토리 구성을 세심하게 하지 않는다면 시청자 입장에서는 뭔가 어색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한 두 번 울리면 받아야 될 전화가 광고주 요구에 부응하느라 15초 동안 시끄럽게 울려대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 드라마는 여주인공이 보통의 스마트폰보다 훨씬 큰 태블릿PC를 뺨에 대고 통화하는 장면을 방영한뒤 시청자 게시판에 시청자들이 거부감을 나타내는 글들이 다수 올라오기도 했다.

이는 협찬 광고주 요구로 통화하는 장면이 노출돼야 하지만 핸즈프리로 통화할 경우 제품이 노출되지 않아 제작사가 부득이 무리한(?) 설정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드라마 스토리에 녹아들고 주인공의 패션과 사용하는 제품들에 눈길을 돌리는 시청자들이 늘어날수록, 이들의 주머니를 노리는 광고주와 드라마 PPL은 점점 고도화돼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