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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 모아서, BTS 콘서트 가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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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형도 기자
  • 2019.06.20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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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기획-공생에서 찾는 행복 : 사회적기업 베어베터]발달장애인 월급날의 꿈 "우리와 다르지 않았다"

[편집자주] 웃는 모습을 보려면 함께 웃어야 합니다. 술을 마실 땐 잔을 마주쳐야 더 흥이 납니다. 추운 날엔 서로 붙어 있어야 더 따뜻하고, 달리기를 할 땐 같이 뛰어야 더 기운이 납니다. 홀로 살아 남으려 아등바등 치이다보니, 이런 이야기가 어쩐지 남의 일처럼 소원해졌습니다. 잘 살기만 하면 행복할 것 같았는데 마음은 더 외로워졌습니다. 그래서 스무살이 된 머니투데이가 함께 살아가는 일, 그 행복에 대해 생각해보려 합니다. 앞만 보며 달리느라 시야가 좁아졌다면, 주변을 돌아보고 더 행복해지고 싶다면, 여기서 함께 고민해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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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어베터 사원들이 휴게실 한쪽 벽에 적어 놓은 꿈들./사진=남형도 기자

"얼마 전에 여자친구 생일이었거든요. 900㎖(밀리리터)짜리 텀블러를 사줬어요."
"와, 좋아했어요?"(기자)
"엄청 좋아하더라고요!"

안준호씨(23·가명)와 얘길 나누고 있었다. 그에게 일한다는 의미가 뭔지에 대해. 그리고 대화는 자연스레 월급으로 이어졌다. 직장인들이 으레 다 그렇듯. 월급날만 손꼽아 기다리듯, 안씨 통장이 두둑해지는 날도 매달 25일이라 했다. 월급을 받으면 쓰고 싶은 게 많은 건 당연한 일. 20대 초반 청년들이 으레 그렇듯, 연애 얘기가 나왔다. 유독 수줍은 표정을 짓던 그는, 1년7개월 만났다는 여자친구 얘길 먼저 꺼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알았는데, 스무살이 되던 해 고백했단다. "너무 떨려서 말도 제대로 못했거든요. 근데 알았다고 하더라고요." 싱글벙글, 기분 좋은 설렘이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져 온다.

그에게 일한다는 건, 사랑하는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걸 해주는 것.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월급 받으면 데이트 가요. 맛있는 것도 먹고요." 그리고 놀이동산도 간다고 했다. 스릴 있는 놀이기구가 재밌단다. 그렇다고 무서운 걸 좋아하는 건 또 아니란다. "귀신의 집 이런 건 정말 싫어요." 그리고 안씨는 매운 걸 좋아하는데, 여자친구는 잘 못 먹는단다. 그럼 어떻게 하느냐고 물으니 "여자친구에게 맞춰야죠!"란 대답이 즉각 나온다. 영락 없이 사랑에 빠진, 건강한 청년이다.

특별한 얘길 기대한 건 아녔다. 일자리가 갖는 의미 말이다. 당연히 그럴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 평범한 말이 필요했다. 발달장애인들도 일자리가 필요하다는 얘길 하기 위해서. 왜냐하면, 아직도 많은 이들이 발달장애인들은 일자리가 없어도 괜찮은 것처럼 여기기 때문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런 생각조차 안하고 사는 이들이 많다.

그래서 발달장애인 220명이 일하고, 전 직원 중 이들 비율이 80%에 달하는 사회적기업 '베어베터' 직원들 얘길 6월 5일과 10일에 걸쳐 들어봤다. 발달장애인들에게 일한다는 의미가 뭔지 말이다.
여자친구 사진을 자랑하는 베어베터 사원 안준호씨(23, 가명). 둘이 정말 예쁘게 멋지게 잘 어울렸다./사진=남형도 기자
여자친구 사진을 자랑하는 베어베터 사원 안준호씨(23, 가명). 둘이 정말 예쁘게 멋지게 잘 어울렸다./사진=남형도 기자

돈을 벌어 좋아하는 일에 기꺼이 쓰는 것. 베어베터 직원들도 같은 맘이라 했다. 서경훈씨(21·가명)는 방탄소년단(BTS) 콘서트에 가고 싶단다. 특히 "R(로얄)석에서 공연을 꼭 보고 싶다"고 했다. 힙합을 좋아해서 고등래퍼(Mnet 랩 경연 프로그램) 등을 즐겨봤다던 그는, 음악 듣는 것에 관심이 많단다. 서씨는 "월급을 모아서라도, 꼭 BTS 콘서트에 가고 싶다"고 했다.

하선웅씨(23·가명)는 특별한 취미는 없는데, 먹는 걸 좋아한다고 했다. 음식은 돈까스를 좋아하고, 특히 과자를 무척 좋아한다고 했다. 특히 '바나나킥'이나 '땅콩샌드', '빠다코코낫' 같은 달달한 과자가 좋단다. 회사에도 좀 사다 놓았느냐고 물었더니, "근무 시간에는 과자를 먹지 않는다"며 책임 강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씨는 월급을 받으면, 부모님에게 다 드린 뒤 용돈을 받아 쓴단다. 그에게 월급날은, 과자를 맘껏 먹을 수 있는, '행복한 날'이다. 일하는 기쁨 또한 그래서 달콤한 것일지.

애니메이션 마니아인 장인호씨(24·가명)에게 일은, '피규어'를 살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다. 그가 무척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은 해적들이 나오는 '원피스(ONE PIECE)'. 그중에서도 '롤로노아 조로'란 주인공을 특히 좋아해, 피규어를 많이 모았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요즘도 주말이나 쉬는 날이면, 홍대·합정쪽에 피규어 쇼핑을 하러 간다. 일주일에 두세개씩은 모은다고 했다. 애니메이션을 볼 수 있는 사이트를 결제하는 데에도 월급을 쓴다. 장씨는 "애니메이션 덕분에 일할 맛이 난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하는 순간엔, 눈빛이 유독 반짝거렸다.

베어베터 휴게실 한편에 붙어 있는 '소원판'에는 직원들의 다양한 꿈이 담겨 있었다. 이런 내용들이었다.
선글라스를 낀 채 멋진 포즈를 뽐내는 베어베터 사원./사진=남형도 기자
선글라스를 낀 채 멋진 포즈를 뽐내는 베어베터 사원./사진=남형도 기자

"아이들을 낳아서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이모씨)
"서해선(기차)을 타보고 싶어요."(염모씨)
"아파트도 사고 싶습니다."(이모씨)
"돈을 많이 벌어서 친구와 여행 같이 가고 싶습니다."(최모씨)
"버스 운전면허를 따서 운전해보고 싶어요."(정모씨)
"남자친구가 빨리 생겨서 놀이공원 데이트를 하고 싶습니다."(전모씨)

함께 일하는 비장애인 매니저들도 이들의 꿈을 지지하고 있다. 처음엔 발달장애인 사원들과 일하는 걸 상상하지 못했던 이들이다. 하지만 같이 호흡을 맞춰가며 지금은 선입견도 벗게 됐다. 어떤 부분은 배우는 것도 많단다.
"월급 모아서, BTS 콘서트 가려고요!"

입사한 지 2년쯤 됐다는 김민형 인쇄팀 매니저는 "장애인들과 일한 경험이 없어 좀 걱정됐는데, 막상 일해보니 워낙 시스템이 잘 잡혀 있어서 힘든 게 별로 없었다"며 "제가 못 잡은 실수를 사원들이 '매니저님, 그거 아니에요' 하면서 잡아주기도 한다. 워낙 숙련된 분들"이라고 했다. 플라워팀 매니저도 "근조 리본 같은 경우는 제가 사원님들 만큼 못 접는다"며 "개인 차는 있지만, 특별히 발달장애인이라고 못하는 일은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사원들 교육을 맡고 있는 박지은 매니저는 "이들도 일하고 싶고, 돈 벌고 싶고, 비장애인들과 다를 게 하나도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런 것도 해낸다, 이런 게 아니고 그냥 정말 다를 게 없다"며 "그래서 장애를 극복했다는 말이 싫다"고 했다.

모두가 함께 사는 방법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고, 같이 행복하면 안되냐고 되묻는 박 매니저의 말이 오래도록 마음을 울렸다.



  • 남형도
    남형도 human@mt.co.kr

    쓰레기를 치우는 아주머니께서 쓰레기통에 앉아 쉬시는 걸 보고 기자가 됐습니다. 시선에서 소외된 곳을 크게 떠들어 작은 변화라도 만들겠다면서요. 8년이 지난 지금도 그 마음 간직하려 노력합니다. 좋은 제보 언제든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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