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계 부채비율 미스터리

"차입금이 늘어도 부채비율은 떨어진다." 통상적인 흐름과 거꾸로 가는 현상이 조선업계에서 나타나고 있다. 국내 조선사들은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신규 계약이 급감해 필요자금을 외부에서 대거 조달했으나 부채비율은 되레 하락했다.

19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대형 조선업체들의 외부차입금 규모는 지난 2년새 급증했다.


현대중공업 (128,800원 ▼700 -0.54%)의 외부차입금 규모는 지난해 9월 말 현재 3조1701억원으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친 2008년 말(33억원)에 비해 무려 1000배 가까이 늘었다. 삼성중공업 (9,380원 ▼50 -0.53%)도 같은 기간 3조1031억원 늘었고 대우조선 (30,950원 ▼250 -0.80%)해양과 STX (8,120원 ▲220 +2.78%)조선해양도 각각 1조8349억원, 1조5116억원 증가했다.

▲대형 조선사 부채비율 추이

이처럼 외부차입이 늘어난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신규 수주가 급감한 영향이 컸다. 조선사는 통상 수주계약과 동시에 계약금액의 20%를 선수금으로 받는데 신규 수주가 줄면 필요자금을 회사채 발행 등을 통해 외부에서 조달해야 한다.

반면 부채비율은 하락했다. STX조선의 경우 2008년 6월 말 1478.9%에서 지난해 9월말 330.3%로 급락했다. 같은 기간 현대중공업도 351.8%에서 123.5%로, 삼성중공업은 1396.5%에서 420.3%, 대우조선은 1573.3%에서 291.4%로 각각 떨어졌다.


이는 신규 수주 후 받는 선수금과 중도금이 선박이 인도될 때까지 부채로 처리되는 탓이다. 수주가 줄면서 선수금과 중도금도 축소돼 부채비율이 하락한 것이다. 황인태 중앙대 교수(경영학)는 "조선업계의 부채비율은 호황일 때 높아지고 반대로 불황이면 하락하는 양상을 보인다"면서 "부채비율에만 주목하면 설비투자를 억제해 기업의 장기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업계에서도 금융위기 당시 신용평가회사들이 국내 조선사의 부채비율을 문제삼은 점을 들어 보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를테면 총자산 대비 차입금 비중을 나타내는 총차입금의존도나 부채비율 산정 때 부채를 자본이 아닌 자산으로 나누는 부채자산비율을 보완지표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실제 삼성중공업을 보면 부채비율이 2008년 말 1022%에서 2009년 611%, 지난해 9월 말 420% 등으로 호황일수록 높아지고 불황일수록 하락하는 양상을 보였다. 그러나 부채자산비율을 보면 각각 91%, 86%, 84% 등으로 안정적인 추세였다.

회계법인 관계자는 "조선업체 현황을 제대로 보려면 부채자산비율을 보완적으로 활용하는 게 적절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