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개헌 논의하자고?" 싸늘한 한나라당 여론

"정치가 죽어 있는 상황인데, 이제 와서 개헌하자고요? 그 진정성을 누가 믿겠습니까"(김성식 의원)

"지난 3년 간 개헌문제를 다루지 않다가 국회의원 임기를 1년 남짓 남긴 상황에서 뒤늦게 개헌논의를 하려고 하는데, 차기 대권주자가 가시화된 지금 가능하겠어요?"(홍준표 최고위원)


당 지도부의 개헌 추진 작업에 한나라당 내 여론이 급속히 식어가고 있다. 당 지도부가 개헌을 논의하기 위한 의원총회를 열겠다고 밀어붙이자 반발 여론도 더욱 거세지고 있다. 친이(친 이명박)계 의원들이 개헌 회동을 가졌다는 사실은 여기에 기름을 끼얹었다.

김성식 의원은 20일 머니투데이 기자와 만나 "개헌이 필요하다는 주장에는 동의한다"면서도 "문제는 지금에서야 주장하는 게 문제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 의원은 "개헌이라는 고도의 정치적 행동을 추진하려면 우선 정치가 복원돼야 한다"며 "청와대가 인사 등 모든 사안에 대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면서 정치가 죽었는데, 어떻게 개헌을 논의하겠냐"고 지적했다.

이어 "이럴 경우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며 "국민들 입장에서도 구제역과 물가 급등 등 시급한 문제를 제쳐두고 개헌을 추진하면 곱게 보지 않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성태 의원은 "개헌 논의의 주체가 없던 상황에서 갑자기 논의하자는 것은 이해할 수가 없다"며 "개헌과 관련해 아무 것도 준비되지 않은 상황인데, 설을 앞둔 지금 민생 현장을 버리고 개헌을 논의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성식, 김성태 의원이 속해있는 소장파 의원 모임인 '민본21'은 이날 회의를 갖고 개헌 의총 개최를 반대하기로 뜻을 모았다. 민본21은 김무성 원내대표를 찾아 개헌 의총을 연기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소장파 의원들만이 개헌에 반대 목소리를 내는 것은 아니다. 홍준표 최고위원은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차기 대권주자가 가시화된 지금 개헌이 성사될 수 있겠느냐"며 "지난 3년 간 개헌문제를 다루지 않다가 이제 국회의원 임기를 1년 남짓 남긴 상황에서 뒤늦게 개헌논의를 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나경원 최고위원도 "지금 개헌을 하는 것은 약속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의도로 보일 수가 있다"며 "우리를 위한 개헌이 될 수 있다는 점, 또 하나의 줄 세우기가 된다는 점에서 국민의 부정적인 시선을 받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정권 의원은 머니투데이와 통화에서 "개헌의 필요성에는 동의하지만, 정치적 여건을 볼 때 이명박 대통령 임기 내 개헌이 가능한지 의문스럽다"며 "개헌 논의는 소모적인 정치 논쟁만 가져올 뿐"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당 지도부는 개헌 관련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안상수 대표는 "개헌 논의는 지난 국회에서 모든 정당이 함께 한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라고 주장했고, 김무성 원내대표는 개헌 반대 여론에 불편한 심기를 내비치며 "예정대로 오는 25일 개헌문제를 논의할 의원총회를 열겠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당내 친이계 의원 40명은 지난 18일 회동을 갖고 개헌 문제를 논의했다. 친이계 모임인 '함께 내일로' 회원이 주축이 된 이 모임에는 이재오 특임장관 등이 참석했다. 한 참석자는 "개헌에 대한 논의 자체는 필요하기 때문에 개헌 의총이 열릴 수 있도록 뜻을 모으자는 결론이 났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