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득자 눈치 보여 이번에도 '누더기 건보료' 못 바꾸나?

머니투데이

김명룡 기자
이지현 기자

정부가 온 국민이 이해당사자인 건강보험료 부과체계를 이번만큼은 바꿀 수 있을까. 보건복지부는 16일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 방안을 기자들에게 구체적으로 설명했지만 미진한 대목은 한 둘이 아니다.

특히 건강보험 가입자를 현행처럼 △직장가입자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 △지역가입자(자영업자)로 고수하는 상황에서는 부과체계 개선은 크게 기대할 것이 없다는 반응이 많다. 실직이나 은퇴, 취업 등으로 자격이 달라지면 보험료 조건도 들쑥날쑥 달라져 가입자 잡음이 끊이지 않는 구조다. 이를 보완하려고 여러 가지 부대조건을 붙이다보니 건보료 부과체계는 사실상 누더기가 됐다.

그런데도 정부가 이날 설명한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선 기획단'(이하 기획단)의 기본 방향은 직장-지역-피부양자를 그대로 고수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한옥 골조는 그대로 두고 아파트를 짓겠다고 나서고 있다"고 비판했다.

◇건강보험이 만든 현대판 신분제 =건보료 부과체계를 혁신적으로 바꾸려면 '직장-지역-피부양자'의 기본 틀부터 과감히 없애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기획단은 이 틀을 끝내 없애지 않기로 했다. 사회적 합의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기획단 회의 내내 소득중심의 단일 보험료를 부과하는 방안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진행됐다"며 "재정효과와 가입자 부담 등을 토대로 확인했지만 전 국민의 소득 파악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고 단일 보험료 전환 시 부담이 늘어나는 국민이 많다는 문제점이 제기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획단 내부에서는 전혀 다른 목소리도 들린다. 익명을 요구한 기획단 관계자는 "현행 건강보험제도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점이 지역가입자와 직장가입자의 구분에서 비롯됐다는 것은 기획단에서도 충분히 공감대가 형성됐다"며 "(기획단이) 어떤 방안을 내놓더라도 건보료 부담이 늘어나는 사람들은 불만을 제기할 것이기 때문에 이참에 아예 가입자 구분을 없애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기획단 관계자는 "가입자 단일화 이후 재정 손실은 일시적으로 국고 지원 등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며 "하지만 지금처럼 건보료 저항이 무서워 이 기본 틀을 없애지 못하면 영원히 누더기가 되고 가입자 저항에 끌려 다닐 것"이라고 말했다.

◇건보료도 철저하게 소득에 부과하라=이참에 재산에 부과하던 건보료 비율을 크게 줄이는 것도 시급하다. 현재 지역가입자의 보험료 수입 중 성별과 연령에 부과하는 건보료는 2조898억원, 주택·토지 등 재산에는 2조8341억원, 자동차에는 4008억원이 각각 붙는다. 전체 지역가입자 건보료 수입의 75%를 차지한다.

주거용 주택이나 소형자동차에도 건보료를 부과하다보니 지역가입자들은 늘상 건보료 부담을 호소한다. 건강보험 민원의 대부분이 지역가입자에서 나오는 이유다. 60~70대 지역가입자들이 위장 취업을 하거나 1인 사업장에 가짜 직원을 고용해 직장가입자로 전환하는 백태도 같은 맥락이다.

피부양자에게는 건보료를 한 푼도 부과하지 않는 틀도 과감히 깨야 한다. 지난해 직장가입자 덕분에 건보료를 한 푼도 내지 않는 피부양자만 2040만명에 달한다.

이중 소득이 있는 사람 숫자는 파악조차 어렵다. 현행 건보료 부과기준에 따라 매년 이자소득을 3999만원이나 올려도 자식이 직장에 다니면 건보료를 낼 필요가 없다.

반면 직장 다니는 자식이 없어 스스로 생계를 꾸려가는 실업자나 은퇴자, 영세자영업자 등 취약계층은 꼬박꼬박 건보료를 내고 있다. 2011년 기준 직장가입자의 세대 당 소득은 3859만원인데 반해 지역가입자의 소득은 786만원. 반면 건보료는 직장가입자가 세대당 월평균 9만2565원을 내고, 지역가입자가 7만7783원씩 낸다. 소득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은 건보료 격차다.

기획단 관계자는 "재산 부과 건보료는 명쾌하게 드러나는 소득이 없다보니 재산으로 소득을 추정하는 것"이라며 "하지만 아예 소득이 없는 사람과 소득이 있는 사람은 분명히 구분해서 건보료를 물려야 한다"고 말했다.

◇장기 플랜 세워라=물론 전 국민이 이해당사자인 건보료를 단 번에 바꾸는 것은 진통이 클 수 있다. 한 푼도 내지 않던 건보료를 내야 하는 피부양자나 월급 외 임대와 배당 소득이 많은 직장인들은 크게 저항할 수 있다.

그러나 일례로 2012년 기준 월급 외에 연 7200만원 초과 소득을 올리는 직장인은 3만2000명이다. 현재는 이들에게만 추가 건보료를 매기고 있지만 앞으로 이 범위는 더욱 확대돼야 한다. 전문가들은 "지금 복지부의 행태는 마치 고소득층 반발이 무서워 건보료 혁신을 피하는 것 같다"며 "가입자를 단일화하고 5년~10년 후를 내다보는 단계적인 로드맵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