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기업 M&A, 우리가 중국보다 못할 리 없는데

/그래픽=김현정 디자이너

# "중국 하이얼의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 가전사업부문 인수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삼성전자 관계자)", "GE 가전사업부문을 인수할 필요성조차 없었다(LG전자 사장)"

지난 19일(현지시간) 중국 최대 가전업체인 하이얼의 미국 제너널일렉트릭(GE) 가전사업부문 54억불(6조5600억원) 인수 발표가 나오자, 국내에선 우리 가전업체가 중국기업에 물먹었다는 둥 우리가 인수했어야 했다는 둥 이런저런 말들이 분분했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76,800원 ▲500 +0.66%)와 LG전자 모두 별다른 영향이 없을 거라며 겉으로는 애써 태연한 반응을 보였다. 심지어 GE 가전사업부문은 우리의 위협상대가 아니라며 인수의 필요성 자체를 느끼지 못한다고 폄하하기도 했다.

국내 많은 전문가들도 한결같이 하이얼의 GE 가전사업부문 인수 뉴스에 놀라면서도 직접적인 영향은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리고 과거 스웨덴 일렉트로룩스(Electrolux)의 사례와 같이 삼성전자나 LG전자 (90,700원 ▲100 +0.11%)의 인수도 결국 미국의 반대(반독점 이유)로 무산됐을 거라는 발빠른 분석을 내놓았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를 바짝 뒤쫓아 오고 있는 중국기업들은 이미 10여 년 전부터 글로벌 IT기업 M&A에 적극 나서고 있다. 중국 PC업체인 레노바(Lenova)는 2005년 IBM PC사업부를 18억불에 전격적으로 인수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10년 뒤 레노바는 전세계 PC시장에서 당당히 1위에 올랐다.


레노바는 2014년 IBM 서버(server)사업부를 21억불에 인수하고 구글 스마트폰사업부인 모토롤라모빌리티도 29불에 인수하면서 해외 M&A를 통한 성장 전략을 멈추지 않았다. 중국 칭화유니그룹 자회사도 2015년 미국 하드디스크업체 웨스턴디지털의 지분 15%를 38억불에 인수했다.

그런데 중국기업들이 이처럼 과감히 해외기업 M&A 전략을 추진하는 걸 보면서 '왜 우리 기업들은 해외기업 M&A에 소극적일까?'라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중국기업들에 비해 기술이나 경영 모든 측면에서 우리 기업들이 못할 리가 없는데도 말이다.

# "레노바는 IBM PC사업부 인수로 상당한 성장통(growing pains)을 겪었습니다. 다들 우리에게 뱀(=레노바)이 코끼리(=IBM)를 집어 삼킨 형국이라고 평했습니다(레노바 회장)"

양 위안칭(Yang Yuanqing) 레노바 회장은 지난해 미국의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레노바와 IBM PC사업부의 융합이 초창기에 매우 힘들었음을 솔직히 털어 놓았다. 실제로 레노바가 IBM PC사업부를 인수할 당시만 해도 레노바는 중국 밖에선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고, 레노바 경영진도 글로벌 기업을 경영해 본 경험이 전무했다.

이를 보면 중국기업들이 해외기업 M&A에 적극 나서는 이유가 뭐 특별한 능력이나 재주가 있기 때문은 아님을 알 수 있다. 분명히 중국기업들도 미국 등 글로벌 기업을 인수해서 융합하는데 많은 난관을 넘어야 하고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 그러나 중국기업들은 그런 어려움을 알면서도 해외기업 M&A 전략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 "배 고픈 여우가 포도나무를 발견했지만 높이 매달린 포도열매를 따먹을 수 없자 '저 포도는 신 포도야'라고 말해 버린다(이솝 우화)"

그동안 우리 기업들의 해외기업 M&A 사례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2007년 두산의 미국 중장비제조업체 밥캣(Bobcat) 49억불 인수 이후엔 내세울만한 게 없다. 그리고 성공사례는 더욱 찾아 보기 어렵다. 그래서 일각에선 우리 기업들의 해외기업 M&A 필요성에 대해 회의적이다.

우리 기업들의 해외 M&A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는 건 마치 신 포도(sour grape)를 바라보는 이솝 우화의 여우와 다름이 없다. 정말로 원하지만 쉽게 얻을 수 없자 자기 방어기제로 ‘합리화’하는 모습처럼 보인다.

"지원하지 않으면 떨어질 일도 없어...시도하지 않으면 실패할 일도 없고" 요즘 나오는 한 맥주회사의 TV광고 카피이다. 취업난에 시달리는 요즘 청년들에게 들려주는 격려의 말이지만, 해외기업 M&A에 소극적인 우리 기업에게도 해주고 싶은 말이다.

이럴 때 국내 최고 기업인 삼성이 제대로 된 굵직한 해외기업 M&A를 발표하며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는 모습을 보여주면 어떨까. 전기차 제조업체인 미국 테슬라(Tesla) 인수도 좋아 보인다. 삼성부터 해외기업 M&A 포비아(=울렁증)를 극복해야 한다.

어쩌면 우리 기업들이 너무 똑똑해서(=앞뒤 다 재고 계산적이어서) 해외기업 M&A를 안 하는 것일 수 있다. 아니면 너무 겁이 많은 걸까. 이에 반해 중국기업들은 이마가 깨지고 시간과 돈이 드는 걸 알면서도 꿋꿋하게 추진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보다 앞서 글로벌 기업이 돼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