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에이스 200명 밤샘…'스마트 링거대' 나온다

병원의 입원환자가 쓰는 링거대가 거추장스러운 막대가 아니라 스마트 기기로 변신한다면? 옷이나 신발을 살 때 내 몸에 맞는 치수를 바로바로 정확히 잴 수 있다면?

삼성그룹 직원들이 1박 2일 아이디어 대회를 열어 발굴한 소재들이다. 보다 구체적인 검토 작업을 거쳐 사업화로 연계될 수도 있다. 자발적 참여를 바탕으로 나온 아이디어에서 비즈니스 성과를 찾는다는 취지다.


글로벌 시장에서 새로운 융·복합 경쟁 환경을 맞아 '퍼스트 무버'(선도자)로 변신을 추진 중인 삼성이 창의적 사내 문화 확산을 본격화하고 있다.

24일 삼성에 따르면 최근 서울 우면동 삼성전자 R&D(연구개발) 캠퍼스에서 2016년 '블루핵 해커톤' 행사가 열렸다.

해커톤은 '해킹'과 '마라톤'의 합성어로 프로그램 개발자들이 며칠씩 몰입해 성과를 만드는 이벤트다. 페이스북의 사내행사로 유명해졌으며 실제 '좋아요' 버튼도 해커톤에서 발굴된 아이디어로 알려졌다.


IT(정보기술) 업계를 넘어 다양한 분야에서 아이디어 발상법, 나아가 조직문화 혁신의 도구로 활용된다. GM(제너럴모터스), BMW, 씨티은행, 토요타 등 여러 글로벌 기업들이 해커톤 행사를 개최한다.

삼성은 2013년 처음 도입했다. 직급에 상관없이 자발적으로 참가해 창의적 자극을 주고받으면서 아이디어를 창조하는 놀이의 장이다.

이번 행사는 주요 계열사에서 27개 팀, 200여명이 참여했다. 금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주말을 할애하는 일정이었지만 참가자들은 스스로 좋아서 나선만큼 꼬박 밤을 새며 아이디어를 가다듬었다.

4월 서울 우면동 삼성전자 R&D(연구개발) 캠퍼스에서 열린 2016년 블루핵 해커톤 대회 모습. 대회장을 돌아다니며 다른 팀의 개발품을 체험하는 참가자들/사진제공=삼성

즐기는 행사의 성격에 맞게 14개 우수과제도 참가자 간에 투표로 뽑았다. 그중 삼성서울병원팀이 내놓은 '말하는 막대'(Talking Pole)가 눈길을 끌었다. 병원에서 흔히 보는 링거대를 스마트기기로 활용하자는 아이디어다.

해커톤에 참가한 차원철 교수(응급의학과)는 "환자들이 사용하는 링거 걸이를 환자와 의사의 소통에 활용하면 좋을 것"이라고 발상의 계기를 설명했다.

링거대가 환자에게 진료일정과 주의사항을 알려주고, 의료진에게는 환자의 현재 상태를 포함한 각종 데이터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예컨대 운동이 필요한 환자에게는 하루의 운동량을 체크해 "운동을 더 하라"는 잔소리를 할 수도 있다.

삼성전자팀이 제출한 '신데렐라'도 우수 아이디어로 선정됐다. 정확한 발 크기를 재는 기기라는 뜻으로 패션이나 의료 등 여러 부문에 응용할 수 있는 신체 측정 기기다.

김주형 삼성전자 책임은 "아내가 아이 옷을 온라인으로 고르는 중 사이즈를 고민하는 것을 보고 IT 기술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 책임은 해커톤 행사에 대해서는 "아이디어를 가장 빠르게 구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며 "각 분야 숨은 고수들을 만나 무한한 가능성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삼성은 우수 아이디어를 사내 벤처육성 프로그램 'C-랩' 과제로 삼을 예정이다. 사업성이 인정되면 해당 사업부로 이관되거나 아예 스핀오프(외부 창업)로 연결되는 성과가 나올 수 있다.

아울러 행사 자체도 더 확대할 예정이다. 삼성이 전사적으로 펼치고 있는 창의 문화 확산 노력의 하나다. 과거에는 짜여진 경쟁구도에서 추격자(팔로어)로서 길이 정해져 있었지만 이제는 개척자(리더, 퍼스트 무버)로서 새로운 비즈니스와 상품을 창출해야 한다.

IT 기술 중심인 아이디어 주제도 다양화하고 외부 참가자 참여도 더 늘릴 계획이다.

삼성 관계자는 "사회·문화, 환경 문제까지 해커톤의 영역을 확대할 예정"이라며 "올해 처음으로 대학생까지 참가자를 확대했는데 이를 활성화해 창의 인재를 발굴하는 기회로 활용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