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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에 유명무실 하도급법…일한 값은 어디서 받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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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보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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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7.14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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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리포트] 농협정보 "소송 진행중…법정서 사실관계 다룰 것"

'갑질'에 유명무실 하도급법…일한 값은 어디서 받아야 하나
10여년간 거래하던 회사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당초 9개월로 계획했던 프로젝트는 잦은 변경 요청에 차일피일 늦어져 6개월이 더 지나고서야 마무리됐다. 기간이 늦어지면서 비용도 두 배가 넘게 더 들었다. 추가비용을 청구했지만 일을 준 회사는 줄 수 없다고 했다. 일을 하고도 돈을 받지 못한 회사는 적자가 쌓여 휴업상태다. 일을 시키고도 돈을 주지 못한다는 발주자와 일을 하고도 돈을 받지 못한 수급사업자. 왜 이렇게 된걸까.

"계약한 적 없다"는 발주자 "일 시킨 적 없다"는 원사업자…하도급업체는 누구에게 돈을 받아야 할까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인 브이트러스트가 농협정보시스템(농협정보)의 '도드람 경제통합시스템 1단계 구축 프로젝트(도드람 프로젝트)' 개발을 시작한 것은 2013년이다. 농협정보는 브이트러스트의 주 거래업체로 농협정보가 만들어진 2006년부터 꾸준히 거래를 계속해왔다. 2011년에는 농협정보의 육성협력업체로, 2014년에는 전략협력업체로 선정되기도 했다. 십여년간 거래를 하며 10억원 내외 규모의 사업은 직접 계약을 해 왔지만 이번엔 달랐다.

브이트러스트는 농협정보의 일을 했지만, 계약은 응용소프트웨어 개발업체인 이노비텍과 맺었다. 농협정보(발주자)가 이노비텍(원사업자)과 계약을 해 업무를 주면, 브이트러스트(수급사업자)는 이노비텍과 계약을 해 이노비텍에게 업무 지시를 받도록 한 것. 전형적인 하도급 거래 계약이다. 브이트러스트 측은 "직접계약을 요구했지만, 주거래업체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어 결국 이를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2013년12월 시작한 프로젝트 계약 기간은 9개월이었다. 하지만 프로젝트 기간 동안 프로그램은 끊임없이 변경됐다. 농협정보가 작성한 현황보고서에 따르면 "최초 계약 내용에 비해 잦은 설계변경, 요건추가, 삭제로 인한 프로그램 변동률이 95%에 달해 대부분의 프로그램이 변경"됐다. 처음 계획은 643개의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었지만, 변경 삭제 추가된 프로그램이 총 614개다. 이중 브이트러스트가 맡은 부분의 변동률은 44~143%에 이른다.

결국 2014년9월 끝내기로 한 프로젝트는 해를 넘겨 지난해 3월에야 마무리됐다. 6개월이 더 걸렸다. 늘어진 기간만큼 비용도 늘었다. 농협정보의 현황보고서에 따르면 총 프로젝트에는 계약보다 97.5% 인력이 추가로 투입됐다. 농협정보는 투입 인력 현황에 대해 "초기 설계 내용을 무시한 잦은 업무요건 변경으로 과다 인력 투입이 발생"했다며 "계약대비 추가 인력 투입으로 약 9억1000만원의 손실이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이중 브이트러스트가 자체적으로 계산한 손실은 약 2억4700만원이다. 당초 2억원에 계약한 사업이었는데 총 4억5000여만원이 들었다. 농협정보 측에 추가 비용을 지급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농협정보는 브이트러스트의 과실을 지적했다.

브이트러스트 측 잘못으로 프로젝트가 늦어졌고, 농협정보의 자체 인력이 투입됐다며 본사 인건비 등으로 1억6000만원을 브이트러스트 요청 금액에서 제외했다. 프로젝트를 위한 파견직원이 농협정보 건물에 들어와 일을 했다며 공간 사용료로 7300만원을 제외했다. 손실액에서 이런 저런 비용을 제외하고 남은 1300만원만 보상해 줄 수 있는데 10여년간 함께 일한 것을 고려해 위로금으로 총 5000만원만 지급해주겠다고 통보했다.

브이트러스트가 "프로젝트가 늦어진 것은 발주자의 잦은 변경 요청때문이었다"며 전체 비용을 지급해 줄 것을 요구하자 농협정보는 "(브이트러스트와) 계약을 체결한 적이 없고, 계약 상대방인 이노비텍에 용역 대금 전액을 지급했다"고 답했다. 계약당사자들끼리 알아서하라는 답인 셈이다. 이노비텍에 비용을 청구했지만, 이노비텍은 "추가 업무를 요구하거나 승인한 적이 없다"며 책임을 미뤘다. 브이트러스트는 농협정보 측에게 직접 지시를 받아 일을 했다.

하도급업체는 일 하고도 돈 받기로 한 '증거' 없으면 못받아

브이트러스트는 결국 2016년 1월 '원사업자가 설계변경, 원재료 가격변동에 따른 하도급대금 조정의무를 불이행한 경우', '발주자가 하도급대금 직접지급의무를 불이행한 경우', '수급사업자가 발주자에게 하도급대금 직접지급 요청시 원사업자가 협조를 하지 않은 경우'에 해당한다며 하도급분쟁조정위원회에 하도급분쟁조정신청을 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당초 추가 업무 지시를 받았을 때 추가비용을 청구했다는 증거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16조는 설계 변경에 따라 하도급대금의 조정이 있을 때 원사업자는 발주자에게 증액받은 계약 금액과 비율에 따라 하도금대금을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물론 발주자가 직접 수급사업자에게 관련 내용을 통지했다면 원사업자가 통보할 책임은 없다. 같은 법 14조는 원사업자가 파산 등으로 대금을 지급할 수 없는 사정이 생겼거나 당사자간 합의가 있었다면 발주자가 직접 수급사업자에게 대금을 지급하도록 규정해놨다.

하지만 추가 업무에 대한 계약이 증명되지 않으면 법을 적용하기는 힘들다. 기업분쟁 사건을 담당해 온 A변호사는 "물증이 없더라도 정황상 사실 관계가 입증된다면 조정할 수 있는 여지는 있다"면서도 "이를 증명할 사실증거인 계약서 등이 없으면 어떤 정황으로 하도급업체가 업무를 했는지 확인할 수가 없기 때문에 추가 대금을 받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다음 계약을 위해 일종의 '서비스'로 일을 더 해준 것인지 비용을 받기로 한 것인지 알 수 없다는 말이다.

브이트러스트는 추가 업무 지시를 받았을 때 왜 추가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을까. 브이트러스트 측은 "앞으로 계속 일을 받아서 해야 하는 입장에서 추가 업무 지시를 받을 때마다 계약서를 쓰자고 하기는 힘들었다"고 말했다.

문제는 하도급 업체가 추가 비용에 대한 청구 자체를 하기 힘들다는 데 있다. 소프트웨어 업계 관계자는 "계약 기간 후 추가로 사업이 진행되는 경우는 흔하지만 하도급 업체 입장에서 건마다 계약을 하기는 어렵다"며 "사업이 길어져 추가 비용 없이 일을 못하겠다고 하는 것은 앞으로는 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계속 일을 받아 해야 하는 입장에서 일일이 추가 계약을 요구했다가는 다음 계약을 받을 수 없게 된다는 말이다.

실제 소프트웨어 업계 하도급 분쟁은 늘어나는 추세다.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접수된 분쟁조정건수는 23건으로 2014년 6건에서 크게 늘었다. 협회에 따르면 71건의 신고가 들어왔는데 하도급대금 미지급(20건) 하도급대금조정의무위반(12건) 부당삼액(7건) 부당하도급 대금결정(5건) 등 대금 관련 내용이 주를 이뤘다.

브이트러스트 측 역시 "실제 프로젝트를 하다보면 10~20% 정도 일을 더 해주는 경우는 많이 있지만, 다음 계약을 위해 감수하는 것"이라며 "이번에는 손실이 너무 커 다시는 농협정보와 일을 못할 것이라 생각하고 비용을 청구했다"고 말했다.

A변호사는 "관행적으로 을의 입장에서 돈을 받기 전에 문제제기를 하기는 힘들다"며 "발주자가 흔히 갑질을 하며 추가 업무 지시를 해 하도급업체가 일을 했더라도 실제 소송을 하거나 조정에 들어가면 이를 인정받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바른의 김도형 변호사는 "일을 하기 전에 금액에 대한 합의가 추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이뤄져야 한다"며 "부당한 요구 자체가 문제이긴 하지만 업무에 관한 증거를 남겨야 한다"고 말했다.

농협정보와 이노비텍은 브이트러스트를 상대로 채무부존재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농협정보 측은 "현재 소송이 진행 중이고 사실 관계에 대해서는 법정에서 다툴 일"이라고 답했다.



이 기사는 더엘(the L)에 표출된 기사로 the L 홈페이지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더 많은 기사를 보고 싶다면? ☞ 머니투데이 더엘(the L) 웹페이지 바로가기

※ 이 기사는 빠르고 깊이있는 분석정보를 전하는 VIP 머니투데이(vip.mt.co.kr)에 2016년 7월 13일 (17:15)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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