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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랑비에 옷 벗을 줄 모르는 '스폰서' 판·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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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9.10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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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폰서들이 말하는 관계유지의 이유는 ‘보험’
판검사들은 '대가성'이 없다고 인식

(서울=뉴스1) 윤진희 기자 =
© News1 최진모 디자이너
© News1 최진모 디자이너

‘정운호게이트’로 불리는 대형 법조비리 사건을 몰고 온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로부터 1억 7000여만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은 현직 부장판사가 지난 2일 구속됐다.

현직 부장판사의 뇌물수수 혐의와 구속에 따른 국민들의 노여움이 채 가시지 않은 시점에 현직 부장검사의 '스폰서' 사건이 불거졌다. 대검찰청은 9일 고교동창으로부터 지속적으로 향응과 금품 등을 제공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김형준 부장검사에 대한 감찰을 수사로 전환했다고 밝혔다.

검사와 판사의 '스폰서' 얘기는 영화나 드라마의 단골소재로 등장할 만큼 '공공연한 비밀'이다. 검찰과 법원 모두 과거에 비해 투명성과 청렴도가 높아졌다고 주장해왔지만 김 부장판사와 김 부장검사 사건으로 체면을 구겼다.

시쳇말로 '보험을 든다'는 표현은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와 같은 의미로 쓰인다. 지금까지 수사대상에 올랐던 판검사의 스폰서들은 향응과 금품 등을 제공한 이유에 대해 입 모아 '보험'이라는 답을 내놓았다.

진경준 전 검사장에게 수억원대 주식뇌물과 해외여행 경비 등을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는 김정주 전 NXC 대표도 이유에 대해 ‘보험’이라는 단어를 언급했다. 앞으로 언제 발생하게 될지 모르는 ‘법적 분쟁’ 등에 대비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친분을 유지해왔다는 얘기다.

최근 불거진 '스폰서 부장검사' 사건의 '스폰서' 역시 김 부장판사에게 지속적인 향응과 금품을 제공한 이유에 대해 '보험성이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스폰서들은 관계 유지의 이유를 '보험'이라고 말하지만 판검사들은 스폰서들과 '친구관계'임을 주장한다. 금품과 향응을 제공하는 사람과 제공 받는 사람의 인식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대목이다. 스폰서들은 '대가'를 기대하지만 판검사들은 '대가성'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판검사 스폰서의 시작은 학연, 지연 등 인간관계를 기반으로 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스폰서 관계가 꼭 처음부터 향응과 금품을 제공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관계 설정을 하고 시작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스폰서와 학연과 지연으로 얽혀 처음부터 거부감 없어

전직 판사인 한 변호사는 "스폰서가 생판 모르는 사람이라기보다 학연, 지연 등으로 엮여 부담 없이 친해질만한 사람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판검사들이 스폰서들의 '접대행위'에 별다른 거부감을 갖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스폰서들이 처음부터 판검사에게 사건 청탁 등을 하는 것이 아니고, 지연 또는 학연 등을 빌미로 부담스럽지 않은 수준의 식사 등을 함께 하며 서서히 친분을 쌓아가기 때문에 '심리적 저항'이 적다"고 덧붙였다.

이어 "하지만 친분 관계가 두터워져 어느 정도 신뢰가 생기면 '향응'을 제공하기도 하고, 결국 '귀가하는 차비' 명목을 시작으로 돈까지 오가게 된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스폰서의 ‘접대’를 조심스럽게 받아들이던 판검사도 친밀도가 높아지면서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고, 용돈이나 명절 떡값 명목으로 수십에서 수백만원씩 건네주는 돈도 ‘호의’ 정도로 인식하고 만다는 얘기다.

◇ 스폰서 기간 오래되면 오래 될수록 거액 오가 …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로부터 해외여행 경비 등을 제공 받고, 수입 외제차량을 매매하는 것으로 가장해 수뢰한 혐의를 받고 있는 부장판사의 뇌물 수수액은 1억 7000여만원으로 알려졌다. 김 부장검사의 고교동창 김모씨는 자신이 김 부장검사에게 제공한 향응 또는 금품의 총액이 7억원에 이른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수 법조계 인사들은 “김 부장판사와 김 부장검사의 스폰서들이 한번에 1억 7000여만원과 7억원의 거액을 건넸다면 겁이 나서라도 쉽게 받지 못했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식사와 향응제공을 위한 만남이 오래되면 될수록 자연스레 판검사와 스폰서의 관계는 돈독해진다. 돈독해지는 사이만큼 스폰서가 다양한 형태로 제공하는 금품의 액수도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판검사의 스폰서가 법적쟁송에 휘말리거나 수사대상이 되면 수십 수백 번 어울려 지낸 판검사가 모른 채 하기 어렵게 된다.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판검사는 조직 내 인맥을 동원해 자신의 스폰서와 관련된 사건에 개입하게 된다. 스폰서들이 들어 놓은 '보험'이 진가를 발휘하게 되는 시점이다.

얼마 전 구속된 김 부장판사는 정 전 대표로부터 향응과 금품을 제공받은 대가로 정 전 대표와 관련한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판사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대검이 감찰대상에서 수사대상으로 전환한 김 부장검사 역시 고교동창 김씨로부터 수시로 향응을 제공 받고, 금품을 수수한 대가로 스폰서 김씨가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 받고 있는 사건을 무마하려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법조인인 '판검사'들이 사건에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모를리 없고 사건 개입의 위험성 또한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오랜시간 친분을 유지하면서 친분관계로 인해 제공받은 것으로 알았던 향응과 금품이 판검사들의 족쇄가 된다.

◇ “판검사-스폰서 관계는 불륜관계와 같아”

재경지검의 한 검사는 판검사와 스폰서와의 관계를 '불륜관계'에 빗대며 비판했다. 서로 사이가 좋을 때는 좋지만 돌아서는 끝은 항상 지저분한 관계라는 얘기다.

스폰서로부터 금품과 향응을 제공 받은 판검사가 스폰서가 법적 쟁송에 휘말리거나 수사를 받는 상황이 됐을 때 외면하거나 혹은 스폰서 관계를 정리하려고 하면 지저분한 결말을 맡기도 한다.

많은 돈을 들이고 깍듯하게 접대해 온 판검사가 자신을 배신했다는 생각에 스폰서 관계를 세상에 폭로하기도 한다. 애초에 친분을 표방한 ‘거래관계’였기 때문에 ‘치부책’ 수준의 장부가 물증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결국 판검사와 스폰서 관계는 위기의 순간에 ‘각자도생’하기 위해 서로를 배신하게 될 수 밖에 없다. 지난 7일 한겨레가 보도한 김 부장판사와 스폰서 김씨의 대화 녹취록에서도 이러한 사실은 확인됐다. 위기에 처한 김씨가 김 부장검사에게 배신감을 느껴 스폰서 관계를 세상에 폭로하려는 것을 김 부장검사가 만류하는 내용의 대화가 녹취록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막강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판사와 검사의 권력을 돈과 맞바꾸고자 하는 사람들은 많다. 이들이 제공하는 향응과 돈을 즐겼던 김 부장판사는 구속됐고, 김 부장검사 역시 자신의 행위에 대한 법적책임을 지게 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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