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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날]'수능 9등급' 받았어도, 내 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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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민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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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1.27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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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못해도 확실한 행복, '공못행'-②]'전교 꼴찌' 했어도 행복한 사람들…"학창시절, 내 등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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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서울 도봉구에 위치한 서점 도도봉봉에서 열린 '책방에서 시를 읽다' 프로그램 모습./사진제공=도도봉봉
[빨간날]'수능 9등급' 받았어도, 내 삶은…
"당신은 몇 등이었나요?" 지금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9점, 9등급, 전교 꼴등" 대답은 다양했다. 그리고 그 대답만큼 삶도 다채로웠다.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다'라는 말처럼 그들은 학창시절 받은 성적표와는 관계없이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살고 있었다.

시청률 20%를 넘기며 많은 사랑을 받은 드라마 'SKY캐슬'이 마지막 방송만을 남겨둔 가운데, 극중 인물처럼 무분별하게 등수에 집착하는 삶을 지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스카이캐슬'은 주남대의 대학병원 의사와 로스쿨 정교수들이 모여 사는 서울 근교 석조저택 단지다. 이곳에 사는 엄마 한서진(염정아)은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딸 강예서(김혜윤)를 몰아붙인다. 로스쿨 교수 차민혁(김병철)도 자녀들에게 '피라미드'로 상징되는 신분사회의 맨 위에 올라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찐찐네 아들 수한이(이유진)가 "피라미드에서는 미라가 맨 꼭대기에 있는게 아니래. 요기 요쯤(중간)에 무게중심이 있대. 여기가 제일 좋은거지"라고 말한 것처럼, 누군가는 "피라미드 어디에 있든 행복할 수 있다"고 외치고 있다.

머니투데이가 지난 22~24일 피라미드 이곳저곳에서 '나다운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전교 1등을 하거나, 서울의대를 가거나, 피라미드 꼭대기에 올라서서 'SKY캐슬'에 입주하지 않아도 행복한 사람들이 여기 있다.



"해도 안돼, 공부도 재능이야!"…예술가와 직장인의 의기투합 독립서점 '도도봉봉'



서울 도봉구에 위치한 독립서점 '도도봉봉' 모습./사진제공=도도봉봉
서울 도봉구에 위치한 독립서점 '도도봉봉' 모습./사진제공=도도봉봉

도봉구에서 독립서점 '도도봉봉'을 운영 중인 도도(허가현씨·39)와 봉봉(임현석씨·35). '친구네 거실' 같은 서점을 만들고 싶다는 이들은 "서점을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며 운을 뗐다.

도도는 "학창시절에 공부라고는 1(하나)도 해 본 적이 없다"고 표현하며, "내가 좋아하는 것만 파면서 '이게 진짜 공부지!'라는 이상한 자부심이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베르사이유의 장미' 1~11권까지 전 대사와 장면을 다 외울 정도로 책을 좋아했다.

자매들과 소설, 연극, 만화 같은 것들을 만들면서 자란 도도는 고등학교 모의고사 수리영역에서 9점(80점 만점)이라는 점수를 받았다. 전교 꼴찌였다. 다행히도 닥치는 대로 읽은 덕분인지 언어영역에선 전교 2등을 했다.

고등학교 3학년, IMF 외환위기에 집이 '쫄딱' 망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도도는 "전문직으로 성공해 집안의 기둥이 되겠다"며 공부를 시작했지만, 수능을 7번이나 치게 됐다. 6년간의 공부를 끝으로 전문직 대신,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글'을 쓰기 위해 예술학교를 들어갔다. 이후 창동역 근처에 사무실을 얻고 문학 스터디를 운영하며, 우연히 직장인이자 문학지망청년인 봉봉을 만나게 됐다.

봉봉도 학창시절 도도처럼 '학습지를 푸는 타입이라기보다 책읽기에 몰두하는 편'이었다. 전교 30~40등으로 공부를 잘했던 도도는 우수한 성적을 받는다는 이유로 강제로 야간자습을 해야 했다. 자습실에선 주로 소설책을 읽었고, 그것마저 안될 때는 자습서에 있는 지문을 골라 읽었다. 이후 소설을 쓰고 싶어 국어국문학과에 들어가 남들이 보기에 '번듯한 직장'에 들어갔다. 그는 "보수는 만족스러웠지만, 어느 순간 회사의 부속품처럼 느껴졌다"며 "취미생활을 찾아보자는 생각으로 도도가 진행하는 '고강도 글쓰기 합평 모임'에 등록했다"고 말했다.

봉봉의 제안으로 그들은 도도의 사무실에 서점이자 취향 공동체들의 플랫폼 공간인 '도도봉봉'을 만들었다. 그들이 꿈꾸는 공간은 '서울의 변방이자 전형적인 베드타운인 도봉구에 숨어있는, 청년들 혹은 책과 문화를 사랑하시는 분들의 살롱'이다.

"해도 안돼, 공부도 재능이야!" 수능을 7번 친 도도는 성적 관리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고 답했다. 이어 "자기가 잘 하는 것, 해서 편한 것이 무언인지 빨리 깨달아야 한다"며 "요즘 나다운 삶을 되찾았다는 행복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봉봉도 요즘 삶을 주도적으로 꾸리고 있다고 실감한다. 그는 "책상물림에 자습으로 점철된 학창시절엔 좋아하는 것을 찾을 기회가 없었다"며 "서점에서 강의를 개설하고 여러 프로그램을 기획하면서, 과정에서 행복을 느끼고 있다"고 표현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알면 그걸 할 수밖에 없는 게 인간이라고 생각한다"는 봉봉.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그들에게 'SKY캐슬'에서는 느낄 수 없는 따듯함이 느껴졌다.


"내 수능등급은 '644789'…게임, 마술, 패션 그리고 '영상'에 빠졌죠"


영상 제작 프리랜서 박인수씨./사진제공=박인수
영상 제작 프리랜서 박인수씨./사진제공=박인수

프리랜서로 다양한 영상을 제작하고 있는 박인수씨(29·남)의 첫 번째 수능등급은 '644789(언어·수리·외국어·사탐3과목 순)'이다. 그는 공부 대신 '게임·마술·패션'에 빠졌었다. 초등학생 때는 게임 '스타크래프트'을 좋아해 학교 1등으로 대회에 나갔다. 중학생 때는 마술에 빠져 만든 인터넷 카페를 잘 운영해 '1위 카페(마술 카테고리)'로 만들기도 했다. 고등학생 때는 패션, 옷에 열광했다.

그는 자신을 "하고 싶은 걸 했던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무언가에 흠뻑 빠지는 건 그의 '전매특허'가 됐다. '644789' 등급으로 간 대학에서 3일 만에 나와 재수를 시작했다. 20살. 1년 동안은 공부에 '올인'했다. 그는 "솔직하게 말하면 같이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이 서울에서 공부를 하는데 나 혼자 지방에서 공부하는 게 민망했다"면서도 "대학에서 패션을 공부해야겠다는 나만의 목적이 생기자 미친듯이 공부할 수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렇게 들어간 대학교에서 불어를 전공해 프랑스 교환학생을 가게 됐다. 교환학생을 마칠 때쯤 아프리카 7개국을 3개월 동안 여행했다. 한국을 알리겠다는 마음에 태극기를 들고 아프리카 구석구석을 방문했고, 이 모습을 동영상으로 제작했다. 그가 생애 처음으로 만든 영상이었다. 이후 그는 '영상'에 흠뻑 빠졌다. 브라질에서 1년 동안 PD로 일하며 리우 올림픽을 취재하기도 했고, 한 패션브랜드 회사에 들어가 패션필름을 제작하기도 했다.

그는 "영상에 제가 가진 색을 녹여낸다는 게 너무 매력적이었다"며 "그 영상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 주는 것도 좋았다"고 말했다. 현재는 프리랜서로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하기도 하고, 뮤직비디오를 찍기도 한다.

영상 제작 프리랜서 박인수씨./사진제공=박인수
영상 제작 프리랜서 박인수씨./사진제공=박인수

결국 영상을 하게 된 그에게, 지금까지의 '(영상 이외의) 딴짓'이 아쉽지 않냐는 물음을 던졌다. 그는 '아니'라고 답했다. 박씨는 "돌이켜보면 제가 가진 경험 중에 도움이 안 됐던 건 없다"며 "게임, 마술마저도 지금 영상을 만드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올해 개인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다는 박씨는 "정답은 없겠지만 삶을 즐겁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며 "만족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공부를 못해도, 그 순간 만족하고 행복할 수 있다면 충분히 괜찮다는 뜻이다.



"300만원짜리 과외에도 열심히 안했는데…꿈 생기자 퇴근 후에도 스터디 삼매경"



/사진=이미지투데이
/사진=이미지투데이

서울 시내 정형외과에서 근무하고 있는 물리치료사 신모씨(29·여)는 학창시절 '7~8등급'을 받곤 했다. 7~8등급은 퍼센트로 상위 89~96%에 해당하는 등급이다. 신씨는 "공부를 하고 싶지도 않았고, 해야 할 이유도 못 찾았다"며 "꿈을 갖기 전까진 부모님이 시켜주신 300만원짜리 과외에도 진정으로 열심히 하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대학도 성적에 맞춰 지방에 있는 곳으로 가게 됐다. 하지만 '전공'만큼은 신씨가 선택했다. 과를 선택할 당시 미국에 살고 있는 그의 고모가 "다양한 경험을 하고 많은 사람을 만나라"며 신씨를 미국으로 초대했다. 그때 물리치료사라는 직업을 접하면서 신씨는 꿈을 갖게 됐다.

원하는 것이 생기자, 공부가 하고 싶어졌다. 신씨는 "대학 생활에 애정을 갖게 돼 과대표까지 하게 됐다"며 "내 스스로 인생의 방향을 정하니, 계속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꾸준한 공부를 통해 '물리치료사 국가고시'에 합격한 후 병원에 취직했다. 그는 임산부를 대상으로 특별 치료를 하는 등 전문 분야도 생기고, 또래에 비해 승진도 빨리 하면서 일에 더 흥미를 느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사진=이미지투데이

신씨는 요즘 미국에서 물리치료사로 일하기 위해 '자발적 열공' 중이다. 신씨는 "한국에는 여자 치료사가 설 수 있는 자리에 한계가 있다"며 "또 미국 같은 경우 물리치료사가 (한국의 의사처럼) 개인 병원을 차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하지 않는 매주 주말에는 같은 꿈을 가진 치료사들과 모여 스터디를 한다.

그는 '피라미드' 꼭대기를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에게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학생 때는 이렇게 될 수 있을지 상상도 못햇다"며 "부모님이 원하는 게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항상 생각한 게 도움이 됐다"고 했다.

머니투데이가 만난 사람들은 모두 뚜렷한 목적 의식이 없었던 학창시절에는 공부에 딱히 흥미가 없었다.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이 생기자, 열정이 생겼다. 이들은 "나 자신을 전적으로 믿으셔야 합니다"라며 "하고 싶은 일이 생기자 억지로 공부시키는 엄마나 입시 코디네이터 '김주영 선생님'이 없어도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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