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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억불 눈치보던 외평채, 100억불 시장 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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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종=박준식 기자
  • 민동훈 기자
  • 2019.06.2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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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미중 무역전쟁 소용돌이서 15억불 역대최저금리 채권발행 성공시킨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국 유병희 과장 정규삼 서기관

글로벌 자금조달 시장은 지금 전쟁터다. 미중 무역협상은 지난 3~4월까지만 해도 말싸움에 그칠 것 같더니 실제 관세폭탄이 날아다니는 전면전으로 확대됐다.

1월부터 자금시장을 주시하던 기획재정부는 사면초가에 몰렸다. 1분기 경제성장률이 -0.4%(전기대비)를 기록한 쇼크로 온갖 화살을 얻어맞았다. 대외적으로는 글로벌 자금시장 경색으로 외화조달 여건이 빡빡해진 것이다.

가장 초조한 건 국제금융국이었다. 올해 15억 달러 규모 외국환평형기금채권 만기가 돌아오는지라 글로벌 시장에서 달러를 조달해야 하는데 상황이 만만치않았다.

정규삼 국제금융국 서기관은 "실은 발행한도(15억 달러) 내에서 상반기에 5억 달러만 먼저 찍어보고 나머지(10억 달러)는 하반기를 계획하자는 전략이었다"고 말했다. 그만큼 시장 눈치를 봤다는 의미다.

"살얼음판 무역전쟁…미루는 게 상책"

한국 정부가 달러 세계시장에 함부로 나갔다가 채권발행(달러 조달)에 실패하거나, 신용등급에 맞지 않는 고금리 조달을 감수할 경우 생길 대외신인도 하락 등 역풍을 우려했다. 마침 미국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가 9월께 미중 무역협상이 타결될 수 있다는 보고서를 내놓기도 한 시점이다. 미루는 게 상책이었다.

유병희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국 과장 /사진= 민동훈 기자
유병희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국 과장 /사진= 민동훈 기자
전전긍긍하던 때에 유병희 국제금융과장이 참신한 아이디어를 냈다. 일단 5억 달러 어치를 '그린본드(녹색채권)'로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녹색기후기금(GCF) 업무를 담당한 경험이 있던 유 과장은 "한국이 국민소득 3만 달러가 넘는 선진국이 됐으니 그동안 선진국들이 주도하던 녹색 조달시장을 노리자"는 전략을 내놨다. 조달한 자금 용처를 환경보호가 주가 되는 시장에 투입한다는 전제를 내걸고 자금시장에 나서면 투자자 저변을 넓힐 수 있을 거란 기대였다.

녹색채권은 이른바 사회적책임투자 채권(SRI: Socially Responsible Bond) 형태로 발행하는 것이다. 발행자금이 친환경 또는 사회가치 창출 사업에 사용되는 채권을 찍으면 관련 투자자들이 한국을 새로운 눈으로 볼 거란 예상을 내놨다.

외평채가 한국 랜드마크…선진국답게 나가보자

유병희 과장은 "외평채 발행이 외화 조달만을 목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국내 기관․기업 외화채권에 대한 기준금리(벤치마크) 역할을 한다는 점과 최근 전 세계적으로 UN 지속가능개발목표(SDG) 달성을 위한 노력이 중요시되고 있다는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국제금융국은 SRI 채권발행을 위해 주관사도 글로벌 IB로 4곳을 선정했다. 상품 설계능력이 좋은 크레디아그리콜(CA-CIB)과 HSBC 등 유럽계 2곳에 미국시장 투자자 섭외력이 높은 씨티글로벌마켓증권과 JP모건을 복수로 뽑은 것이다.

수차례 주관사 미팅 끝에 발행전략은 투자대상이 녹색분야 90%와 사회가치창출 분야 10%로 구성된 지속가능채권을 5억 달러(5년물)로, 나머지는 시장상황에 따라 일반채권(10년물)로 구분(트렌치)하기로 했다.

SRI 채권을 발행하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발행자금 용도(use of proceeds)였다. 국채를 SRI 채권으로 발행하는 방안은 과거에도 제안된 적이 있었지만 용처를 확정하지 못해 보류된 적이 있었다. 이에 발행자금을 외평기금을 거쳐 KIC(한국투자공사)에 위탁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마침 KIC가 친환경 또는 사회가치 창출 목적 사업에 투자하는 방안을 고안하고 있어서 서로 시기를 맞출 수 있었다.

다시 찾아온 고비…G20 기싸움 전에 나가자 역발상

하지만 다시 고비가 찾아왔다. 5월 들어 미중갈등이 격해지면서 국제금융시장이 요동쳤다. 국내에선 외국인 주식자금이 유출되고 환율이 치솟았다. 정계에선 한국 경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정부는 당초 준비하고 잇었더너 지속가능채권과 함께 15억달러의 발행한도 내에서 시장상황에 따라 일반채권도 함께 발행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정했다.

정규삼 서기관은 "발행 시기를 당초 예정했던 6월 말~7월 초보다 앞당기기로 했다"며 "미중갈등이 6월 말 G20 정상회의 계기로 줄거나 커질 수 있는 불확실성이 있다고 판단해 양대국 기싸움이 벌어지기 전에 외화유동성을 확보하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렇게 급박해지자 해외 로드쇼는 번갯불에 콩 볶듯 이뤄졌다. 한국 정부가 사회적책임투자 채권으르 발행한 적이 없던 터라 투자자 설명기회가 필요했다. 한국 경제상황과 정책방향성을 설명하는 자리를 건너뛸 순 없던 것이다.

로드쇼는 런던과 뉴욕에서 이뤄졌다. 국제금융국 출장인원들은 이동에 따른 시간 손실을 최소화하려 6월 9일 일요일에 출국해 10일 런던에서 하루 만에 8개 기관 투자가 미팅을 마치고 당일에 바로 뉴욕으로 이동하는 죽음의 일정을 소화했다. 이틀 만에 유럽과 미국 기관 15곳을 만난 것이다.

이틀 만에 유럽서 미국으로…시장에 단비

희망적인 징후는 이런 노력 덕분인지 투자자 반응이 상당히 호의적이었다는 것이다. 글로벌 본드 발행사들이 다들 G20 결과를 보면서 주저하던 상황이라 투자자들로선 마땅한 투자 발행물이 많지 않다는 것도 도움이 됐다. 역발상이 통했다.

정규삼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국 서기관 /사진 = 민동훈 기자
정규삼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국 서기관 /사진 = 민동훈 기자
디데이로 정한 6월 11일 뉴욕시장엔 전운이 흘렀다. 현지시간 오후 9시 반에 지속가능채권 5년물 및 일반채권 10년물을 듀얼 트렌치(dual tranche)로 투자자 모집에 나섰다. 초기 발행금리(initial guidance)로 5년물은 '미국 국채 5년물(T)+55bp', 10년물은 '미국 국채 10년물(T)+75bp'로 제시했다. 주문을 기다렸다.

일단 홍콩과 아시아장 주문이 접수됐다. AA등급 양호한 신용도와 지속가능채권 등에 대한 관심이 집중됐고, 유럽장이 열리면서 전체주문이 60억 달러 이상으로 확대됐다. 사실상 대성공이었다.

다른 고민이 생겼다. 발행규모를 당초 계획보다 늘릴지를 고민한 것이다. 이미 로드쇼 과정에서 하반기 추가발행 계획은 없앴다. 5억+5억 달러냐, 5+10억 달러냐를 택해야 했던 순간이다. 이미 투자자가 예상보다 6배나 몰려서 배짱을 부려볼만 했다. 뉴욕 현지시간 7시경 5년물 가산금리를 30bp로, 10년물 가산금리를 55bp로 각각 25bp, 20bp 낮춰 발행금리(revised guidance)를 수정했다. 현명한 결정으로 한국 정부가 내줘야 할 이자를 연간 40억원이나 줄인 셈이다.

역대 최저금리 챙긴 과감한 베팅 먹혔다

최종 결과 5년물에는 3.6배 많은 주문이 접수돼 T+30bp인 2.177% 금리에 발행됐고, 10년물은 T+55bp인 2.677%에 발행됐다. 발행 금리은 둘 다 외평채 최저금리(2017년 외평채 2.871%) 보다 낮은 역대 최저 수준에 정해졌다.

유병희 과장은 "통상 신규 발행 채권에 대해서는 투자자들이 기존 유통금리 대비 추가금리(new issue premium)를 요구하지만 이번 외평채는 오히려 현재 글로벌 채권시장에서 유통되는 기존 외평채보다 낮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외평채 성공은 내우외환으로 어려움을 겪던 한국 경제상황이 외국인 투자자들에 의해 신임을 얻은 계기가 됐다. 기존 투자가나 신규 외국 기관들이 한국 경제 신용도나 펀더멘털에 대해 우려가 없다고 평가하는 증명서가 생긴 것이다.

치고나간 외평채, 따라간 한전·수출입은행도 대성공

외평채가 뚫은 달러 조달시장은 국내 공기업 외화채권 발행으로 이어졌다. 지난 17일 한국전력공사가 외평채를 벤치마크로 5억 달러 녹색채권을 비금융공기업 역사상 최저금리(+75bp, 2.597%)에 발행하는데 성공했다. 18일에는 지켜보던 수출입은행이 3년물 채권을 기존 유통금리 대비 2.5bp, 5년물은 기존 유통금리 대비 3.5bp 낮은 가산금리로 총 10억 달러 어치를 발행했다. 특히 5년물 가산금리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외평채를 제외한 한국물 중 최저 수준이다.

5억 달러를 두고 치열한 수싸움을 벌인 결과는 수백억 달러 규모로 평가되는 글로벌 지속가능채권 시장 개척으로 이어졌다. 외평채 5억 달러로 민간 수요를 더해 적어도 100억 달러 시장을 뚫은 셈이다. 김윤경 기재부 국제금융국장은 "한국이 환경․사회적 가치를 높이면서 지속가능성장 목표 달성을 위한 전 세계적 노력에 동참하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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