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 폐기물처리장 신설보다 기존시설 개·보수해야

△이준희 전국 쓰레기 발전소·보일러 저지 비대위 위원장

정부가 지난달 사회 문제화된 폐기물 불법‧방치 사태를 해결하고자 폐기물 공공처리장을 전국에 권역별로 8개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사회안전망 차원에서 현재 민간 영역이 담당하기 어려운 폐기물 처리 시설을 만든다는 취지는 이해가 간다. 하지만 설치하기까지 과정은 순탄치 않아 보인다.

과거 정부는 여러 지역에서 SRF(고형폐기물 연료) 발전소 건설을 추진했지만 국민적 반감에 부딪혀 3년전에 무산됐다.

당시 강원도 원주에서 부산 다대포까지 이 시설이 들어서는 지역의 주민들은 연료로 주민을 현혹시키는 데 대해 분노와 배신감으로 반발이 엄청났다. 그리고 이제 조금 잠잠해지나 싶었는데 다시 정부는 '폐기물 공공처리장' 설치 카드를 들고 나왔다. 정부가 보유한 폐기물처리장이 없다보니 불법‧방치 사태가 벌어지고 나면 속수무책인 것이 한계로 드러나 이와 같은 결정을 내리게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병원‧수은‧라돈 등의 위험 폐기물을 처리한다는데 주민들이 수긍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게다가 이 공공처리장은 산업폐기물마저 처리한다고 한다. 전국 각지의 산업폐기물을 우리 지역의 공공시설에 반입해서 처리한다고 하면 어느 지역 주민들이 환영할 수 있을까. 또 어떤 지자체장이 용기 있게 우리 지역에 설치하자고 유치전을 벌일 수 있을까.


정부는 공공처리장 주변 지역 주민을 지원하고 수익을 분배하겠다고 하지만 설득력이 부족해 보인다. '공공' 타이틀을 붙여도 결국 폐기물 소각장이나 매립장과 다를바 없다.

전국 각지의 위험 폐기물을 한 곳에 모아 처리한다는 발상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외부의 산업폐기물을 가져와서 처리하겠다는 발상은 지역 주민들의 반발을 일으킬 수 있다. 아무리 공공처리장이라고 해도 주민들의 반발은 불보듯 뻔하다. 필자가 살고 있는 원주도 몇 년 전까지 폐기물 고형연료 시설 때문에 엄청난 진통을 겪었다.

한참 거슬러 가면 정부가 수천억을 투입해 설치했던 5개 공공처리장이 적자와 비효율로 20년 전에 문을 닫았다. 그럼에도 공공 폐기물 처리장을 만든다고 하니 '근시안적이고 시대 착오적인 행정'이다.

지금 방치 폐기물 사태는 시설이 부족해서 발생한 것이 아니다. 폐기물 재활용업체가 처리비를 떼먹고 도망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든 정책 실패 탓이다. 처리비를 착복할 수 있으면 처리 시설이 아무리 많아도 먹튀는 계속될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지금 전국에 지방자치단체가 보유한 소각‧매립시설이 398개소가 있고 산업폐기물 소각‧매립시설 102개소가 있다. 면적 1002만ha, 인구밀도 23위인 나라에 이 정도 숫자의 폐기물처리장이 있다면 결코 적다고 볼 수 없다.

이들 기존 시설의 증설 또는 개·보수 등을 통해 효율을 증대시켜 활용하면 무리하게 8개의 신규 시설을 설치하지 않을 수 있다. 무리하게 공공처리장을 만들어서 민간 업계는 업계대로 고사시키고 주민과의 갈등과 불안 등 사회적 비용을 낭비할 필요는 없다.

"8개"라는 말과 "전국의 산업폐기물 처리"라는 두 마디에 긴장감이 고조되는 것은 고형연료 때문에, 필리핀 수출폐기물 때문에, 의성방치폐기물 쓰레기산 때문에 놀란 가슴이 진정되지 않아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