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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바람도 못 쐐…" 외로운 추석 앞둔 위안부 할머니

머니투데이
  • 김영상 기자
  • 임소연 기자
  • 김지성 기자
  • 2019.09.12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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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들 떠나면서 사람 냄새 옅어져…불편한 몸에도 일본 문제에는 누구보다 앞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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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경기도 광주 '위안부' 피해자 후원시설 '나눔의 집'에서 만난 이옥선 할머니(89). /사진=임소연 기자
"추석에? 남문시장에 좀 갔으면 좋겄어. 바지도 지금 이렇게 짧은 거 입었는데 긴 거 사 입게. 치마저고리도 입고 싶고…"

이옥선 할머니(89)는 무릎을 연신 주물렀다. 다리가 아파 걷기 힘들다면서도 바깥바람을 쐬러 나가고 싶다고 했다. 추석에 나들이 가고 싶은 곳을 묻자 "어디든 안 좋겠냐"면서도 이내 "근데 누가 데리고 가주겠냐"며 말끝을 흐렸다.

추석을 앞둔 주말인 8일. 경기도 광주 퇴촌면에 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후원시설인 '나눔의 집'을 찾았다. 앞서 지나간 태풍 '링링'(LINGLING)의 여파인지 이날은 방문객이 별로 없이 한산했다.

이곳에는 이옥선 할머니를 비롯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6명이 머물고 있다. 이중 몸을 편히 움직일 수 있는 할머니는 3명, 의사소통이 원활한 할머니는 2명뿐이다.

8일 찾은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은 전날 지나간 태풍 '링링'의 영향으로 한산한 편이었다. /사진=김지성 기자
8일 찾은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은 전날 지나간 태풍 '링링'의 영향으로 한산한 편이었다. /사진=김지성 기자
◇이웃사촌은 모두 고향에, 홀로 맞는 추석 명절= 할머니들에겐 찾아올 가족이 없다. 이옥선 할머니는 해방 2년 후부터 지난해 나눔의 집에 들어오기 전까지 충북 보은 속리산 법주사 근처에 살았다. 어렸을 때부터 친하게 지낸 이웃사촌들은 모두 그곳에 있다.

이 할머니는 "다른 할매들은 병이 들어서 나 혼자 논다"며 "소풍을 갈래도 다들 바쁘고 교통이 나빠서 심심하다"고 말했다. 금빛 저고리에 보라색 치마를 입은 할머니는 방 안에 앉아 방문객이 손톱에 칠해준 매니큐어를 자랑했다.

할머니는 노래 솜씨도 좋아 방문객에게 종종 민요도 들려준다. 이날도 인터뷰 도중 할머니는 소파에 앉아 눈을 감더니 민요를 한가락 시원하게 뽑으며 손을 둥실둥실 흔들었다.

방 한편 장롱 위에는 줄을 조이지 않은 장구가 놓여있었다. 할머니는 이제 힘이 없어서 못 친다며 손사래를 쳤다. 한쪽 벽에는 할머니가 3년 전 '위안부 기림의 날' 행사에서 장구를 치며 활짝 웃는 사진이 붙어있었다.

8일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의 할머니 생활관에서 이옥선 할머니(89)가 머무는 방. 어려서 소리를 한 이 할머니의 방 한 켠에는 장구가 놓여있다. /사진=김지성 기자
8일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의 할머니 생활관에서 이옥선 할머니(89)가 머무는 방. 어려서 소리를 한 이 할머니의 방 한 켠에는 장구가 놓여있다. /사진=김지성 기자
◇옅어지는 사람 냄새, 추석 냄새= 나눔의 집 직원도 바깥바람을 쐬고 싶은 할머니 마음을 잘 알고 있지만 상황이 여의치는 않다. 평균 연령이 90세를 넘기면서 거동이 쉽지 않은 데다 할머니를 돌볼 직원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나눔의 집에서 3년째 근무 중인 이혁진씨는 "할머니들이 가만히 앉아있는 걸 지루해해서 말벗도 해드리고 외출도 하려 하지만 시간과 인력이 부족하다"고 덧붙였다. 이날 나눔의 집에 있던 직원은 4명, 할머니와 함께 지내는 봉사자는 총 6명이다.

갈수록 세상을 떠나는 할머니들이 늘면서 추석 분위기도 덜하다. 이씨는 "할머니가 9~10분씩 살아계실 땐 방문객과 전을 부치고 윷놀이를 하거나 화투도 치셨다"고 했다.

◇일본 경제제재 후 나눔의 집 방문객 늘어= 일본의 경제보복에 따른 한일 갈등이 격화되면서 주말엔 40~50명이 나눔의 집을 찾을 정도로 방문객이 늘었다. 이전에는 평일 10명 안쪽, 주말에도 많아야 20명 정도였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심이 생긴 일본인이 직접 나눔의 집을 방문하기도 한다. 사진기자 야스다 나츠키(32)는 지난달 일본에서 '평화의 소녀상' 전시가 중단되자 궁금증이 생겨 나눔의 집을 찾았다.

그는 "정치적 압력으로 전시가 중단됐는데 일본 언론은 한국의 잘못만 이야기하고 있어 의심스러웠다"며 "한국인들이 '일본인은 역사를 제대로 보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망언에 속이 상할 법도 한 할머니들이 오히려 굳은 의지를 보여줘 직원들은 더 힘을 낸다. 이씨는 "다른 할머니는 '내가 먼저 죽나 아베가 먼저 죽나 한번 해보자'라며 오히려 강한 모습을 보여주셨다"며 "속이 상하다가도 할머니가 그렇게 먼저 말씀하시면 우리가 힘이 난다"고 했다.

8일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 추모공원에 '위안부' 할머니들을 응원하는 메시지가 걸려있다. 그 뒤로 피해 할머니를 형상화한 '대지의 여인'이란 작품이 전시돼 있다. /사진=김지성 기자
8일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 추모공원에 '위안부' 할머니들을 응원하는 메시지가 걸려있다. 그 뒤로 피해 할머니를 형상화한 '대지의 여인'이란 작품이 전시돼 있다. /사진=김지성 기자
할머니들이 머무는 생활관 뒤에는 고인이 된 할머니들을 기리는 추모공원이 있다. 피해자 17명의 비석 양옆엔 노란 나비 모양의 메모가 마치 꽃 위에 앉은 듯 붙어 있었다.

'할머니 사랑합니다', '할머님들 소원 꼭 잊지 않겠습니다' 방문객이 남기고 간 메모에는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가 가득했다. 전시관을 둘러보던 이태관씨(47)는 "마음 아파해주는 것 말고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며 "다른 사람들도 이런 마음을 오래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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