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드인차이나 두렵다'…인도가 RCEP못하는 이유

지난 4일(현지시간) 인도 수도 뉴델리에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RCEP' 문구가 적힌 종이를 불에 태우고 있다. /사진=AFP

세계 최대 자유무역협정(FTA)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 최근 타결됐다. 동남아시아 10개국과 중국·한국·일본·호주·뉴질랜드가 참여하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초대형 FTA 협정이다. 그러나 아시아 경제 규모 3위인 인도가 빠지면서 정식 서명은 내년으로 미뤄졌다.

RCEP가 정식으로 출범하면 세계 인구의 약 절반, 무역액의 30%가량을 차지하는 거대한 자유무역지대가 탄생한다. RCEP에 참여하면 경제성장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인도는 왜 이 좋은 기회를 마다하겠다는 걸까. 인도가 빠지면 RCEP 규모도 기존보다 인구는 37%, 무역액은 7% 각각 줄어든다.
중국산 제품의 인도 시장 장악 우려인도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중국'이다. 인도는 2018회계연도(2018년 4월~2019년 3월) 중국과의 무역에서 530억달러(약 61조2680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그나마 한 해 전보다 100억달러(약 약 11조5600억원) 줄어든 것이 이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RCEP로 무역 장벽까지 낮아지면 적자 폭 확대는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관세 인하로 값싼 중국 제품이 몰려들면 인도 산업도 충격을 받을 수 있다. 이미 인도 스마트폰 시장은 샤오미·오포·비보 등 중국 기업의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현지 업체 대부분이 고사 상태에 빠졌다. 2014년 한때 삼성전자를 누르고 인도 휴대전화 시장 1위를 차지했던 현지 업체 마이크로맥스는 현재 스마트폰은커녕 일반 휴대전화 시장에서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인도의 정치 명가 출신으로 야당인 인도국민회의(INC) 총재를 지냈던 라훌 간디는 "매년 중국으로부터 인도 국민 1인당 6000루피(약 10만원)어치의 상품 수입한다"면서 "이는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취임한) 2014년보다 100% 증가한 것으로 '인도에서 만들자(make in India)'가 '중국에서 사자(buy from China)'로 변질됐다"고 RCEP 협상에 참여한 모디 정부를 비난했다.

인도 국내총생산(GDP)의 18%, 전체 고용의 50%를 책임지는 농업 부문도 모디 정부가 RCEP 가입을 꺼리는 이유가 됐다. 호주와 뉴질랜드 등으로부터 농산품과 낙농제품 수입이 늘면 자국 농가가 큰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도가 RCEP에 불참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인도 낙농업체와 농민단체들은 일제히 "환영한다"는 뜻을 나타냈다.
글로벌 공급사슬서 소외되면 인도 경제 충격모디 정부가 가만히 손 놓고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않은 것은 아니다. 산업 피해를 최소화 하기 위해 인도로 들어오는 다른 나라 제품에 인도 부품이나 원재료 비중을 30% 이상 넣자고 주장했다. 세이프가드 제도 도입도 요구했지만 다른 나라가 받아들이지 않았다.


RCEP가 인도에 실질적으로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분석도 있다. 인도가 이미 RCEP 회원국 중 13개 나라와 FTA를 체결하고 있어서다. 이 가운데 인도와 FTA를 체결하지 않는 나라는 중국, 호주, 뉴질랜드 3개국뿐이다.

그러나 RCEP 불참으로 인도 경제가 경기침체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인도가 글로벌 공급사슬에서 소외될 수 있는데다, 인도 수출품이 경쟁력을 잃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미 컨설팅업체인 유라시아그룹은 "인도가 RCEP에서 빠지면 결과적으로 심각한 지정학적, 경제적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라며 "아시아에서의 영향력과 역내 공급사슬 참여 능력이 크게 훼손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