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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의 힙합

  • 강일권(‘리드머’, 음악평론가) ize 기자
  • 2019.12.05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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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이 주류가 된 이면엔 두 개의 혐오 논란이 있었다. 여성 혐오와 성소수자 혐오다. 힙합이 탄생한 이래 아티스트들은 쭉 이 논란과 맞닥뜨려왔다. 엄밀히 말하자면, 회피해왔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그래서 씬 내외적으로 이 문제를 공론화하려는 노력이 있었지만, 눈에 띄게 유의미한 성과를 낸 경우는 드물었다. 힙합 씬은 생물학적인 의미에서뿐만 아니라 사회학적 의미에서도 철저하게 남성 아티스트 위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다른 젠더의 래퍼들에게 허용된 자리는 없다시피했다. 그나마 여성 래퍼들은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서 끝내 고유한 영역을 만들어냈다. 퀸 라티파(Queen Latifah)와 엠씨 라이트(MC Lyte)처럼 메인스트림에서 성공한 여성 래퍼들이 주축이 되어 여성 혐오 가사에 적극적으로 대처한 덕이다. 그들은 음악과 인터뷰를 통해 강한 비판을 이어갔다.

반면, 퀴어(Queer) 래퍼들의 상황은 훨씬 어두웠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모두가 성소수자 힙합 뮤지션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들에겐 발언커녕 힙합 아티스트로서 나서는 것 자체가 모험이나 다름없었다. 이는 같은 혐오지만, 여성 래퍼와 퀴어 래퍼를 향한 혐오 사이의 온도차를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지점이다. 힙합에서의 여성 혐오는 대부분 여성 자체가 아닌 여성성이라는 성향을 향하고, 이를 같은 남성에게 대입하여 비하하는 과정에서 생성된다. 여성 혐오 단어로 일컬어진 ‘비치(Bitch)’의 사용이 대표적인 예다. 즉, 래퍼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혐오가 되어버리는 상황도 벌어진다. “난 여자들을 사랑하고 존중해. 그런 내가 왜 여성을 혐오하겠어? 그 욕설은 여성을 혐오하려고 쓴 게 아니야.”라는 래퍼들의 단골 멘트는 이 같은 배경에서 비롯된다. 여전히 여성혐오적인 가사가 난무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이 실제로 여성을 타깃삼아 혐오를 쏟아낸 경우는 (국내와 달리) 거의 없다. 부디 곡해는 마시라. 지금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힙합에서의 여성 혐오 논란은 잘못되었다거나 문제가 없다는 말 따위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래퍼들의 가사에서 발견되는 여성 혐오는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의지보다는 관습과 무지로부터 비롯한 경우가 많다는 얘기다.

그러나 성소수자 혐오는 확연히 다르다. 대부분 성적 지향만이 아니라 성소수자 자체를 향한다. 그만큼 타깃이 명확하고, 혐오를 행하는 래퍼들의 의지가 적극적으로 반영된다. 특히, 게이 래퍼들은 같은 흑인임에도 주요 배척 대상이었던 백인 래퍼들보다 인정받지 못했다. 한마디로 그들은 힙합 씬에서 애초에 없는, 아니 있어서는 안 될 존재들이었던 것이다. 아버지의 부재, 범죄와 마약으로 둘러싸인 주거환경, 인종차별에 의해 가로막힌 사회진출 등등, 빈민가 흑인들이 놓였던 특수한 상황, 그리고 흑인 커뮤니티가 전통적으로 개신교를 신봉하는 현실이 뒤섞인 가운데 나온 결과였다. ‘거리에서의 명성’과 남성성에 대한 집착이 강한 힙합 아티스트들 사이에서 이상의 요소가 거세된 게이 래퍼들은 치부이자 조롱거리이며, 죄악이었다.

물론, 퀴어 래퍼들의 움직임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략 ‘90년대 중후반 즈음, 캘리포니아의 언더그라운드 씬에서 메인스트림 힙합 아티스트들의 동성애 혐오 가사를 비판하고 반대하는 움직임이 전개됐다. 그 중심엔 성소수자 힙합 그룹 ‘딥 딕콜렉티브(Deep Dickollective)’가 있었다. 커밍아웃한 퀴어 래퍼들이 모여서 결성한 딥 딕콜렉티브의 공격적인 활동은 숨어있던 다른 성소수자 래퍼들과 LGBTQ 커뮤니티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일명 ‘호모 합 무브먼트(The homo hop movement)’의 시작이었다. 오늘날 호모 합은 성소수자 친화적인 힙합 음악을 총칭하지만, 처음부터 힙합의 서브장르 개념은 아니었다. 이 용어를 가장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은 딥 딕콜렉티브의 창립 멤버 중 한 명인 팀엠 티. 웨스트(Tim'm T. West)다. 그가 여러 인터뷰에서 밝힌 바를 종합해보면, 호모 합은 프로덕션이나 음악 스타일에 따른 분류가 아니라 성소수자 아티스트의 정체성을 대변하고 그러한 아티스트의 결속을 다지기 위한 동력에 가까운, 다소 추상적인 개념이었다. 심지어 농담에서 출발한 용어였다고 한다. 그룹의 또 다른 창립 멤버 주바 칼라암카(Juba Kalamka)는 ‘호모 합’이 팀엠 웨스트가 2001년 인터뷰 도중 농담 삼아 던진 말에서 시작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호모 합’이란 상징적인 용어를 만들어내고 부각시킨 것만으로 딥 딕콜렉티브의 존재와 활동은 유의미했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당대는 편견의 벽이 지금보다 훨씬 높고 견고했던 탓에 이들의 움직임이 LGBTQ 커뮤니티를 벗어나서까지 파급력을 갖진 못했다.

이후, 퀴어 래퍼들이 본격적으로 떠오르기 시작한 건 2000년대에 들어서다. 두 명의 래퍼, 카우션(Caushun)과 캐즈웰(Cazwell)의 성공이 기폭제가 됐다. 카우션은 메이저 레이블과 계약한 최초의 커밍아웃 성소수자 래퍼로 알려지면서 화제를 모았다. 캐즈웰은 댄서블한 팝-랩 음악으로 빌보드(Billboard) 차트에 오르면서 가장 상업적인 성공을 이룩한 성소수자 래퍼로 추대되었다. 1973년 힙합이 탄생한 이래, 메이저에서 게이 래퍼가 활동하며 히트까지 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그만큼 카우션과 캐즈웰의 메인스트림 입성과 성공은 힙합사를 장식한 결정적인 순간 중 하나다. 다만, 카우션은 최초 알려진 것과 달리 게이 래퍼가 아니었다. 이성애자 아티스트인 이반 마티아스(Ivan Matias)가 고안한 일종의 기믹(Gimmick)이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부정적인 반응도 뒤따랐지만, 그보다는 메이저와 성소수자 아티스트, 더 나아가 LGBTQ 커뮤니티 사이의 가교 역할을 했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2000년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부터는 LGBTQ 커뮤니티의 외부에 있는 아티스트들 사이에서도 힙합에서의 동성애 차별을 반대하는 움직임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칸예 웨스트(Kanye West)가 대표적이다. 그는 2004년, 유명 디제이인 스웨이 캘러웨이(Sway Calloway)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힙합은 처음에 자신의 권리를 위해 싸우고, 생각하는 것들을 솔직히 말하며, 장벽을 허물고자 하는 것처럼 보였어. 하지만 힙합 씬 안의 모든 이는 동성애자들을 차별하고 있지.”

이처럼 서서히 솟아오르던 호모 합은 2010년대에 접어들어 또 한 번의 큰 전환점을 맞이한다. 커밍아웃을 하는 힙합 아티스트가 대거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무엇보다 그들은 메이저에서 크게 성공한 아티스트였다. 힙합과 일렉트로닉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전위적인 랩 음악을 선보이고, 악동적인 면모를 드러내며 인기를 얻은 여성 래퍼, 아질리아 뱅크스(Azealia Banks)가 양성애자임을 밝혔고, 힙합 크루 오드 퓨쳐(Odd Future)의 멤버이자 얼터너티브 알앤비란 장르를 유행시킨 선구자 중 한 명, 프랭크 오션(Frank Ocean) 역시 본인이 퀴어라고 밝혔다. 특히, 프랭크 오션은 인기가 절정에 이르던 당시 텀블러에 장문의 편지를 올림으로써 커밍아웃하여 더더욱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로부터 몇 년 뒤인 2017년엔 몇몇 가사에서 여성 혐오, 혹은 성소수자 혐오 논란을 부른 바 있는 오드 퓨쳐의 수장 타일러(Tyler, The Creator) 역시 양성애자임을 커밍아웃했다.

이렇듯 스타 뮤지션들의 커밍아웃이 이어지는 가운데, 다른 한편에서는 이성애자 힙합 아티스트들이 성소수자 차별을 반대하며 움직이고 있었다. 한국에서도 널리 알려진 맥클모어 앤 라이언 루이스(Macklemore & Ryan Lewis)의 동성혼 지지 트랙 "Same Love"는 그 과정 속에서 탄생했다. 현재는 엔젤 헤이즈(Angel Haze), 케이라니(Kehlani), 빅 프레디아(Big Freedia), 케이크스 다 킬라(Cakes da Killa), 리프(Le1f), 미키 블랑코(Mykki Blanco), 영 엠에이(Young M.A.), 케빈 앱스트랙(Kevin Abstract) 등등, 다양한 성적 지향을 바탕으로 각자의 호모 합을 추구하는 성소수자 힙합 아티스트들이 메인스트림과 언더그라운드를 막론하고 활발히 활동 중이다. 최근엔 컨트리 음악과 랩을 퓨전시킨 싱글 “Old Town Road”로 빌보드 차트를 정복했던 신예 랩스타, 릴 나스 엑스(Lil Nas X)도 커밍아웃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도저히 그려지지 않던 광경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획기적인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여전히 힙합 씬에서 성소수자 아티스트의 위치는 불안정하다. 여성 혐오와 마찬가지로 성소수자 혐오 문제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그러나 많은 이성애자 래퍼들이 가사에서의 성소수자 혐오를 피하고자 노력하고, 그들과 함께 어울리는 모습은 매우 고무적이다. 오랫동안 아무렇지 않게 써왔던 동성애자 혐오 단어 ‘Faggot’의 사용에 대해 숙고하고 지양하는 모습은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그리고 그 길의 끝이 어떨지는 모르지만, 이것 하나는 분명하다. 힙합은 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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