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국 등지는 루마니아 의사…해법이 EU 동일임금?

지난해 12월 13일(현지시간) 열린 유럽연합(EU) 정상회의/사진=로이터

유럽연합(EU)이 동유럽 국가에서 서유럽 국가로의 ‘두뇌 유출’을 막고자 EU 차원의 최저임금제 시행을 준비 중이다. 그러나 단체교섭 모델의 역사가 깊은 북유럽 3국은 최저임금 설정에 반대하고 있어 제도 도입에 난항이 예상된다.

EU는 각 회원국의 월평균 임금 60%를 최저임금 선으로 지정하는 제도를 도입하려 한다. 이는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신임 EU 집행위원회 위원장의 취임 공약이자 지난해 니콜라스 슈미트 EU 고용 담당위원회 위원이 제시한 안을 초안 삼았다.


도입 목적은 동서 간 '두뇌 유출’을 막는 것이다. 서유럽 국가들은 유럽 내 ‘인력 블랙홀’이다. 상대적으로 임금이 낮은 동유럽 국가의 고급 인력들이 임금이 높은 서유럽으로 밀물처럼 빠져나가면서다.

유로스타트 자료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서유럽-동·중부유럽 국가 간에는 평균 20%의 임금 격차가 존재한다. EU에서 가장 임금이 높은 룩셈부르크와 가장 낮은 축에 속하는 그리스·루마니아·불가리아 월 최저 급여는 2000유로(250만 원) 대 500(64만 원)유로 수준으로 4배 차이가 난다.

이 때문에 동유럽 국가들은 인구 축소와 개발 저하 등의 문제를 겪고 있다. 유엔 인구전망 자료에 따르면 유럽 내 인구 수축이 가장 빠를 것으로 전망되는 10대 국가 중 7개국이 불가리아나 라트비아 같은 동유럽과 중부유럽 국가다. 세계은행 분석을 보면 이들 국가에서 인구 손실이 일어나는 원인의 60%는 ‘인력 이동’, 30%는 출생률 감소다.


라트비아는 2004년 EU 가입 이후 인구의 5분의 1이 감소했고 루마니아와 리투아니아 인구도 2007, 2015년 EU 진입 이후 6분의 1이 줄었다. 불가리아는 30년 전보다 무려 인구가 22% 줄었다. 루마니아에선 2009~2015년 사이 의사 면허 보유자의 절반이 나라를 떠났다. EU 내 인력이동이 쉬워 고학력 인력들이 더 높은 임금을 찾아 이동한 것이다.

유럽연합(EU) 상징기/사진=로이터

EU 차원의 최저임금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고안됐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해부터 제도 도입을 공개적으로 지지해왔다.

다만 덴마크와 스웨덴, 핀란드 등 북유럽 3국은 제도에 난색을 보였다. 이들 국가는 ‘노사 단체 협약’을 통해 임금을 정해온 역사가 깊다. 그래서 국가 차원의 법정 최저임금제도도 없다. 노사 협의로 정한 최저임금이 있고, 대개 EU 내 최고 수준이다. 2018년 기준 덴마크의 최저임금은 대략 13.50유로(1만5000원)다.

북유럽 3국은 EU 차원의 최저임금제를 도입하면 자국이 오래 지켜온 노사 합의 모델이 망가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또 임금이 되레 후퇴할 수 있다는 걱정도 있다. 법정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사측이 임금협상에 소극적으로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피터 험멜가드 덴마크 고용부 장관은 가디언에 “유럽 내 임금이 낮은 국가의 시민들을 위해 높은 임금을 제시할 필요는 있으나, 목표 달성 수단이 각국의 전통 모델을 존중해야 한다”고 했다. 험벨가드 장관은 비슷한 우려를 나타낸 핀란드, 스웨덴 장관들과 함께 ‘단체교섭’ 시스템이 침해받지 않으리란 서면상 보증을 EU에 요구했다.

칼-페터 토르왈드손 스웨덴 무역노조연맹 회장은 "우리는 정부가 법정 최저임금을 도입하려는 걸 막아왔다“며 "EU 차원의 최저임금을 설정하면 의회가 임금협상에 대한 통제권을 가져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슈미트 위원은 “유럽 내 모든 근로자는 EU가 정한 사회적 권리, 적절한 생활 수준을 보장하는 임금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EU는 ‘최저임금’을 정하려는 게 아니라 ‘틀’을 제시하려는 것“이라며 ”이 틀은 EU 내 불평등을 완화하고 두뇌 유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최저임금제를 도입·시행하더라도 애초 임금수준와 높은 국가 사이의 임금격차가 효과적으로 줄어들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평균임금 자체에서 차이가 크기 때문에 각 국가별로 '60%' 하한선을 정해도 국가 간 차이는 여전할 수 있다. 법정 최저임금이 지나치게 낮게 설정된 저개발 국가에서 하한선이 올라가는 효과는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