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펀드 '펀드런' 촉발 TRS 둘러싼 3가지 쟁점

자본시장이 시끄럽다. '라임 사태'로 촉발된 사모펀드 문제가 사모펀드 업계 뿐 아니라 증권가 전반으로 번질 우려가 나온다. 손실을 우려한 증권사가 자금 회수에 나서면서 라임자산운용에 이어 알펜루트자산운용까지 펀드 환매 중단을 결정했다. 당국이 나서 자제를 요청했지만, 불안은 여전하다.

시끄러운 소동 한가운데 가장 많이 들리는 단어가 총수익스와프(TRS·Total Return Swap)다. 자산 소유권과 총수익 권리를 나누는 간단한 구조의 파생상품인데, 자본시장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TRS를 둘러싼 잡음과 논란을 알아봤다.


수수료 챙긴 증권사 자금회수 논란TRS 거래는 쉽게 말하면 일정한 수수료를 받고 투자를 대행해주는 일이다. 대신 투자에 따른 결과는 모두 의뢰인이 책임진다. 손실이 나든, 수익이 나든 대행업자는 상관없다는 얘기다. 이를 라임 사태에 대입하면 투자 대행 업자는 증권사, 의뢰자는 다양한 사모펀드를 운용하는 자산운용사다. 증권사가 기초자산을 사들여 소유권은 남기고, 총수익(TR) 권리만 따로 분리해 사모펀드에 양도했다. 투자에 따른 수익이나 손실은 모두 사모펀드 차지였다. 증권사의 이 같은 업무를 프라임브로커리지서비스(PBS)라 부른다.

왜 이 같은 방식이 생겼을까. 짭짤한 수수료 수입을 원하는 증권사와 자기자본보다 더 많은 투자로 수익률을 높이려는 사모펀드의 이해관계가 일치해서다. 일반적으로 증권사는 TRS 계약을 통해 1~2% 가량의 수수료 수익을 올린다. 계약상 담보율 조정, 자산 처분 등에 대한 권한도 갖는다. 자산 처분 시 일반 투자자보다 선순위로 자금을 회수할 수 있다.

자산 소유권을 증권사가 가진 탓에 사모펀드 장부에는 부채로 기록되지 않는다. 이른바 부외(簿外)부채다. TRS를 이용하면 부채비율 걱정 없이 최대한 투자 규모를 키울 수 있다. 투자 규모가 커지면 다시 증권사 수수료 수입 확대로 이어진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관계가 되는 것이다.


문제는 손실이 발생했을 때다. 계약 구조가 유리하게 짜여 진 탓에 증권사는 투자 결과에 관한 책임을 지지 않지만, 사모펀드가 흔들리면 온전한 자금 회수가 어려워질 수 있다. 돈을 빌려줬는데, 받을 길이 막막해지는 것이다. 증권사로서는 급히 TRS를 중단하고 자금 회수를 시도할 수밖에 없다. 증권사 자본으로 레버리지(차입)를 일으켰던 사모펀드는 결국 유동성 위기로 내몰리게 된다. 지난해 시장을 떠들썩하게 만든 라임자산운용의 펀드 환매 중단 사태가 바로 이렇게 진행됐다.

원종준 라임자산운용 대표이사가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IFC에서 최근 6200억원 규모의 사모펀드 환매 중단 사태와 관련해 브리핑 하고 있다. /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펀드런, 펀드 줄도산 사태 우려라임 사태에 놀란 증권사가 너도나도 TRS 거래를 중단하면서 사모펀드 업계에는 비상이 걸렸다. 당장 자금을 빼서 증권사에 돌려주거나 높은 이자율을 감당해야 하는데, 기초자산 대부분이 비상장 주식이나 신주인수권부사채(BW), 전환사채(CB) 등이라 처분이 어렵다.

이때 사모펀드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펀드 환매 중단이다. 우선 투자자가 돈을 찾지 못하도록 막고 문제를 해결할 시간을 버는 것이다. 알펜루트운용이 최근 1108억원 규모의 3개 펀드 환매를 중단한 이유도 한국투자증권, 미래에셋대우 등 증권사로부터 TRS 대출금 상환을 요청받았기 때문이다.

라임에 이어 비교적 견실한 것으로 알려진 알펜루트까지 펀드 환매를 중단하면서 펀드런(대규모 펀드 환매) 우려가 현실화됐다. 이번 사태로 사모펀드 업계 전체 신뢰도가 추락하고, 거시경제 여건까지 불리해지면 투자자 이탈과 펀드 줄도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제기된다.

이태훈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소수의견이자 절대적인 발생 가능성은 낮다는 것을 전제로 "여러 펀드의 동시다발적인 단기자금 수요로 단기금리가 폭등하면 많은 투자은행과 헤지펀드가 유동성 문제로 도산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28일 열린 금융상황 긴급점검회의에서 발언하는 손병두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왼쪽). /사진=금융위원회

당국 개입, 한발 물러선 증권사
펀드런 우려가 커지자 금융당국이 급히 개입했다. 증권사에 TRS 자금 환수 자제를 요청했다. 손병두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지난 28일 "PBS 증권사의 역할은 사모펀드 운용지원과 육성을 위한 것인데, 본래 취지에 맞지 않게 시장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다"고 질타했다. 금융감독원도 6개 증권사 담당 임원을 불러 불가피한 사유가 아니면 TRS 계약해지나 증거금을 올리지 말 것을 주문했는데, 증권사들이 앞으로 추가 환수를 않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황성윤 금감원 금융투자검사국 국장은 "증권사들이 라임과 알펜루트 이외에는 아직 문제 있는 펀드는 없다고 했다"며 "증권사 입장에서는 사모펀드 쪽에서 대처를 잘하지 못했다는 불만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금융당국의 구두개입이 시장 불안을 얼마나 잠재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TRS가 논란이 된 것이 처음도 아니다.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때 국내 금융기관이 JP모건으로부터 TRS로 자금을 조달했다 큰 손해를 본 경험이 있다. TRS는 부외 거래라는 특성상 기업 간 인수합병(M&A)이나 지배구조 개선에도 자주 쓰인다. 롯데그룹의 KT렌탈 인수, 아시아나항공의 모회사 금호산업 지분 매각, 현대차의 현대제철 지분 매각 등에 모두 TRS 기법이 도입됐다. 이 과정에서 TRS가 대기업의 부실 계열사 지원, 재무구조 개선 등에 악용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2018년에는 금감원이 12개 증권사의 TRS 거래 규정 위반 사례를 적발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