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1.3조 사상 최대 '매도 폭탄'

코스피가 전 거래일 대비 85.45포인트(4.19%) 하락해 1954.77로 마감한 9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코스피지수가 4% 하락하는 가운데 외국인 순매도 규모가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유가가 폭락하면서 위험자산에 대한 기피 심리가 강해진 것이다. 미국의 셰일가스 업체들의 신용(크레딧) 위험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어 증권업계도 저가매수보다 지켜볼 것을 권하고 있다.

9일 코스피지수는 전날보다 4.19% 떨어진 1954.77로 장을 마쳤다. 2018년 10월 이후 최대 하락폭이다. 이날 외국인 순매도 규모는 1조3126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1999년 한국거래소가 데이터를 집계한 이래 사상 최대 규모다. 이전 최대치는 2010년 11월11일에 기록한 1조3099억원이었다. 당시 코스피지수는 도이치 옵션사태로 2.7% 하락했다.


이날 미국 야간시장에서 4월물 WTI(서부텍사스산원유, 오후 5시 기준)가 26.1% 급락한 것이 증시에 충격을 줬다. 1991년 1월 걸프전쟁 이후 최대 하락폭이다. 조익재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의 많은 셰일업체들은 정크본드 등급인 경우가 많다"며 "유가가 폭락하면 미국 시장에서 신용 위험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유가 하락에 미국 증시가 빠지고, 한국 증시까지 연이어 투자심리가 악화됐다는 설명이다.

박희찬 미래에셋대우 글로벌자산배분팀장도 "유가 하락으로 직접 타격을 받는 국가들과 기업이 있다는 것도 문제"라며 "러시아나 브라질 같은 주요 산유국들의 신용에 큰 타격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 증시에서도 유가에 민감한 조선·건설·정유주들이 낙폭이 깊었다.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현대건설, S-Oil, SK이노베이션은 6~12%가 하락했다. 시총 상위주 위주로 외국인 매도세가 거세지면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NAVER, LG화학도 4~6% 떨어졌다. 반면 한국전력은 전기 생산 원가가 떨어지는 것으로 해석돼 8.06% 급등했다.

안전자산 가격은 최고점을 경신했다. 미국 10년물 국채 수익률은 0.45%로 사상 최저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 국고채 3년물 금리도 1.038%로 기준금리(1.25%)를 훨씬 밑돌고 있다. 조 연구원은 "위험자산은 바닥이 불투명할 정도로 하락하는 반면, 안전자산은 신고가를 경신하면서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며 "전세계 금리도 내려가고 있어 외국인의 향방을 가늠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러한 상황에서 각국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인하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김영환 KB증권 연구원도 "경기를 부양할 수 있는 것은 중앙은행과 정부의 대응이지만 당장 반등은 어려워 보인다"며 "코로나19 사태가 지속되고 있어 안전자산 강세와 주식 급락장이 한번 더 나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동안 외국인이 주식을 대거 매도해 추가 매물 폭탄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도 나온다. 최근 한달간 코스피시장에서 외국인은 총 7조984억원을 순매도 했다. 연기금은 8995억원을 순매수해왔다. 곽현수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외국인이 많이 팔고 있어, 최근 한달간 외국인과 연기금 순매수 차가 역대급을 큰 상황"이라며 "매도세는 이어지겠지만 매도 강도는 이번 주를 정점으로 약화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