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유가 전쟁' 맷집 충분할까

사진=AFP

"배럴당 60~70달러의 시대는 돌아오지 않는다. 코로나19는 역사적 전환점이 될 것"

국제 유가가 배럴당 30달러 초반선을 전전하면서 러시아 내부에서 경제 침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러시아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촉발한 '유가 전쟁'에 맷집을 과시하며 버티고 있다.


20일(현지시간) AFP통신은 러시아 석유회사들이 유가 하락으로 인한 타격을 호소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에서 두 번째로 큰 석유회사 루코일의 레오니드 페둔 부사장은 "사우디아라비아의 감산 요구를 거절했던 러시아 석유사들조차 유가가 25달러까지 떨어지는 '악몽'은 상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18일 국제유가는 전날 대비 24.42%나 폭락하면서 배럴당 20달러 붕괴 직전까지 갔다가 19일 미국이 전략 비축유를 매입하면서 가까스로 반등해 배럴당 25달러를 찍었다.

루코일은 이날 15억 달러 비용 절감 조치를 발표하면서 허리띠를 졸라맸다.


안톤 게르마노비치 실루아노프 러시아 재무장관은 전날 "배럴당 42달러를 기준으로 상정한 예산은 강한 긴축으로 2018-2019 흑자를 기록했으나 올해는 적자를 기록할 수 있다"며 "모든 경제 부분이 위축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달 5일 사우디는 코로나19 발발로 인한 석유 수요 감소에 대응하기 위해 러시아에 감산을 요구했으나 러시아는 이를 거부했다. 이에 사우디는 급선회해 증산과 유가 인하를 선언, '유가 전쟁'의 신호탄을 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사진=AFP

전문가들은 '저유가'가 장기화하면 러시아 경제에 타격을 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세운 경제 성장 목표에 차질을 줄 것으로 봤다. 푸틴 대통령은 2024년까지 빈곤율을 절반으로 낮추고 3% 이상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겠다고 내걸었다.

이고르 니콜라예프 FBK그랜트손튼 연구소 애널리스트는 "러시아 경제가 코로나19와 유가 하락으로 인한 이중고에 부딪힐 것"이라며 "2008~2009년 위기 때보다 생활 수준이 악화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가장 고통을 겪게 될 것"이라고 비관적 전망을 내놨다.

그는 "러시아 경제가 원자재에 의존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코로나19가 역사적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최근 시장 불안에 외화 대비 루블화 환율도 치솟아(가치 하락) 18일 모스크바 증권거래소에서 환율은 장중 한때 전장 대비 6% 이상 오른 80.01루블까지 올랐다. 러시아가 경제 위기를 겪었던 2016년 2월 이후 최고치다.

그러나 러시아가 큰 타격을 입지 않을 거란 낙관적 예측도 있다. 소피아 도네츠 르네상스캐피탈 이코노미스트는 "러시아가 다른 국가보다 현재의 충격을 더 잘 극복할 재정적 준비가 돼 있다"고 분석했다. 유가가 40달러 선에만 머문다면 러시아가 사우디보다 유리할 거란 예측도 있다.

푸틴 정부는 이번 주 초 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3000억 루블(4조7000억 원)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또 관광업 등 일자리 축소가 예상되는 부문에도 지원을 집중하겠다고 했다.

지난해 러시아 경제성장률은 1.3%로 미미했다. 지난해 7월 기준 러시아 내 절대빈곤 인구는 전 국민의 14.3%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