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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성이라도 해야 반짝 관심…장애인권리보장법 꼭 필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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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4.2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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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장애인의 날 만난 박경석 전장연 대표 행글라이딩 사고로 중도장애인…노동문제 목격 후 본격 운동

박경석 전장연 대표가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 '내랑 소주 한잔 하실 사람요'라고 글을 올렸다 © 뉴스1 (박 대표 페이스북 캡처)
박경석 전장연 대표가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 '내랑 소주 한잔 하실 사람요'라고 글을 올렸다 © 뉴스1 (박 대표 페이스북 캡처)
(서울=뉴스1) 서혜림 기자 = 희끗한 머리를 꽁지머리로 질끈 묶고 컴퓨터 앞에서 장애인 인권 관련 진정서를 만들고 거리로 나가 장애인 복지 투쟁에 앞장서온지 어느새 13년째다. 장애인들의 투쟁현장에는 늘 그가 있다. 전국장애인철폐연대(전장연)의 박경석 대표(60)다.

올해 환갑을 맞는 박 대표는 하반신 마비장애 1급 장애인이기도 하다. 박 대표는 2007년 전장연이 만들어질 때부터 상임대표를 역임하며 장애인들의 고용문제, 수화통역문제, 장애등급제 폐지같은 굵직한 현안들을 투쟁해 처리해왔다.

영남대학교에서 문화인류학을 전공한 박대표는 원래부터 장애인은 아니었다. 그는 중도장애인이다. 175cm의 키에 건장한 체구였던 박 대표는 해병대 수색대에 지원해 특수부대에서 낙하산을 타고 하늘을 나는 일을 즐겼다. 그리고 24살, 1983년 그는 부암산 산중턱에서 추락하고 만다. 행글라이딩 사고였다.

"5년 동안 죽지 못해서 집 구석에 쳐박혀있기만 했어요. 아마 행글라이딩 조립과정에서 잘못된 것 같은데... 정신을 잃고 며칠 뒤 깨어났죠"

선장이 되고 싶었던 그의 꿈은 5년 동안 꿈에서조차 떠올리고 싶지 않을 아픔이 됐다. 하반신 마비. 다시는 걸을 수가 없었다. 한발짝이라도 가려면 휠체어 없이는 불가능한 삶이 24세에 찾아왔다.

그러던 그가 내상을 회복하던 1988년 서울의 한 장애인복지관을 방문했고 그의 삶은 다시 변곡점을 타게 된다. 박 대표는 '뭐라도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컴퓨터 기술을 알려주고 취업 기회를 준다는 복지관에 찾아가 직업훈련을 받았다. 그러나 그가 장애인이 되어 바라본 세상. 믿을 수 없을 만큼 암흑 덩어리였다.

"알고보니 제대로 취업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어요. 컴퓨터 다루는 일은 우리나 비장애인이나 둘다 똑같이 일을 잘 할 수 있었는데 아예 취업 기회 자체가 없었죠. 현실이 너무 비참했어요."

장애인들의 노동 현실을 처음 세상에서 마주한 박 대표는 바로 투쟁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그리고 어쩌면 인생의 선배일 수 있는 장애인단체의 회원들이 운동하는 것을 지켜봤다.

그는 장애인고용촉진법이 만들어지던 순간을 똑똑히 기억한다. 선배들은 2년을 치열하게 싸웠고 결국 1990년 '장애인 고용촉진 등에 관한 법'을 사상 최초로 제정되게 만들었다.

"선배들 투쟁 속에서 장애인 문제는 개인이 열심히 해서 취업하는 문제가 아니라 모두의 문제, 그러니까 사회적 변화나 법제도가 필요한 문제라고 처음 깨달았어요."

그는 1993년 노들장애인야학에 교사로 들어가 장애인들을 위한 인권운동을 본격 시작했다. 2007년 전장연이 만들어질 때부터 지금까지 대표로 있으며 장애인들의 고용문제, 혐오차별 대응, 기자회견과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점거투쟁 등 장애인들의 모든 투쟁의 '대부'가 되었다.

"요즘 해온 일은 설요한 중증장애인 동료지원가의 죽음에서 나타난 노동의 문제이죠. 장애인의 노동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시장 중심의 자본주의 경제체제 내에서 중증장애인에 대한 현실적인 일자리 대안을 만들어야 해요."

고 설요한씨는 전남 여수에서 중증장애인 지역맞춤형 취업지원 시범사업에 참여해 일하다가 지난해 12월 미안하다는 문서를 동료에게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사망 직전까지 동료에게 과도한 업무를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실적을 채우지 못하면 임금을 반납해야 한다며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해왔다.

전장연은 이재갑 고용노동부장관에게 설씨의 조문과 면담, 그리고 공공일자리 보장을 요구하며 국가인권위원회 건물 안과 서울고용노동청 건물 안에서 점거 투쟁했다. 최근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 19) 확산 우려로 서울노동청 점거 투쟁을 지난 2월부터 일시 중단한 상태다.

전장연, 2020년예산쟁취위한 농성선포 기자회견 © 뉴스1 서혜림
전장연, 2020년예산쟁취위한 농성선포 기자회견 © 뉴스1 서혜림

전장연은 다소 과격해보일 수 있는 방식의 점거투쟁도 가리지 않는다. 2012년부터 5년 간, 즉 1842일 동안 전장연은 광화문 지하차도에서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를 외치며 천막농성을 했다. 아울러 장애인고용공단 앞에서 2019년에 시작해 84일 동안 점거농성을, 인권위가 있는 서울 중구 나라키움저동빌딩 1층에서 점거농성을 하기도 했다.

실제로 농성을 통해 해결된 사례가 있냐고 묻자 박 대표는 어느 정도는 있다고 끄덕였다. 박 대표는 "장애등급제는 2019년 7월1일부터 일부 폐지됐고 부양의무자 폐지는 주거급여까지 일단 폐지되고 있는 상태다"라며 "(설요한씨 관련해서) 이재갑 장관이 사과를 하기도 했고 해결을 위한 대화가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가 만 65세까지 지원하고 이후 혜택을 받지 못하는 점에 대해서도 투쟁을 통해 지자체에서 일정 부분 추가급여를 지원해주기로 확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박 대표는 아직 안심할 수는 없다고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았다 말한다. 그는 "(설요한씨 관련해서는) 실질적으로는 기획재정부의 문턱을 넘어야 하며 개선의 여지를 지켜봐야 하는 상태"라며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도 서울이나 대구에서 추가급여를 보존해주는 정도지 중앙정부 차원의 개정은 없다"고 비판했다.

박 대표는 "기자회견도 하고 언론홍보도 하고 SNS도 하고 정책토론, 민원도 준비하지만 그 방식들 만으로 오랫동안 쌓여온 장애인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장애인들의 문제는 전 인생에 대한 문제고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다"고 농성의 이유를 설명했다.

그래도 박 대표는 현정권에 이르러 장애인들을 위한 정책 방향 설정이 수용시설문제가 아닌 지역사회 통합으로 바뀐 점에 대해서 높이 평가한다고 밝혔다. 박 대표는 "역대 대통령 중에서 이렇게 장애인들의 문제를 대통령 선거를 통해 표현한 사람은 없었다"며 "문재인 대통령이 진실되게 신뢰성있게 정책을 추진해줬으면 한다"고 바랐다.

그는 총선이 끝난지 4일, 그리고 제39회 장애인의 날인 20일 여당과 정부에 이렇게 당부한다. "문 대통령이 약속한 것만을 제대로 지켜줬으면 한다"며 "장애등급제 완전히 폐지하고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을 통해 법률적으로 장애인들의 권리나 복지 서비스를 확실히 보장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에게 '24살 때 행글라이딩 조립을 제대로 했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가끔은 드냐고 잔인한 질문을 해봤다. 그는 의외로 담담했다.

"그런 생각은 없습니다. 그런 문제보다 또 다른 삶에 대한 선택이 있는 거죠. 과정 속에 또 다른 삶이 있고 또 다른 사람들이 있는 거예요."

박경석 전장연 대표 © 뉴스1 (박 대표 페이스북 캡처)
박경석 전장연 대표 © 뉴스1 (박 대표 페이스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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