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피소에 계신 어머니 생각하며…수해현장으로 달려갑니다"

순천소방서 산악119구조대 조세훈 소방위와 동료대원들이 지난 8일 집중호우로 침수된 전남 구례군 한 마을에서 시민들을 구조하고 있다.(독자제공)2020.8.11 /뉴스1 © News1

(순천=뉴스1) 허단비 기자 = "곡성 물난리로 혼자 계신 노모도 대피소에 계신데 참 죄송스럽죠. 그래도 어머니를 생각하며 오늘도 수해 복구 현장으로 나섭니다."

순천소방서 산악119구조대 조세훈 소방위(48)는 12일에도 전남 구례 수해 현장으로 향했다.


전남지역에 600㎜이상의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지며 섬진강이 범람, 전남에서는 곡성과 구례를 비롯한 대부분의 지역이 물에 잠기는 등 큰 피해를 입었다.

수마는 조 소방위의 노모가 사는 곡성 집에도 들이닥쳤다. 하지만 조 소방위는 곡성이 아닌 구례 수해현장으로 달려 왔다.

조 소방위는 "홀로 계신 노모의 곡성 집도 침수가 돼 대피소에 계신다. 내심 아들이 와서 도와주길 바라시는데 멀리 사는 누님들이 곡성까지 내려와 고생하고 있어서 참 죄송스럽다. 그래도 맡은 임무가 있다 보니 가지 못했는데 어머니를 생각하며 내 가족이라는 마음으로 복구 활동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복구 지원에 나선 구례는 참혹했다. 가득 찬 빗물이 빠진 구례 읍내와 마을 곳곳은 온통 진흙밭이었다. 도로에는 소 사체와 온갖 잡동사니가 널브러져 있고 알 수 없는 악취가 진동하고 있었다.

고령 인구가 많은 농촌 마을 특성상 소방대원들과 공무원, 봉사자들의 도움의 손길 없이는 어르신들이 일상생활로 돌아가기 힘든 상황이었고 그 역시 이를 외면할 수 없었다.

24시간 연속근무를 시작한 지 수일째. 가족들 얼굴을 본 지도 벌써 일주일이 넘었다.

조 소방위를 비롯한 순천소방서 대원들 모두 며칠 동안 쪽잠으로 간신히 버텨가며 수해 현장 복구와 구조활동에 투입됐다.

그는 "체력적으로 힘들고 잠을 못 자서 많이 지친 상태이긴 합니다. 그래도 막상 현장에 나가면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에 그 순간은 힘이 나더라고요"라며 겸연쩍게 웃었다.

지난 2일 오전 전남 순천시 팔마체육관에서 열린 고(故) 김국환 소방장의 영결식이 끝나자 운구 행렬이 동료 대원들이 경례를 받으며 영결식장을 나서고 있다. 2020.8.2/뉴스1 © News1 지정운 기자

수해 복구 중 가장 힘든 점이 무엇인지 묻는 말에 조 소방위는 불현듯 무언가 생각난 듯 멈칫했다. 그리고 이내 떨리는 목소리로 "동료들이 걱정"이라는 답을 했다.

조 소방위는 지난달 31일 수난 구조활동 중 순직한 순천소방서 산악119구조대 소속 김국한 소방교의 동료이다. 김 소방교는 구례군 토지면 피아골 계곡에서 피서객들을 구조하다 급류에 휩쓸리는 사고를 당했다.

소방관들에게 동료는 위기의 순간을 함께하며 서로의 목숨을 구해주는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사이이다. 김 소방교의 순직으로 심리 치료 대상자였던 조 소방위는 마음을 추스를 새도 없이 매일 현장에 나서고 있었다.

그는 "순직 당시 같이 구조 활동에 나섰고 사고 이후 시신 인양도 제가 했습니다. 아직도 그 친구의 명패가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데…마음 추스를 새도 없이 수난 현장에 나서게 되니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가장 걱정"이라며 눈물을 훔쳤다.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던 그는 이내 마음을 추스르고 가장 힘이 되는 순간을 떠올려 말했다.

"지난 8일 피아골에서 구조 활동을 벌이던 중에 소방차에도 순식간에 물이 차올라 대원들도 위험했던 순간이 있었다. 다행히 인명피해 없이 차에서 빠져나온 뒤 시민들을 모두 구조했는데 일상으로 돌아간 분들이 목숨을 구해주셔서 감사하다며 전화를 하셨을 때 큰 힘이 됐다."

11일 오전 순천소방서 대원들이 지난 8일 수난 구조활동시 침수된 소방차와 장비들을 정비하고 있다.(독자제공)2020.8.11 /뉴스1 © News1

조 소방위는 "아무리 힘들어도 시민분들이 '구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해주실 때, '정말 수고가 많으시다'고 따뜻한 위로를 전해줄 때 뭉클하기도 하고 소방관으로서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최악의 재난상황인 구례에서도 소방대원들을 응원하는 어르신들 덕분에 힘을 얻는다고 했다.

그는 "열심히 복구 지원하면서 일하고 있으면 어르신들이 괜찮다고 하는데도 그렇게 김밥 한 줄, 음료수 한 병을 쥐여주고 가신다. '이런 거 못 받는다'고 해도 꼭 버선발로 쫓아와서 손에 쥐여주시는데 그 마음에 아무리 힘들어도 힘이 나는 것 같다"며 웃었다.

조 소방위는 "비록 지금은 모두 힘들지만 다같이 힘을 모아 위기를 잘 극복해 빨리 일상으로 돌아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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