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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대당한 아이를 만나러 갔다[남기자의 체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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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형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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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1.1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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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아동보호전문기관 체험기(記)…학대 행위자들 욕하며 거부, 힘들어도 "아이 살리겠다"고

[편집자주] 수습기자 때 휠체어를 타고 서울시내를 다녀 봤습니다. 장애인들 심정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자 생전 안 보였던, 불편한 세상이 처음 펼쳐졌습니다. 뭐든 직접 해보니 다르더군요. 그래서 체험해 깨닫고 알리는 기획 기사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름은 '체헐리즘' 입니다. 제가 만든 말입니다. 체험과 저널리즘(journalism)을 하나로 합쳐 봤습니다. 사서 고생한단 마음으로 현장 곳곳을 몸소 누비겠습니다. 깊숙한 이면의 진실을 알리겠습니다. 소외된 곳에 따뜻한 관심을 불어넣겠습니다.
아빠가 알코올 중독으로 방치돼 학대 신고가 들어왔던 산들이(가명). 전남 아동보호전문기관 도움으로 아빠는 술을 많이 줄였다. 아이는 다행히 잘 자라고 있다. 한쪽 벽에 그어진, 아이의 키가 그걸 말해줬다. 그리고 함께 걸린 자랑스런 임명장./사진=남형도 기자
아빠가 알코올 중독으로 방치돼 학대 신고가 들어왔던 산들이(가명). 전남 아동보호전문기관 도움으로 아빠는 술을 많이 줄였다. 아이는 다행히 잘 자라고 있다. 한쪽 벽에 그어진, 아이의 키가 그걸 말해줬다. 그리고 함께 걸린 자랑스런 임명장./사진=남형도 기자
학대당한 아이를 만나러 갔다[남기자의 체헐리즘]
까무잡잡하고 동그란 얼굴이 쑥 나왔다. 12살 남자아이, 이름은 산들(가명)이라 했다. 녀석은 낯선 아저씨(나)가 어색한지, 짧게 인사하고 방으로 후다닥 도망갔다. 허리가 굽은 할머니는 "산들아, 제대로 인사해야지"하고 핀잔을 줬다. 그러자 방 안에서 짤막한 외침이 들려왔다. "할머니! 나 내복 입었어!" 부끄럽단 그 표현에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아무렴, 한창 사춘기가 시작될 나이 아닌가.

아빠와 할머니와 그리 함께 사는 아이였다. 원래는 네 가족이었다. 그러나 부부가 이혼한 뒤부터 행복에 금이 갔다. 홀로 아이를 돌봐야 했던 아빠는 술을 많이 마셨고, 이내 알코올 중독이 됐다. 아이는 부족한 돌봄 속에서 방치되는 날이 많았다. 아동학대 신고가 됐고,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이 운영하는 전남 아동보호전문기관(이하 아보전)이 나섰다. 학대를 멈추게 돕고, 나아가 아이와 가족을 구하는 일이었다.

그날 산들이에게 간 이유도 그랬다. 아이는 괜찮은지, 혹여나 또 학대가 있진 않았는지, 아빠가 술을 또 많이 먹진 않는지, 더 필요한 건 뭔지, 그런 걸 살뜰히 살펴보는 것. 그걸 '사례 관리'라 불렀다. 어린 산들이는 목소리가 작으니까, 홀로 참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자그마한 아이가 잘 지내는지 보기 위해, 탁지혜 아보전 과장과 또 다른 선생님과 함께 50km를 차로 달려간 참이었다.



"아빠 술 먹는 것 싫어?" "네, 싫어요!"


이불을 돌돌 말아 그 속에 들어간 산들이와, 아이에게 말을 건네고 있는 탁지혜 아보전 과장./사진=남형도 기자
이불을 돌돌 말아 그 속에 들어간 산들이와, 아이에게 말을 건네고 있는 탁지혜 아보전 과장./사진=남형도 기자
뜨듯한 방 안에 들어가니 이불을 푹 덮은 산들이가 보였다. 내복이 부끄러운 아이는 얼굴만 쏙 내놓고 있었다. 한쪽 벽엔 짤막하게 선이 그어져 있고, 날짜가 쓰여 있었다. 이게 뭐냐고 물으니 산들이 키를 그려놓은 거란다. 시끌벅적한 TV에선 정인이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쑥쑥 자란다는 산들이를 보며, 16개월 짧은 생(生)을 마친 정인이 생각에 먹먹해졌다. 학대당한 두 아이, 이들 생사를 가른 건 무엇일까 싶어서.

쪼그리고 앉아 할머니와 이런저런 얘길 나눴다. 여든이 다 된 어르신은 "요즘 산들이가 너무 말을 안 듣는다"며 혀를 내둘렀다. 탁 과장은 "그래도 그게 아이가 잘 크는 거예요"라며 빙긋 웃었다. 그러면서 산들이에게 이것저것 물었다. "방학은 언제야?", "뭐 하고 싶어?", "오, 너 게임 잘하는구나!", "축구도 많이 해?"하면서. 사춘기라 무뚝뚝한 산들이는 입을 삐쭉 내밀면서도 "네", "네"하며 대답을 참 잘했다. 어쩌면 그게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관심'으로 보였달까.

그러면서 자연스레 산들이 아빠 얘기로 넘어갔다. 그는 한때 술을 무척 많이 마셨었지만, 아보전에서 넉 달 동안 상담을 16회 진행하며 많이 좋아졌다. 달라지고 싶은 마음이 컸단다. 일도 열심히 하고 있다. 오늘도 확인할 시간. 산들이에게 "아빠 요즘은 술 안 마셔?"하고 묻자, 아이는 "아빠 어제 저녁에 술 좀 마셨어요!"하고 솔직히 고했다.
다채로운 빛깔을 띤 산들이의 그림. 하늘을 향해 뻗어나가는 나무처럼 아이 앞날도 그러하길 바랐다./사진=남형도 기자
다채로운 빛깔을 띤 산들이의 그림. 하늘을 향해 뻗어나가는 나무처럼 아이 앞날도 그러하길 바랐다./사진=남형도 기자
아빠가 술 마시는 게 싫단 아이는, 그때 가장 목소리가 또렷했다. 그리곤 다시 침묵했으나 바라보는 눈빛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저희를 계속 바라봐주세요.' 그 마음에 응답하듯 푸근한 사투리가 섞인 대화는 1시간 내내 이어졌고, 탁 과장은 떠나는 순간에도 이렇게 말했다. "산들아, 또 올게!" 그러면서도 아빠에겐 단호한 얘기도 한단다. 저희가 잠깐 도움 드릴 순 있지만, 끝까지 아이 옆에 있는 건 아버님이라고. 노력하셔야 아이가 아버지를 바라보고 따를 거라고 말이다.

밥상 밑에 아이가 그린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색깔이 노을인 듯 녹음인 듯 다채롭게 빛났다. 그림을 설명하는 산들이를 보며, 아이도 하늘을 향해 무수히 많은 가지를 뻗어 나가길 바랐다. 이제 고작 12살이므로, 아빠도 할머니도 많이 좋아하고 웃을 나이이므로.



칼 내려놓고 "이야기할 것 해보라"고


챙길 선물을 들고 학대 아동 집을 방문하는 탁지혜 과장과 다른 아보전 선생님./사진=남형도 기자
챙길 선물을 들고 학대 아동 집을 방문하는 탁지혜 과장과 다른 아보전 선생님./사진=남형도 기자
그러나 산들이 아빠처럼, 학대 행위자들이 협조해 좋아진 순탄한 사례만 있는 건 아니다. 탁 과장과 또 다른 학대 아동을 만나러 가는 길에 들은 얘긴 힘겹고도 놀라웠다.

같은 알코올 중독 사례로 보면 이랬다. "진짜 술 안 먹는다"고 해놓고 바로 그날 먹는다고. 반복되는 문제에 아이를 분리하면, 술 냄새를 풍기며 사무실로 찾아와 "내 아이 내가 키우겠다"며 "데리고 가겠다"고 난동을 피운다. 그러나 그대로 둘 수 없다. 알코올 문제는 방임이 많은 터라 아이들은 영양 부실로 간 수치도 높고, 치아 관리도 안 되는 경우도 많다고. 그래서 다시 학대 신고가 들어오는 경우가 많단다.

그러니 아이를 도우려 설득하는데, 학대 행위자들 대부분이 거부감이 심하단다. 일단 찾아가면 문도 안 열어주는 게 기본이다. 전화를 안 받거나 약속 잡아놓고 바쁘다며 핑계를 댄다. 녹음해뒀다가 말꼬릴 붙잡아서 민원을 넣거나, 시도 때도 없이 전화해 욕하기도 한다고. 탁 과장은 "한 달 내내 사무실로 전화와 너무 힘들었던 적도 있다"고 했다.

심할 땐 폭력에도 노출된다. 을 꺼내와 내려놓고 "자, 얘기할 것 있으면 얘기해 보라"며 협박한다. 실제 흉기에 찔린 아보전 직원들도 있단다. 정 안 되면 경찰에 고발하지만, 웬만하면 최대한 설득할 수밖에 없단다. 3~6개월 동안 사례 관리를 하려면 계속 봐야 한다. 그러니 싸워봤자 답이 나오지 않는다고.

아동학대를 멈추고 아이를 살리기 위해 도움을 주려는 일인데, 이리 많은 걸 감내해 온 거였다. 기나긴 이야기를 해도 충분할 만큼 그들에게 가기 위한 거리도 꽤 멀었다. 탁 과장은 "한 15년 전쯤엔 전남 완도까지 왔다 갔다 하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왕복 6시간에 가까운 거리라 하루를 다 써야 했단다.



방치됐었던, 다섯 아이 가족 이야기


문을 두드리지만, 대부분 학대 행위자들은 쉽게 열어주지 않는다고 했다. 다섯 아이 집에 들어가려 노크하는 탁지혜 과장./사진=남형도 기자
문을 두드리지만, 대부분 학대 행위자들은 쉽게 열어주지 않는다고 했다. 다섯 아이 집에 들어가려 노크하는 탁지혜 과장./사진=남형도 기자
그러는 동안 다섯 아이(가명: 파랑이, 빨강이, 초록이, 노랑이, 주황이)가 사는, 두 번째 집에 도착했다. 가까이 다가가자 개가 우렁차게 짖는 소리가 들렸다. 탁 과장이 대문을 두드리는 동안 묘한 불안이 느껴졌다. 그대로 꼭꼭 닫아둔다면 어떡할까 싶어서. 잠시 뒤 문이 열리는 걸 보며, 그게 마음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걸 활짝 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지.

다섯 아이네 사연은 이랬다. 아동 방임신체·정서적 학대로 신고가 수차례 됐었다. 초록이와 노랑이, 주황이는 지적 장애가 있어 청결 등 관리가 더 필요한데, 그러지 못했다. 탁 과장은 "엄마와 주로 소통하며 퇴근길에도 지원할 게 있으면 들러 도왔었다"고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며 서로 신뢰가 형성돼 왔단다.

아이들 어머니와 인사를 나눈 뒤 집에 들어갔다. 둘째 빨강이만 방에 있었고, 이불 등 정리가 안 돼 어수선해 보였다. 탁 과장은 "어머니, 청소 한 번 해야겠어요"하고 웃으며 준비해 간 청소도구를 꺼냈다. 어머니는 "청소했는데, 어차피 또 더러워지는데"하며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는 새 탁 과장은 이미 화장실 청소를 하러 들어갔고, 나와 다른 선생님은 빗자루를 들고 방과 거실을 쓸었다. 그러니 어머니도 물걸레를 들고 함께 닦았다. 그리 방법을 알려준 거였다.

집이 깨끗해지는 사이, 빨강이는 바깥에 나가서 동생들을 데리고 왔다. 장애 아동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돌아온 거였다. 초록이, 노랑이, 주황이가 오니 집이 시끌벅적, 난리가 났다. 아이들과 끝말잇기를 하며 놀기로 했다. 노랑이가 '라디오'라고 하기에, 이어서 '오디오'라고 했더니 "그건 안 돼요"하고 웃으며 다가왔다. 그리고 내 이마에 딱밤을 때렸다. 톡 하고 살짝 건드리는 손에서 아이의 고운 마음이 느껴졌다.



달라진 가족, "내가 키우겠다"는 어머니


장난기 많은 다섯 아이들./사진=남형도 기자
장난기 많은 다섯 아이들./사진=남형도 기자
시끄럽게 떠들고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향해 어머니는 "안 돼!", "하지마!"하며 큰소리로 야단쳤다. 그때마다 탁 과장은 어르듯이 "어머니, 힘드시겠지만 그래도 아이가 옆에 있으니 조용하게 말씀해주셔도 돼요"하고 말했다. 그러니 어머니는 다시 고민했고, 아이들을 대하는 게 다소 누그러졌다. 어떤 상황에서도 "아이들은 내가 잘 키우고 싶다"고 다짐하던 그였다.

힘들어하던 어머니는 아보전과 주변 도움 덕분에 마음의 여유를 조금 찾았다. 그 덕분에 복잡했던 가정도 자릴 잡아가고 있다. 씨름하다 부상으로 방황했던 파랑이는 마음을 잡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공부에 관심이 없던 빨강이는 아보전 도움으로 처음 책상을 얻게 됐다. 탁 과장이 찾아갔던 날, 빨강이는 "책상에 눕고 싶을 정도로 좋아요"라고 했다. 그날 아이는 온라인 수업을 들으며 공부도 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며 친구들과의 관계도 좋아졌다고.
물걸레 청소하는 아이들의 어머니. 그 역시 많이 달라지고 있다. 누군가의 관심 덕분에./사진=남형도 기자
물걸레 청소하는 아이들의 어머니. 그 역시 많이 달라지고 있다. 누군가의 관심 덕분에./사진=남형도 기자
탁 과장에게도 이들이 변하는 모습이 큰 보람이다. 그는 "가족이 변화하는 걸 짚어주고 정보도 알려주고 틈틈이 지원해주니, 어머니가 더 많이 느끼고 행동하게 되는 것 같다"고 했다. 어머니에게 그간 어땠는지 물으니 "선생님들께 도움받은 게 너무 많지요"하며 고개를 숙이고 빙그레 웃었다. 아이들이 천방지축 뛰어다니는 장난에 소리치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 모습에 또 미소 짓는 그는 '어머니'였다.

집을 나서면서 마당에 있던 개는 빙그르르 돌며 꼬릴 쳤고, 어머니는 마중을 나오며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이들에게 필요한 건 연결이고 관심이었단 생각이 들었다. 가족들 홀로 있는 게 아니라고, 주변에서 늘 함께하고 있다고, 관심을 기울이는 이들이 있다고 말이다.

그러니 바깥에 나와 문이 닫히는 순간에도, 다시 또 열릴 수 있겠단 믿음이 들었다. 그리고 분명 달라질 수 있을 거라고.



"아동학대냐 아니냐", 이토록 고민되는 회의라니


아동학대 사례를 회의하는 전남 아동보호전문기관 선생님들. 학대인지 아닌지 판단하고 의견을 나누는 자리다./사진=남형도 기자
아동학대 사례를 회의하는 전남 아동보호전문기관 선생님들. 학대인지 아닌지 판단하고 의견을 나누는 자리다./사진=남형도 기자
이렇게 사례를 관리하기까지 과정도 다양한 고민을 거친다. 경찰과 아보전에 접수된 아동학대 신고 사례를 두고 회의를 통해 수많은 의견을 나눈다. 학대가 맞는지 아닌지 신중히 판단하기 위해서다.

직접 회의에 참여해보기로 했다. 아보전 직원 여섯 명이 모였다. 첫 사례는 아이 엄마가 사망한 뒤, "엄마가 보고 싶다"고 하자 아빠가 술 마신 상태로 훈계한 사례였다. 두 번째는 아빠의 훈육 방식에 엄마가 불만을 품고 신고한 사례. 해당 가정은 과거 신고 이력이 있어서, 다른 직원이 나서서 "아빠가 애들이랑 친하게 잘 지낸다"며 설명을 보태기도 했다. 여럿의 의견이 모이니 사건의 윤곽이 점점 또렷해졌다.

마지막 사례는 새벽에 지인에게 성폭행당했단 학생이라 했다. 마음에 돌덩이를 얹은 듯 무거워졌건만, 직원들은 익숙한 듯 덤덤히 이야길 이어나갔다. 가해자 나이에 따라 아보전에서 담당할지, 경찰 수사만 할지 결정된다고 했다. 아동 연령 기준은 18세 미만, 성인은 만 19세 이상이란다.

학대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운 사례도 있었다. 중학생인 두 아이가 학교에 다니지 않고 아빠와 홈스쿨링을 하는데, 이를 교육 방임으로 볼지 말지에 대한 거였다. 이를 파악하기 위해 아빠 얘기는 물론, 두 아이의 의견, 교육청과 담임 선생님 이야기까지 다 들었다고 했다. 이를 위해 주말이나 밤이어도 필요하면 찾아간다. 그것도 모자라 두꺼운 과거 사례집까지 들고 왔다.
아동학대 사례 회의 중인 선생님들. 고민이 느껴진다./사진=남형도 기자
아동학대 사례 회의 중인 선생님들. 고민이 느껴진다./사진=남형도 기자
"의무 교육이니 방임이 아니냐"는 의견도 나왔으나, 아이들이 원하는 점, 그리고 아빠가 애들이 원하는 교육을 하는 점 등을 근거로 방임이 아니란 점에 무게가 실렸다. 학대인지 아닌지에 따라 그 가정이 감당해야 할 무게가 어떨까. 그걸 결정하는 회의라니, 말 한마디조차 꺼내기 힘들 정도로 무거웠다.

그러나 이들은 정해진 시간 안에 그걸 감내하고 판단해야 했다. 그래서 서로의 무게를 아는 이들이 함께 묻고 의지하는 쪽을 택했다. 그래도 고단하고 힘든 작업이었다. 회의 테이블 위에서 누구는 펜을 바삐 돌렸고, 누구는 깊이 생각에 잠겼다. 그러나 어쨌거나 결론을 내렸다. 그 또한 아이들을 살리기 위한 거였다.



불안과 두려움 속에 산다, 내 사례일까 싶어서


학대당한 아이를 만나러 갔다[남기자의 체헐리즘]
돕겠다고 사례를 관리하다 아이가 숨질 때도 있다. 그럴 땐 몇 번이고 다시 그 지점으로 돌아간다. 마치 시간 여행을 반복하듯이. 그리고 자책이 시작된단다. '내가 뭘 했어야 아이를 살릴 수 있었을까?' 무한히 반복되는 질문들이다. 탁 과장은 "마음을 많이 써서 관리했는데 사망하거나 재신고 되는 사례가 생기면 계속 거기에 빠져 있게 된다"고 했다. 마음이 단단해야 하는 일이다. 그래서 그는 평소 노래를 듣고, 영화도 보고, 힘들 땐 술 한 잔씩 하기도 한다. 나름의 마음 관리다.

그러나 사람이 하는 일 아닌가. 오롯이 막을 수 없기에, 아보전 직원들은 불안두려움 속에 산다. 크게 불거진 아동학대 사건을 보며 남의 일처럼 느끼지 못한다고. 구미희 전남 아보전 관장은 "현장에서 뭔가 결정하고 판단하는 것에 실수할 수 있고, 그걸 나도 경험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크다"고 했다. 사건이 다 터지고 결과를 본 뒤엔 판단이 잘못됐음을 쉽게 안다. 그러나 벌어지는 순간에, 그 지점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니 불안하고 무섭다.

그러니 흔히 전문성을 더 쌓으라고 한다. 김일태 전남 아보전 팀장은 "조사 과정에서 학대 행위자가 거짓말을 하는 걸 어떻게 알아챌지, 아이를 지금 분리할지 내일 분리할지, 어떤 전문성으로 가능한 것일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학대 평가 항목이 있지만, 1점을 줄지 3점을 줄지 역시 주관적 판단 기준이란다.
'즉시', 아동학대 조사를 하라고 매뉴얼이 돼 있다. 매뉴얼은 그리 돼 있다, 현장에서 작동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사진=남형도 기자
'즉시', 아동학대 조사를 하라고 매뉴얼이 돼 있다. 매뉴얼은 그리 돼 있다, 현장에서 작동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사진=남형도 기자
경찰처럼 학대 행위자를 불러다 조사할 권한도 없다. 문을 두드리며 열어달라고 요청하고, 안 받는 전화를 계속 붙잡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속사정도 모르는 아동학대 조사 매뉴얼엔 이렇게 쓰여 있다. '즉시', '지체없이' 학대 가정을 방문해서 조사하라고. 김 팀장은 "상황도 안 되는데 매뉴얼만 이렇게 만들어 놓고, 나중에 사고가 나면 '왜 즉시 안 갔느냐'고 할 것"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깊이 들여다보려면 진짜 많이 봐야 하는데, 그러려면 관리하는 사례라도 적어야 할 텐데 그마저도 아니다. 구 관장은 "1년에 전남 아보전에서 직원 한 명당 관리하는 사례가 평균 60~70건"이라며 "제대로 관리하려면 평균 15건 정도로 줄여야 한다"고 했다. 사례 하나가 종결되기 무섭게 신고가 또 들어오지만,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지난해 기준 아보전 평균 연봉은 3000만원 남짓, 그러니 이직률이 25%에 달한다.
학대당한 아이를 만나러 갔다[남기자의 체헐리즘]
신체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에너지를 많이 쓰는 고된 일, 잘못하면 비판만 쏟아져 회의감이 드는 일, 아이를 살린단 사명감 하나로 버티기엔 힘들단 이야기. 아보전 직원들은 최근 쓴웃음을 지어야 했다. 그들이 맡아왔던 아동학대 현장 조사 업무가 지자체 아동학대전담공무원에게 넘어가고 있는데, 불과 몇 달 만에 공무원들이 너무 힘들다며 청와대 국민청원을 올려서다.

"그건 사실 저희가 20년 동안 묵묵히 해온 일인데요. 조용히, 욕먹어도, 힘들어도, 낮은 임금을 받으면서도 해왔었던 걸요. 하하." 누구에게 물어도 똑같이 답하는 그 얘기가, 참 쓰게 들렸다.



8년이 지나 만난, 성(性) 학대 피해를 겪은 아이


가정폭력으로 인해 임신한 채 집을 뛰쳐나왔던 어머니에게 탁지혜 과장이 받은 감사의 문자./사진=탁지혜 과장
가정폭력으로 인해 임신한 채 집을 뛰쳐나왔던 어머니에게 탁지혜 과장이 받은 감사의 문자./사진=탁지혜 과장
그러나 여의치 않은 환경일지라도, 여전히 현장에서 아이들을 살리려 애쓰고 있다. 그 덕분에 살린 아이들도 많다. 아이가 사망할 때만 이슈가 크게 불거지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그래서 이런 얘기도 꼭 담고 싶었다.

탁 과장이 들려준 얘긴 이랬다. 그가 초임으로 아보전에 왔을 때 성 학대를 당해 사례를 관리하며 도와준 10살짜리 아이가 있었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뒤, 그가 아동권리 교육을 하러 다닐 때 한 아이가 다가와 인사했다. "탁지혜 선생님, 저 OO에요." 아이는 예쁘게 자라 고등학생이 돼 있었다. 세상에 이렇게 예쁘게 컸냐고, 기억이 난다고 대화를 나눴다. 아이는 "그때 정말, 너무 감사했다"고 인사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이름까지 정확히 기억해준 아이, 그게 그에겐 너무 큰 보람이었다.

또 있다. 다둥이 가정이었고 남편의 가정폭력이 있었다. 견디다 못한 엄마가 임신을 한 채로 아이들과 집을 나왔다. 탁 과장은 잘 지낼 수 있는 곳을 연결해주고, 필요한 상담을 제공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생리용품도 지원해줬다. 출산 후 남편과 화해해 가정으로 돌아갔다. 아이가 100일이라며 떡도 가져다주고, 올해 초엔 너무 감사했다며 연락도 왔다.

아이를 살리고 가족을 구하는 일, 그게 그들이 하는 일이었다.



'아동학대'…함께 깊이 생각해봐야 하는 일


정인이를 학대해 숨지게 한 양모가 탑승한 버스 차량./사진=뉴스1
정인이를 학대해 숨지게 한 양모가 탑승한 버스 차량./사진=뉴스1
아보전에서 하루를 보내며 느낀 게 잘 정리가 되지 않았다. 아동학대가 발생하는 경우의 수는 너무 많았고, 원인은 무척 복합적이었으며, 단순하게 접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어서였다. 그래서 그리 오래 근무했던 아보전 전문가들조차 쉽게 "이렇게 하는 게 좋은 해결책이다"라고 말하지 못했다.

즉각 분리를 안 해 사망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기계적으로 마구 분리하면 아이에게 닥칠 정서 불안이 너무 크다고 했다. 사춘기 아이들은 완강히 저항하기도 하고, 불안과 고통도 상당히 크단다. 보호할 시설과 가정 위탁도 턱없이 부족한데, 그마저도 심각한 학대 있는 아이들은 가출, 도벽, 자해 시도 등 비행 행동이 많아 더 받아주지 않으려 한단다.

학대한 부모가 나쁘니까, 그런 단순한 이유로만 접근해선 안 된단다. 경제가 힘들어지면 가정이 파괴된다. 1998년 IMF 때 이혼율이 엄청 늘고, 청소년 우울증 문제가 심각했다. 그런 환경과 아동학대도 다 연관돼 있다. 코로나19로 힘들다지만, 소득에 따라 어느 아이는 술 먹는 부모 앞에서 숨죽이고, 또 다른 아이는 부모와 함께 보낼 시간이 늘었다며 좋아한다.
정인이 학대를 방치, 방관한 양부./사진=뉴스1
정인이 학대를 방치, 방관한 양부./사진=뉴스1
더디게 바뀌는 인식도 큰 문제. 학대 행위자들은 주로 "내 아이 내가 때리는 게 뭐가 잘못됐냐", "얼마나 힘든 줄 아냐, 네가 뭘 아냐", "그게 무슨 학대냐, 훈육이다"라고 한다. 구 관장은 "아이를 때리고 위협하는 게 가르치는 거라고 생각한다" "학대 부모에게 가장 많이 들은 얘기가 '그럼 네가 해봐라'였다"고 했다. 그러니 이들을 멈추게 하는 것뿐 아니라, 그러면 어떻게 알려줄지에 대한 고민까지 필요하다.

아동학대가 단순히 제도나 대책만 갖고 되는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함께 고민해야 하는 이유가 이랬다.
그래서 뭐가 바뀌었는지, 그걸로 또 다른 학대를 막을 수 있을지, 냉정하게 물어야 하고, 관심은 오래 계속되어야 한다고./삽화=임종철 디자인기자
그래서 뭐가 바뀌었는지, 그걸로 또 다른 학대를 막을 수 있을지, 냉정하게 물어야 하고, 관심은 오래 계속되어야 한다고./삽화=임종철 디자인기자
에필로그(epilogue).

그런데 정말 걱정되는 건 이런 거다.

2021년 1월 : 정인이 양부모를 향한 공분에 설익은 대책들이 쏟아지고,
3월 : 서서히 관심은 줄어들고,
5월 : 그다지 바뀐 건 없고,
12월 : 또 다른 정인이가 나오고,
2022년 1월 : 새로운 학대 행위자를 향해 또 분노하고.


그러니 함께 얘기했으면 좋겠다.
우리가 지금 무얼 고민해야 하는지를.

그러니 부디 이 기사 댓글만큼은
다양한 의견들이 쏟아지기를,
아이들을 진정 살리기 위해서.



  • 남형도
    남형도 human@mt.co.kr

    쓰레기를 치우는 아주머니께서 쓰레기통에 앉아 쉬시는 걸 보고 기자가 됐습니다. 시선에서 소외된 곳을 크게 떠들어 작은 변화라도 만들겠다면서요. 8년이 지난 지금도 그 마음 간직하려 노력합니다. 좋은 제보 언제든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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