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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봉 위원량의 ‘망곡서望哭書’ 암각문, 해발 420m 고지 현장서 고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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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흥(전남)=나요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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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3.18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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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원량 망곡서 암각문
위원량 망곡서 암각문
전남 장흥군문화원(원장 고영천)과 해동암각문연구회(회장 홍순석 교수)는 지난 11월부터 공동으로 장흥 암각문을 조사 중이다. 이 중 수리봉 위원량(1882~1945)의 ‘망곡서’ 암각문이 크게 주목받고 있다.

관심이 큰 만큼 시비의 논쟁도 있었다. 조사단이 처음으로 공개한 영상과 사진 판독에 많은 이견이 제시했다. 이 같은 문제점을 불식시키기 위해 조사단은 최근 현장에서 ‘망곡서’ 탁본을 공개하고, 문헌고증의 결과도 공개했다.

회은 위원량의 칠언절구를 새긴 암각문은 장흥군 부산면 내안리 내동과 구룡리 자미마을 뒷산 정상인 수리봉(鷲峰,412m) 암벽에 북향으로 새겨져 있다.

바위 면에 광곽을 얕게 파고 평탄하게 조성한 후 해서체 종서로 쓴 칠언절구 ‘登臨是日感斯’, ‘峰ㄷ是東邦守’, ‘義峰人多不守’, ‘峰能守可以人’, ‘兮不似峯, 28자를 음각했다.

그리고 좌측에 ‘隆熙庚戌秋’, ‘魏元良謹拜’, ‘望哭書’라는 관지를 종서로 음각했다. 판곽의 규모는 가로 85㎝, 세로 50㎝이다. 글씨 하나의 크기는 대략 가로 8.5cm×세로 9.5cm 정도이다.

관지의 내용은 “융희 경술년 가을에 위원량이 삼가 절하고 곡하며 쓰다”이다. 융희(隆熙) 경술년(庚戌年)은 한일합병이 체결된 1910년이다.

조사단장 홍순석 교수가 공개한 ‘망곡서’ 관련 문헌기록은 ‘조선환여승람朝鮮?輿勝覽(1929)’, ‘장흥지속록長興誌續錄(1939)’, ‘장흥지長興誌(1966)’ 3건인데, 문헌에는 ‘斯’자가 ‘於’로, ‘多’자가 ‘之’‘, ‘而’로 기록됐다.

장흥의 유학자 위원량이 경술국치의 사실을 듣고 울분을 토로하고자 수리봉 정상에 올라와 칠언절구를 짓고, 암각문을 조성한 것이다. 칠언절구를 번역해 보면 다음과 같다.

登臨是日感斯峰 - 오늘 올라와 이 봉우리에서 느끼나니
ㄷ是東邦守義峰 - 이 봉우리야말로 동방의 의를 지킨 봉우리네
人多不守峰能守 - 사람 많아도 못 지킨 것을 봉우리는 지키니
可以人兮不似峯 - 사람이 이 봉우리만 못하다고 할 수 있겠네

‘조선환여승람’에는 회은 위원량의 ‘송암정松巖亭’ 시도 수록됐는데, ‘망곡서’와 관련된 중요한 단서이다.

이번 2차 현장 조사에서 확인된 사실 가운데 ‘망곡서’ 암각문이 정북향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의미가 깊다. 수리봉의 여러 바위 면에서 고종 황제가 있는 북향의 바위 면을 택하여 암각문을 조성한 것이다.

그 만큼 ‘망곡서’ 암각문은 회은 위원량 선생의 결연한 우국충정의 의지를 담고 있다. 29세의 혈기 왕성한 청년 위원량이 수리봉에 통한을 참아내며 암각문을 조성했을 정황을 충분히 가늠할 수 있는 자료이기에 더욱 의미가 있다.

근대시기 호남 지역의 항일의병 활동 관련 사료로서도 가치가 크다. 문헌과 증언 자료 외에 ‘망곡서’와 같은 암각문을 통해서 현장의 사료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이 자료는 의미가 깊다.

특히, 회은 위원량의 ‘망곡서’ 암각문은 암각문의 구성 요소인 본문과 관지, 판곽까지 구비하고 있다는 점에서 금석학 분야에서의 가치도 높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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