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MM 노조 "파업 안되면 단체 이직"…경쟁사는 연봉 2.5배 말했다

/사진=김훈남

HMM 해상노조가 23일 90%가 넘는 조합원들의 압도적 지지로 파업을 결정했다. 노조가 파업 대신 해외 해운사로 단체 이직을 검토하기로 하면서 물류대란 우려가 커졌다.
해상노조 파업 결정..단체 이직 현실화되나HMM 해상노조는 지난 22일 정오부터 24시간 도안 조합원을 대상으로 쟁의찬반투표를 진행한 결과 92.1% 찬성으로 파업을 결정했다고 23일 밝혔다. 투표에는 조합원 453명중 434명이 참여했다. 7.9%(24명)가 반대했고, 무효표도 10표가 나왔다.

노조는 파업 가결에 따라 향후 부산항에 입항하는 선박 별로 집단 하선할 예정이다. 아울러 코로나 검사 증서를 제시하기 전까지 하역·작업인부의 승선을 거부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현재 HMM이 운영하는 선박은 총 100여척으로 매주 4~5척이 부산항을 들어온다.


해상노조는 선원법상 제한된 파업 대신 단체 이직을 택하겠다는 입장이다. 오는 24일 단체 사직 관련 조합원들의 의사를 묻고 오는 25일쯤 단체 사직서를 제출할 계획이다.

전정근 해상노조 위원장은 "월 313시간의 살인적인 노동 강도에도 아파도 병원조차 갈 수 없으며 중대재해 발생하면 죽음밖에 없는 곳이 선박"이라며 "우리 선원들은 노예가 아니라 사람"이라고 밝혔다. 이어 "선원법으로 쟁의행위 제한으로 파업도 못하게 막아놨는데 그렇게 중요한 직업이면서 처우개선도 못해준다는 것은 인력 착취 밖에 안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현행법상 운항 중이거나 외국 항구에 있는 선박에서는 쟁의가 금지된다.

노조 측은 다만 회사 측에서 전향적인 안을 가지고 온다면 다시 협의가 가능하다며 사무직 중심의 육상노조와 협의해 쟁의행위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육상노조도 조만간 파업 찬반투표를 진행할 예정이다.
왜 사상 첫 파업까지 결의했나

/사진제공=HMM.

일반적으로 선원들은 배에 오르면 4개월 정도 각국을 순회한 뒤 한국에 복귀한다. 이후 2개월 가량의 휴가를 갖는데 최근 HMM 직원들이 저임금을 이유로 이탈하면서 새 배에 오를 인력이 부족해지자 남은 선원들이 쉴 틈 없이 1년 내내 배에 올랐다.


노조는 그동안 인력 충원을 위해 임금인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 임금 불만으로 신규·경력 채용이 사실상 진행되지 않았다는 판단에서다. HMM (15,080원 ▲230 +1.55%)은 국내 최대 컨테이너 선사지만 직원 평균 연봉이 6900만원 수준으로 팬오션 등 다른 해운사보다 2000만원가량 낮다.

HMM 육상직원이 8년, 선원 직원은 6년 동안 임금 동결을 겪었지만 지난해 임금 인상률은 2.8%에 그쳤다. 노조 측은 적어도 타사와 동일한 수준인 8000만원대의 연봉이 있어야 신규·경력 채용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있다.

하지만 사측은 올해 상반기 사상 최대 실적에도 임금 8% 인상안과 성과급 500%를 지급하는 안을 제시해왔다. 노조가 요구했던 임금 25% 인상, 성과급 1200% 지급안과 차이가 크다. 주채권자인 산업은행이 HMM 이외 관리하는 다른 기업의 동반 임금인상 요구를 우려하면서 임금 인상안에 소극적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상황에서 해외 대형 해운사인 MSC가 지난달부터 초대형 컨테이너선 탑승 경력이 있는 한국인을 대상으로 채용에 나서자 노조가 단체 이직 카드를 꺼내들었다. 국내에서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운영하는 해운사는 HMM뿐이다. MSC가 사실상 노사 임금 갈등을 겪는 HMM을 노골적으로 노린 셈이다. MSC는 HMM 연봉의 약 2.5배를 제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전 위원장은 단체 이직 사유에 대해 "수출의 99.7%를 담당하는 우리 선원들은 한국 해운을 무책임하게 떠날 수 없어 그동안 애사심과 자부심으로 버텨왔다"며 "정당한 처우 개선 요구를 안들어주고 이익집단으로만 치부하는데 그 자부심이 무너지고 희망이 사라져 떠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파업·이직시 운임비 폭등..물류대란 불가피국내 선사 중 사실상 유일한 원양선사인 HMM의 노조가 파업이나 대규모 이직에 나설 경우 물류대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특히 미국과 유럽 수출 의존도가 높은 기업에는 직격탄이 될 수 있다. 지난 7월 기준 HMM의 아시아~유럽 노선 시장점유율은 7%, 아시아~북미 노선 시장점유율은 6.8%을 기록했다.

이마저도 선박이 부족하다. HMM은 지난달부터 미주 노선의 임시선박을 최소 월 2회에서 4회로 늘리는 등 총 39척의 임시선박을 투입해왔다. 배를 구하기도 힘든 상황에서 시장 점유율 7%에 해당하는 HMM의 배가 멈추면 운송 예정인 화물이 갈 곳이 사라지면서 더욱 배를 구하기 어려워지게 된다.

이미 치솟은 운임비도 계속 폭등하면서 수출기업에 더욱 큰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상하이 컨테이너 운임지수(SCFI)는 지난 20일 기준 4340.18포인트로 지난 5월말(3495.76포인트) 대비 대폭 올랐다. 한 수출기업 관계자는 "높은 운임비로 영업이익과 수익성이 하락했다"며 "수출 일정이 지연되거나 운임비가 또 오르면 더욱 악화할 것"이라고 토로했다.

부산항이 마비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선박들은 부산항을 주 단위로 들러 짐을 싣고 타국으로 이동하는데 노조 측에서 예고대로 하선해 출항을 하지 않거나, 하역인부의 승선을 거부하면 항구 자체가 정체되면서 병목현상이 일어날 수 있어서다.

연일 악화하는 상황서도 산은은 노조 측의 요구를 어느 선까지 받아줄 수 있는지 등 관련 입장을 밝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공공기관인 국책은행이 노사 임금협상에 직접 관여할 수 없다는 입장만 되풀이해왔다. 실제로 노조 측은 산은 관계자와 단 한차례도 만난 적이 없다고 전했다. 일단 사측은 "끝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협상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