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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힐 바에" DMZ에서 수류탄 안전핀 뽑았다…탈북 군인은 왜 철책을 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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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주(김성진)=김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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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9.2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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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탈북민 강하늘씨(가명)가 18일 오전 11시쯤 경기도 파주시 오두산통일전망대에서 망원경으로 북한 땅을 들여다보고 있다./사진=김성진 기자.
탈북민 강하늘씨(가명)가 18일 오전 11시쯤 경기도 파주시 오두산통일전망대에서 망원경으로 북한 땅을 들여다보고 있다./사진=김성진 기자.
"저기 밭에 일하는 사람들이 보이네요."

18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오두산통일전망대에 오른 강하늘씨(가명)는 망원경 너머로 북한 땅을 내다보며 사람들부터 찾았다. AK-47 소총을 한 자루 매고 2012년 혼자 DMZ(비무장지대)를 넘어 남한에 온 하늘씨는 북한 땅을 오랜만에 보는 듯 상기된 표정이었다. 하늘씨는 "저건 북한 군 초소네요" "건물 외벽을 화려하게 칠했는데 '보여주기식'이고 안에 사람이 안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북한에선 '평화마을'이라 해요"라며 설명을 쏟아냈다.

하늘씨는 망원경 렌즈에 스마트폰 카메라를 찰싹 붙이고 동영상을 찍었다. 그는 구독자가 8만명에 달하는 유튜브 채널 '북시탈TV'를 운영하고 있다.

하늘씨는 일년에 서너번씩 파주 임진각에서 북한 땅을 바라본다고 한다. 하늘씨는 "너무도 힘들어 포기하고 싶을 때 '목숨 걸고 넘어왔는데 못할 게 뭐있나' 생각한다"며 "그러면 포기하려던 마음이 싹 사라진다"고 말했다.


용돈 5원으로 시장에서 사먹던 '깨사탕'…입대 날 "10년 동안 못 보겠네" 남동생 말에 울컥


2012년 DMZ(비무장지대)를 넘어 남한에 온 탈북민 강하늘씨(가명)./사진=김성진 기자.
2012년 DMZ(비무장지대)를 넘어 남한에 온 탈북민 강하늘씨(가명)./사진=김성진 기자.

올해 28살인 하늘씨는 북한 함경남도 함흥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평범한 노동자였고 어머니는 신발가게를 했다. 가게라 해봐야 땅바닥에 비닐을 깔고 그 위에 신발을 늘어놓는 노점상이지만, 그 시절 시장가게는 다 그랬다. 5살쯤 하늘씨가 학교를 마치면 어머니는 꼭 용돈을 5원씩 줬다. 그 돈이면 엿에 깨를 뿌린 '깨사탕'을 6알 먹을 수 있었다. 하늘씨는 "북한에 살던 때로 돌아가야 한다면 그 순간"이라 말했다.

그러다 18살이 된 2011년 하늘씨는 군 복무를 위해 가족과 생이별했다. 두부를 썰어넣은 고깃국이 하늘씨가 기억하는 마지막 어머니의 음식이다. 부모님은 하늘씨가 떠나는 4월의 어느 날 기차 역까지 하늘씨를 배웅했다. 9살 어린 남동생은 "10년 동안 못 보는 거야"라 물었다. 북한은 군 복무기간이 10년에 달한다. 첫 휴가는 7~8년이 지나야 받는데 그마저도 집에 가기는 힘들다. 하늘씨는 "휴가 나온 군인은 가족에 신세를 져야하지 않나. 동네 주민들 사이에서 '민폐를 끼친다'는 눈초리를 받게된다"며 "집에 한번도 들르지 않고 10년 군생활을 마치면 '효자'란 말까지 듣는다"고 했다.

군 생활은 고역이었다. 첫 3달은 개성시 근처에서 신병 훈련을 받았다. 군대 가면 밥을 잘 준다고 들었는데 무 절임이 유일한 반찬이었다. 밥에는 쌀알과 옥수수알이 3:7 비율로 섞여 있었다.

강원도 지역의 부대로 배치받자 '가혹행위'가 시작됐다. '분대장 빨래를 대신해야 했나'란 질문에 하늘씨는 "당연하다"며 "훈련을 마치면 발마사지도 해야 했다"고 말했다. 생활관과 초소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구타도 당했다. 하늘씨는 "대답하면 '말대꾸한다'고 때리고, 대답 안하면 '무시한다'고 때렸다"며 "이유야 만들면 그만"이라고 말했다.


AK 소총을 매고 3중 철책을 넘다…남한 쪽에서 "귀순자입니까" 반가운 음성


강하늘씨(가명)가 경기도 파주시 오두산전망대에서 보이는 북한의 시설들을 취재진에 설명해주고 있다./사진=김성진 기자.
강하늘씨(가명)가 경기도 파주시 오두산전망대에서 보이는 북한의 시설들을 취재진에 설명해주고 있다./사진=김성진 기자.

하늘씨는 2012년 4월15일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북한 당국은 '김일성 탄생 100주년'인 이날을 '조국 통일의 날'로 정했다. 한국전쟁처럼 이날까지 남한을 침공해 '무력 통일'한다는 것이다. 하늘씨는 이 말을 믿었다. 북한 당국은 "우리 군사력이 남한을 압도한다"고 선전한다.

하늘씨는 "북한군 마음 속에 주적은 미군"이라며 "한국군은 싸움 대상으로도 안 본다"고 말했다. '2012년 통일'은 기정사실인 듯했다. 북한 사람들은 당시 군인들을 '통일병사'라 불렀다. 하늘씨도 "통일되면 가혹행위로 힘든 군생활이 조금은 나아질 것이라 기대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통일의 꿈'은 2011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하며 불투명해졌다. 이윽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2년 '조국 통일의 날'에 열병식을 열더니 "통일을 위해 힘차게 싸워나가자"고 말했다. 하늘씨는 "입대한 후 1년만 버티면 배고픔과 부조리함이 개선될 거라 생각하며 어렵게 버텼다"며 "고통스런 날이 몇 개월 안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꿈이 산산조각나니 힘들었다"고 말했다. 하늘씨가 탈북을 결심한 이유다.

같은 해 8월 하늘씨는 DMZ를 넘어 귀순했다. 태풍이 지나간 오후 1시30분쯤 하늘은 화창했다. 보초를 함께 서던 선임은 낮잠을 자고 있었다. 북한은 초소 앞에 1m 간격으로 3중 철책을 세운다. 220V, 2200V, 그리고 남한 쪽을 바라 본 가시철조망이다. 철장 세개 모두 모두 태풍에 쓰러진 상태였다. 하늘씨는 잠든 선임을 가만히 본 뒤 철책을 하나씩 넘었다. 마지막 철책 넘은 하늘씨는 곧바로 2m 높이로 솟은 갈대밭에 몸을 숨겼다. 근무를 서던 하늘씨에겐 AK-47 소총 한 정과 총알 90발, 수류탄 2개가 있었다.

불과 몇분 사이 벌어진 일이다. 하늘씨는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갈대밭을 기어가던 저녁 7시쯤 뒤에서 총성이 들렸다. 하늘씨의 머리 위로 총알이 날아갔다. 하늘씨 5m 앞에 개울이 있었는데 그 위로 총알이 떨어졌다. 하늘씨는 "나도 뒤를 보며 총을 겨누고 있었다"고 말했다. 30분쯤 지나 주위가 어둑해졌고 추격하던 북한군은 되돌아갔다. 하늘씨는 50m 정도를 더 기어갔다. 다음날 새벽쯤 잠을 청하는데 '부스럭'하는 소리가 났다. 하늘씨는 고민없이 수류탄의 안전핀을 뽑았다. 추격조가 아닌 고라니였다. 하지만 잡힐 바에 자폭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늘씨는 "잡히면 죽음보다 끔찍한 일을 당할 것"이라 말했다.

남한 군인을 만난 건 다음날 오전 11시쯤이다. 남한 군인은 "귀순하러 왔는가"라 물었다. "그렇다"고 말하며 천천히 무기를 내려놨다. 그는 "입국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꼬박 4끼를 굶었지만 하늘씨는 자존심에 "배고프다"고 말하지 못했다. 하늘씨가 "DMZ를 넘느라 밥을 못 먹었다"고 하자 남한 군인들은 "사단장 지시"라며 몇 시간이고 물만 먹였다. 오후 1시쯤 돼서야 남한에서 첫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점심 메뉴는 닭죽이었다. 하늘씨는 "사단장을 비롯해 지위가 높은 군 간부들이 한 자리 모여서 내가 밥 먹는 장면을 지켜보더라"면서도 "배고픈데 신경 쓸 정신도 없었다"고 말했다.


탈북민에 한마디 "누구든 '의지할 사람'이 필요…한발 먼저 다가가라"


강하늘씨(가명)는 탈북민들을 향해 "누군가에 진정성 있게 한발 먼저 다가가라"고 조언했다./사진=김성진 기자
강하늘씨(가명)는 탈북민들을 향해 "누군가에 진정성 있게 한발 먼저 다가가라"고 조언했다./사진=김성진 기자
목숨 걸고 넘어온 남한인데 삶은 쉽지 않았다.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다. 하늘씨는 "북한에 남은 가족들을 데려오려 돈을 벌었는데 쉽지 않았다"고 했다. 2013년에는 비오는 날 치킨을 배달하다가 오토바이 미끌어져 택시의 바퀴 밑으로 빨려 들어가는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그럼에도 하늘씨가 살아남은 동력은 "하고싶은 것을 안하면 못 참는 근성"이었다. 하늘씨는 탈북하기 전 축구선수로 지냈던 기억을 되살려 탈북민들, 남한 사람들과 축구팀을 꾸렸다. 최근에는 한 연기 학원에서 북한 사투리를 가르쳤는데 연기를 직접 배우고 싶어 연기수업을 받는다. 이번 추석에는 친한 탈북민들과 함께 강원도 양양에 캠핑과 서핑을 갈 생각이다.

하늘씨는 탈북민들을 향해 "누군가에게 진정성 있게 한발 먼저 다가가라"고 조언했다. 그는 "나처럼 혼자 온 탈북민들은 무너지기 쉽다. 실제로 다시 월북한 친구도 있다. 안타깝다"며 "혼자 왔다면 더욱 깊이 관계 맺을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나처럼 먼저 온 탈북민도 있고, 남한 사람 중에도 좋은 사람이 많다"며 "멘토로 삼을 사람을 만났다면 멘토로 삼고 의지하면 도움을 많이 받을 것"이라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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