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차 시장 외연 확대" 진입 지연에 답답한 현대차, 사업 청사진 공개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지난해 11월 경기 고양 현대모터스튜디오에서 열린 '청년희망ON 프로젝트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현대차가 중고차 시장 진출 청사진을 공개했다. '소비자 최우선'과 '중고차 업체와의 상생'이라는 가치를 내세웠다. 완성차 업체의 중고차 시장 진입 여부에 대한 정부 결정이 늦어지고 있는 가운데 업계와 여론에 '현대차 역할론'을 다시한번 호소한 것으로 풀이된다.

현대차는 7일 중고차사업 비전과 사업방향을 처음 공개하고 기존 중고차 매매업계와 함께 성장하면서 국내 중고차시장의 양적·질적 성장에 기여하겠다고 밝혔다. 고품질의 인증 중고차 판매, 중고차 관련 통합정보 포털 구축, 중고차 매매업계와의 상생 방안 등이 골자다.


현대차 관계자는 "현대차의 중고차시장 진출이 소비자와 중고차시장 발전에 미치는 긍정적인 효과에 대해 소비자와 중고차매매업계 등의 이해를 돕기 위해 사업 추진방향을 공개했다"며 "전체적인 중고차 품질과 성능 수준을 향상시켜 시장 신뢰를 높이고, 중고차산업이 매매업 중심에서 벗어나 산업의 외연이 확장될 수 있도록 기존 중고차업계와 다양한 협력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소비자 최우선' 내세워..."중고차 업계에는 큰 영향 없다" 강조 현대차는 고품질 인증 중고차를 적정 가격에 판매하겠다며 중고차 시장의 고질적인 문제를 가장 먼저 언급했다. 현대차는 5년 10만km 이내 현대 브랜드 차량을 대상으로 200여개 항목의 엄격한 품질검사를 통과한 차량만을 선별한 뒤 상품화 과정까지 거쳐 판매한다는 계획이다. 여기에 성능·상태 검사를 토대로 차량 가치를 객관적으로 평가, 가격도 투명화하겠다는 방침이다.

중고차와 관련된 정보도 통합적으로 소비자에게 제공된다. 현대차는 다양한 출처의 중고차 관련 정보를 수집·분석한 후 종합해서 보여주는 '중고차 통합정보 포털(가칭 중고차 연구소)'을 구축해 △중고차 성능·상태 통합정보 △적정가격 산정 △허위·미끼 매물 스크리닝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중고차 가치지수 △실거래 대수 통계 △모델별 시세 추이 △모델별 판매순위 등의 중고차시장 지표와 트렌드 리포트 등도 제공하기로 했다.


가상전시장도 만들어 상품검색 및 비교에서부터 견적과 계약, 출고, 배송에 이르기까지 구입 전과정을 진행할 수 있는 온라인 원스톱 쇼핑을 구현하고, 고객이 가상전시장에서 중고차를 계약하면 집 앞 등 원하는 장소로 배송되도록 한다.

현대차는 고품질 인증중고차 공급과 적정가격의 중고차 매입 지속으로 중고차 시장이 커지고, 소비자 개개인의 차량 잔존가치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기대한다.

현 중고차 매매업계와의 상생방안도 구체적을 언급했다. 현대차는 △5년 10만km 이내의 자사 브랜드 중고차만 판매 △인증중고차 대상 이외 매입 물량은 경매 등을 통해 기존 매매업계에 공급 △연도별 시장점유율 제한 △중고차 통합정보 포털 공개 △중고차산업 종사자 교육 지원 등을 제시했다.

여기에 현대차는 2022년 시장점유율 2.5%를 시작으로 2023년 3.6%, 2024년 5.1%까지 시장점유율을 자체적으로 제한할 방침이다. 자동차산업연합회(KAIA)가 지난달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현대차를 포함해 국내 완성차업체 5개사가 중고차시장에 진출하더라도 자체 시장점유율 제한과 사업계획 등을 고려하면 2026년이 되어서도 5개사 합계 시장점유율이 7.5%~12.9%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현대차는 "완성차업계의 중고차시장 진입으로 시장에 대한 전체적인 신뢰가 높아지면 중고차 수요증가로 이어져 전체 시장규모가 커지고, 이는 중고차 정비와 부품, 유통·관리, 시험·인증 등 다양한 관련 산업의 활성화로 이어진다"며 "중고차 기반 모빌리티 서비스와 ICT 기술을 활용한 디지털 차량 점검 등의 첨단 신산업의 성장을 자극해 결과적으로 중고차산업의 외연이 확장될 것"이라고 밝혔다.

시장 진입 결정 지지부진한 상황...'소비자 최우선'으로 당위성 확보현재 완성차 업체의 중고차 시장 진입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다. 중고차 시장은 규모가 20조원에 달하지만 2013년 중소기업 적합 업종으로 지정되며 완성차 업체는 2019년까지 진출할 수 없었다. 이 제도가 만료되자 현대차가 중고차 시장 진출을 언급했는데, 기존 중고차 업체의 반발로 지난 1월 진입사업 개시 일시 정지 명령을 받았다.

주무부처는 중소벤처기업부인데, 명확히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중이다. 정부는 지난달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주관으로 중고차상생협력위원회를 출범하려 했지만 중고차 업계가 발족식 전날 불참을 통보하면서 결국 무산됐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오는 3월 대선 이후, 생계형 적합업종 심의를 진행하고 완성차 업체의 중고차 시장 진출 여부를 최종적으로 결정짓겠다는 방침이지만 이 결정은 또 미뤄질 가능성이 있다. 동반성장위원회가 중고차 판매업이 생계형적합업종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의견서를 낸 것이 2019년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현대차가 사업 청사진을 구체적으로 공개한 것은 시장 진출에 대한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해석된다. 대다수의 소비자들이 완성차 업계의 중고차시장 진입을 바라고 있는 만큼, '소비자 최우선'을 내건 현대차가 시장 진출 당위성을 가지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실제로 벤츠와 BMW, 도요타 등 국내 수입차 업체들은 인증 중고차 사업을 통해 중고차 가격을 방어하고 브랜드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어 역차별 문제도 여전히 언급되고 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사업 진입 여부가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현대차가 청사진을 공개한 것은 그만큼 시장 진입에 따른 소비자들의 이익이 크다고 자신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시장 진입을 빨리 결정해달라는 요구이기도 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