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韓 위성 발사 앞뒀는데…로켓에 '태극기' 지운 러시아

한국항공우주산업(KAI)에서 개발 주관 중인 차세대중형위성 2호 가상 이미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에 제재를 가한 국가들에 보복을 시작하면서 국내 우주·방위산업에도 비상이 걸렸다. 러시아는 최근 자국에서 발사되는 로켓에 태극기 등 '우주 협력'을 상징하는 6개국 국기를 지웠다. 올해 러시아 로켓으로 발사할 예정이었던 차세대중형위성 2호와 아리랑 6호 사업이 지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7일 외신과 방산업계에 따르면 러시아는 최근 글로벌 우주인터넷 기업 원웹의 우주인터넷용 위성 36기 발사를 취소하면서 한국 포함 영국·미국·프랑스·일본·인도 국기를 지웠다. 원웹은 한화시스템이 3억 달러(3450억원)의 지분을 투자한 기업이다.


당초 원웹 위성 36기는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 우주기지 발사장의 소유스 로켓에서 발사하기로 돼있었다. 그러나 러시아 연방우주공사(로스코스모스)는 지난 1일 발사 조건으로 원웹의 최대 주주인 영국 정부가 지분을 매각하고, 위성이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되지 않아야 한다고 제시하며 제동을 걸었다.

원웹은 이를 거부하고 바이코누르에 있는 직원들을 철수시켰다. 원웹은 오는 8월까지 총648기의 위성을 올려 전세계 초고속 인터넷망을 구축하는 것이 목표였지만, 러시아가 자국 발사를 거부하면서 계획에 차질이 생긴 상황이다. 원웹은 현재 420여기의 위성을 궤도에 올렸는데 이들 대부분은 러시아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소유스 로켓을 통해 쏘아 올렸다.

발사할 로켓이 없으면 원웹이 미국 스페이스X의 스타링크와 우주인터넷 시장 선점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 스타링크는 2019년 60기 위성 발사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약 2000기의 위성을 궤도에 올렸다. 원웹은 앞으로 6번의 발사를 추가로 수행해야 하는데 일본, 인도, 미국 등에서 러시아를 대체할 발사기지를 찾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업계에선 대규모 발사 계약은 보통 2년 전 체결되기 때문에 연내 위성 발사가 재개되긴 힘들다고 보고 있다.


한화시스템을 비롯한 원웹 주주들은 지분 매각은 고려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원웹이 본격적인 수익을 내는 시점이 늦춰지더라도 여전히 한화시스템의 위성통신·안테나 사업과 시너지를 내기에 적임자란 평가다. 한화시스템은 원웹과 위성 본체·탑재체·저궤도 위성통신 안테나 사업의 연계방안 등을 모색하고 있다.

이외에도 KAI가 개발한 다목적실용위성 아리랑 6호와 KAI가 위성시스템 구축부터 위성 본체 개발·제작, 시험·발사까지 총괄한 차세대중형위성 2호도 발사가 연기될 전망이다. KAI는 올 하반기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 우주기지에서 러시아 소유스 로켓으로 차세대중형위성 2호를 발사하기로 계약했다. 아리랑 6호도 러시아 모스크바 플레세츠크 우주기지에서 앙가라 로켓으로 발사가 예정돼있다. 현재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러시아 로켓 발사가 어려울 경우를 대비해 타국 로켓 활용 계약을 위한 작업에 나섰다.

특히 한국이 러시아와 오랜 기간 '우주협력'을 해왔던 만큼 러시아의 제재는 한국 우주산업에 영향력이 클 전망이다. 한국 첫 우주발사체 나로호(KSLV-Ⅰ) 역시 2004년부터 러시아와 우주개발 협정을 맺고 합작해 만들었다. 이후에도 우주 개발 분야에서 러시아의 조력을 받아왔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러시아와 우주 개발 협력을 오랫동안 해왔고 러시아 로켓을 통해 위성을 발사했기 때문에 현재 계획된 위성 발사 사업이 지체될 것"이라며 "이를 한국이 독자적인 우주 개발 국가로 거듭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이번 침공 사태로 우주 인프라 확대에 대한 수요가 커지면서 한화시스템, 쎄트렉아이 등 위성 서비스 사업을 하는 업체들이 장기적으론 수혜를 입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지상 통신망이 망가질 경우 인공위성을 통한 우주 통신망이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크라이나는 전쟁으로 위성인터넷이 끊기자 스타링크에 위성 서비스를 요청했다.

또 다른 방산업계 관계자는 "이번 사태가 우주인터넷의 필요성을 인식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우주인터넷 시장에 일찍 뛰어든 우리 업체들이 유리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