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켈' 값 치솟고 '리튬' 국유화 시도…배터리 업계 어쩌나

머니투데이

김도현 기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니켈값이 폭등한 가운데, 지구 반대편 칠레에서는 리튬·구리 등 주요 지하자원 채굴 광산을 국유화하는 내용의 헌법개정 초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칠레는 세계 3대 리튬 보유국이며, 세계 최다 구리 생산국이다. 주요 배터리 원자재 광물들의 가격·수급이 불안정해지면서 전기차·배터리 생태계가 흔들릴 조짐이다.

10일 한국자원정보서비스(KOMIS)에 따르면 지난 7일 기준 니켈값은 톤당 4만2995달러(약 5300만원)였다. 이날에만 전날(2만9800달러)보다 44.3% 상승하자 영국 런던금속거래소가 리튬 거래 중단조치를 내렸을 정도다. 전기차 수요가 높아지면서 니켈값 역시 최근 3년 새 꾸준히 상승세를 나타냈지만, 이번과 같은 급등세는 처음이었다.

니켈값 급등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향한 서방의 경제제재가 주요 원인이다. 러시아는 글로벌 니켈 공급량의 약 10%를 차지한다. 니켈값은 러시아 침공 가능성이 제기된 작년 하반기부터 톤당 수백달러 규모의 급등락을 반복했다. 러시아를 향한 미국·유럽연합(EU) 등의 수입 제재가 발효될 것이란 소식에 시세차익을 노린 중국 거대자본의 대규모 매수가 더해지면서 가파른 가격 상승을 견인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런던에서 니켈 가격이 폭등한 이날 칠레에서는 리튬·구리 광산 일부를 국유화하는 내용의 제안서가 국회를 통과했다. 지난해 12월 칠레 대선에서 1986년생 가브리엘 보릭(Gabriel Boric)이 당선됐다. 보릭 당선인은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칠레가 지금까지 신자유주의의 요람이었다면, 곧 무덤이 될 것이다"고 언급할 정도로 급진적인 인물로 평가된다.

이번 제안서는 국민투표를 통해 최종 확정된다. 보릭 당선인은 극우 정당 경쟁 후보와 10%p 이상 격차를 보이며 당선돼, 이번 제안서 역시 통과가 유력하다는 게 마이닝닷컴 등 외신의 분석이다. 세계 2위 리튬 생산업체 SQM을 비롯한 칠레 내 리튬·구리 회사들의 주요 광산이 국유화가 되면, 리튬은 칠레 정부의 새로운 무기가 될 전망이다. 니켈 국외 반출을 금지하고 전기차·배터리 기업을 유치한 니켈 1위 생산국 인도네시아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

니켈·리튬·동 등에서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독일 컨설팅업체 이베콘술트(IW Consult)는 최근의 국제정세와 수급불균형을 우려하며 이들 3가지 광물 외에도 리튬·흑연·백금·이리듐 등 주요 배터리 소재들의 가격과 수급이 더욱 불안정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로 인해 전기차·배터리 관련 밸류체인은 물론, 친환경 전기차 보급에도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우려했다.

업계도 비상이다. 니켈은 배터리 4대 핵심소재 중 하나인 양극재의 주원료다.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 등의 주력 전기차 배터리는 양극재의 니켈 함량을 높인 하이니켈 삼원계 NCM(니켈·코발트·망간) 배터리다. 3사 모두 니켈 함량이 90% 이상인 제품을 출시했거나, 출시 예고한 상태다. 리튬은 리튬인산철(LFP) 배터리의 주요 소재다. 국내에서는 에너지저장장치(ESS)에 LFP배터리 사용이 확대되는 추세다. 나머지 광물들도 배터리를 제작하는 데 필수적이다.

대기업 배터리 회사들보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소재업계의 고충은 더욱 크다. 니켈과 같이 광물 가격이 급등하더라도 즉각적으로 제품가격에 반영하기 어렵고, 원재료를 직접 조달해야 해 가격·수급 모든 면에서의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밸류체인 상위 기업들보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다는 점도 한계로 꼽힌다. 일부 중소 소재사들 사이에서는 원자재 폭등으로 금전적인 대응 여력이 부족하다는 호소까지 나올 정도다.

배터리 회사와 소재사들은 원료가격의 변동성을 감안해 공급계약을 체결한다. 특정 기간의 평균가격을 기준으로 납품가격을 치르는 방식이다. 이는 전기차·배터리 회사의 납품도 마찬가지다. 한 소재사 관계자는 "자금 여력이 풍부한 회사들은 일시적인 폭등에 대응할 수 있지만, 영세한 소재사들 입장에서는 큰 부담"이라고 토로했다.

소재업계의 고충은 자연스럽게 배터리업체의 고심으로 이어진다. 시장의 성장 속도에 발맞춰 대규모 선제 투자를 감행한 상태서 밸류체인 전 단계의 수급·가격 리스크가 확대됨에 따라 중장기 투자전략을 수립하거나 이행하는 데 상당한 난항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한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폭발적인 수요에 생산량이 못 미치면서 다양한 부작용이 발생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가격이 오르면서 채산성이 높아졌다고 판단한 광산업체들이 채굴량을 늘려가고, 어느 순간 공급도 안정화를 찾아갈 수 있다"면서 "결국 시간과 시장이 해결해줄 문제"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