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 등판하니 달라졌네…실탄 쌓은 오리온, '몸집 불리기' 나선다

오리온 사옥 전경

그동안 기업의 인수합병(M&A) 시장에서 변방에 있던 오리온 (92,500원 ▲700 +0.76%)이 매물 찾기에 나선다. 식품사업에 역량을 집중하기 위한 포석이다. 최근 건설부문 계열사를 매각하고 현금을 쌓은 것도 이런 배경으로 해석된다.

2일 식품업계에 따르면 오리온은 지난달 28일 증권사 애널리스트를 상대로 한 간담회에서 M&A 의지를 처음으로 피력했다. 허인철 부회장은 "식품사업에 한정해 한국, 중국, 베트남 등 가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매물을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 지역 외에도 북미와 동남아에서 영향력이 있는 식품기업도 검토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오리온은 M&A 시장에서 주목받지 못했다. 2015년 홈플러스 인수전에 도전했지만 예비입찰 문턱도 넘지 못하고 고배를 마신 것이 기억에 남는 사례다. 이듬해 제주용암수 지분 60%를 21억원에 사긴 했지만 1200억원의 공장 설비 투자금을 고려하면 인수보단 신설로 보는 편이 맞다.

이런 행보를 보였던 오리온이 M&A 의사를 밝힌 것은 변화하지 않으면 퇴보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최근 원부자재 비용이 폭발적으로 상승하고 에너지·물류비 급등으로 원가부담이 커지면서 돌파구를 마련해야 할 처지다. 오리온은 2014년 질소과자 파동을 계기로 국내 가격동결을 약속한 이후 9년째 인상하지 않고 있다. 그러다 보니 효율성 극대화가 최대 현안이다.

경쟁기업의 성장도 오리온이 기업 인수에 눈을 돌리게 된 배경으로 꼽힌다. 2018년 CJ제일제당은 미국 냉동식품회사 슈완스컴퍼니를 1조5000억원을 들여 인수했을 때 '승자의 저주'란 말이 나올 만큼 그룹 전체의 유동성이 말랐다. 하지만 2년 만에 미국 매출이 10배 늘면서 판단이 틀리지 않음을 증명했다. '비비고' 브랜드의 미국시장 안착 효과로 CJ제일제당의 전체매출은 2018년 18조원에서 지난해 26조원으로 급성장했다.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에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는 오리온 입장에선 슈완스같은 로컬 기업을 갖게 되면 탄력이 붙을 수 있다.

허인철 오리온그룹 부회장 /사진제공=오리온 /사진=오리온

업계는 오리온의 달라진 태도를 허 부회장의 등판과 연결짓는다. 허 부회장이 프리젠테이션에 나선 것은 2018년 사드(THAAD) 위기 이후 4년 만이다. 허 부회장은 신세계그룹의 성장을 주도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2008년 월마트코리아 인수를 주도해 이마트가 국내 최대규모의 대형마트로 자리 잡는 발판을 마련했다. 때문에 2014년 오리온 부회장으로 자리를 옮겼을 때 오리온도 같은 성장공식을 따르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많았다.

연이은 계열사 매각은 오리온의 실탄을 두둑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오리온은 최근 하이랜드디앤씨, 리온자산개발, 메가마크 등 실적이 나지 않는 건설 부동산부문 계열사들을 모두 팔았다. 프로농구팀 고양 오리온도 시장에 내놓았다. 지난해 말 기준 현금성자산 5500억원 등 오리온은 7000억원에 가까운 자금을 확보해 놓고 있다. 오리온은 이런 시각에 선을 긋는다. 오리온 관계자는 "경영과 투자를 더 잘할 수 있는 곳이 나타나 팔기로 한 것"이라며 "특히 농구단은 사업 포트폴리오에 따른 매각과 무관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