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반도체 정예 20만명 배출…"우린 서울대도 교수 가뭄, 뭐했나"

삼성·SK, 4대 과기원과 의기투합..'5년간 3500명' 반도체 전사 키운다

[평택=뉴시스] 전신 기자 =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일 경기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시찰하고 있다. 오른쪽 두번째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2022.05.20.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4대 과학기술원이 삼성전자 (76,700원 ▲400 +0.52%)·SK하이닉스 (177,800원 ▲7,200 +4.22%) 등 산업계와 의기투합해 내년부터 5년동안 '반도체 전사' 3500명을 육성한다. 반도체 기술이 경제안보와 직결되는 가운데 산학연이 인재육성 총력전을 펴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한국과학기술원(KAIST)·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울산과학기술원(UNIST)·광주과학기술원(GIST) 등 4대 과기원은 반도체 계약학과를 확대 증설하고 석·박사급 인재를 키울 대학원을 신설한다.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30일 KAIST 대전 본원에서 '반도체 인재양성 간담회'를 개최하고 이같이 합의했다.간담회에는 정은승 삼성전자 사장, 김동섭 SK하이닉스 사장, DB하이텍 사장 등 산업계 관계자와 4대 과기원 총장이 모두 참석했다. 윤석열 정부 초대 과기정통부 장관이자 반도체 전문가 출신인 이 장관이 간담회를 주재한 것은, 현 정부가 그만큼 '반도체 인력 양성'을 최우선 과제로 판단한다는 의미다. 간담회에선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이 강점인 메모리 분야는 '굳히기'에 나서고, 그동안 부족했던 비메모리 분야는 경쟁력을 키워야하는데 인력부족 해소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모아졌다.


앞서 TSMC 등 비메모리 위탁생산(파운드리)을 주도하는 대만의 경우, 민간뿐 아니라 정부가 반도체 인재 양성에 앞장서고 있다. 대만은 지난해 5월 반도체 등 첨단기술 산업의 규제완화 법안을 마련했고, TSMC 같은 반도체 기업이 자율적으로 대학과 반도체 전문과정을 개설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우리 정부도 반도체 경쟁력 강화를 위해 4대 과기원을 통해 기업 맞춤형 교육에 나선다. 구체적으로 현재 KAIST에서만 운영 중인 반도체 계약학과(학사급)를 다른 과기원으로 확대해 2023년부터 5년간 1000명 이상을 육성한다.


아울러 석·박사급 반도체 전문인력 양성을 위해 현재 KAIST와 UNIST에서 운영 중인 산학협력 대학원 프로그램을 DGIST와 GIST에 신설한다. 이를 통해 내년부터 5년 내 석·박사급 고급 인재 2500명 이상을 육성키로 했다. 또 반도체 설계와 공정 등 실전 경험이 풍부한 산업계 출신 박사급 교수 채용과 산학협력 교육·연구 프로그램도 확대한다.


이밖에 세계적 수준의 해외 대학, 연구소, 기업과 4대 과기원 간 반도체 공동연구와 인력교류를 늘려나갈 계획이다. 현재 KAIST는 미국 UC버클리대와 인공지능(AI) 반도체 공동연구를 추진 중이다. DGIST와 UNIST는 각각 미국 스탠퍼드대와 퍼듀대, 프린스턴대 등과 인력교류를 협의하고 있다.

이종호 장관은 "초격차 반도체 기술 경쟁력의 관건은 기초가 튼튼하고 창의성 높은 양질의 인재를 충분히 양성해 연구와 산업 부문에서 활용하는 것"이라며 "4대 과기원이 산업계가 필요로 하는 핵심 인력을 확보하는데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과기정통부는 내년 추가 예산을 확보해 시스템 반도체 설계 실무인력 양성과 AI 반도체 고급인재 양성사업에 나설 예정이다. 이를 통해 별도로 5년간 3500여명 이상의 관련 인재를 키워낼 계획이다. 과기정통부는 또 반도체 기업, 4대 과기원이 공동 참여하는 '반도체 인력양성협의회'를 정례화해 산학협력을 추진할 방침이다.


반도체 계약학과 확대 환영하지만…"수도권 대학 정원 확대가 핵심"
정부가 반도체 핵심 인력 양성을 위한 방안으로 '계약학과 확대' 카드를 꺼내든 것에 대해 업계는 대체로 반기는 분위기지만, 아쉬움 섞인 목소리도 적지 않다. 계약학과가 인재 확보를 위한 방편이 될 수는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으론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기업들은 늘어나는 인력 수요를 온전히 감당하기 위해서는 수도권 대학 내 관련 학과의 정원이 확대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계약학과란 산업체가 맞춤형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대학과 계약에 의해 운영하는 학위과정이다. 기업들은 졸업생 전부나 우수한 학생들을 정식 채용한다. 교육 과정 중에도 장학금과 학과 운영비 등을 지원하고 인턴십·현장 견학 등의 기회를 제공한다.

이날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학계와 산업계와 함께 간담회를 개최하고 반도체 인재 양성안을 도출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울산과학기술원(UNIST)·광주과학기술원(GIST) 등 4대 과기원에 반도체 계약학과를 도입해 내년부터 연 200명의 인재를 육성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하지만 계약학과만으로는 인재 충원이 제한적이란 것이 기업들의 공통 의견이다. 5년 내외 주기로 다시 계약을 맺어야 하는 임시방편에 그칠 수 있어서다. 또 정원 외로 학생들을 뽑기 때문에 규모 확대에도 사실상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계약학과 대부분이 20~30명 수준으로 구성되는 것이 현실이다. 반도체 분야에서 부족한 인력이 2020년 기준으로도 1600명에 달하는 점을 고려하면 턱없이 부족한 규모다.

예상만큼 계약학과 지원자가 많지 않다는 점도 아쉬운 점으로 거론된다. 한 업계 인사는 "수도권 내 대학교가 아니면 진학을 꺼리는 경향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대학에서 특정 기업의 채용 전제로 한 교육이 이뤄지는 것에 대한 사회 공감대도 부족한 상황"이라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반도체 산업 인력난을 궁극적으로 해소하기 위해선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본다. 대표적인 것이 수도권 소재 대학의 정원 규제를 푸는 것이다. 현행 수도권정비계획법상 수도권 소재 대학은 인구 집중 유발시설로 분류돼 정원 확대가 불가능하다. 반도체 등 국가 산업 경쟁력과 직결되는 학과에 한해서라도 예외가 적용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업계 요구다.

이는 업계의 오랜 숙원이기도 하다. 지난해 중순 국가첨단전략산업법(반도체특별법) 제정 논의가 이뤄질 때도 이같은 요구가 나왔으나 결국 특별법 내 수도권 대학 정원 확대는 빠졌다. 윤석열 정부의 110대 국정과제에 '관련학과 정원 확대 검토' 내용이 담겼으나 실행으로 이어질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대규모 투자도 연구개발도 결국은 인력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라며 "학부 정원 규제를 풀면 석박사 인력이 확대되고 중소·중견기업에서의 인력 문제도 해결 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갖출 수 있다"고 말했다.


中선 20만명 쏟아지는데…"쌀집·갈빗집 눈치싸움에 멍드는 K반도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20일 경기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방문한 한미 정상의 공장 시찰 도중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제공=대통령실사진기자단

"지금 가장 시급한 문제는 첫째도, 둘째도 인재 확보입니다. 반도체 현장에서 체감하는 인력 확보 상황은 필요인력의 5분의 1에 불과합니다." (황철성 서울대 재료공학부 석좌교수·전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장)

정부가 30일 대학 내 반도체 계약학과를 확대하고 5년간 3000여명의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내용의 반도체 인재 육성 방안을 발표한 것을 두고 업계와 학계에서 뒤늦었지만 환영한다면서도 좀더 파격적인 방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기술 리더십을 확보한 메모리반도체의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국내 업계가 다소 뒤처지는 시스템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와 팹리스(설계) 분야의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3년 안에 정부 계획의 2배 이상인 최소 7000명의 전문인력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현재 국내 기업에서 매년 뽑는 반도체 인력 1만여명 가운데 반도체 전공자는 1400명 수준인 것으로 집계된다. 그나마 대다수 전공자가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같은 대기업에 몰리기 때문에 중소 반도체업체에서는 인력 부족이 상수(常數)가 된 지 오래다.


반도체 설계업체 A사의 경우 지난해 말 채용한 신입사원 60여명을 6개월이 지난 최근까지도 현장에 투입하지 못했다. 반도체 관련 전공자가 없어 모두 재교육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A사 관계자는 "1년 정도 사내 교육을 한 뒤에야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실정"이라며 "인력풀 자체가 부족해 대기업도 사람 뽑기가 어려운 마당에 중소업체는 대학에 가서 읍소해도 데려오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최근 수년 동안 되풀이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스카우트 경쟁 과열도 결국 인력 부족 탓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 한 인사는 "삼성전자는 수원갈빗집, SK하이닉스는 이천 쌀집이라고 부르면서 해마다 연봉을 좀더 주겠다는 쪽으로 인력이 빠져나가고 기업은 이들을 붙잡기 위해 연봉 인상 시기가 되면 서로 0.1%포인트라도 더 얹으려고 눈치를 보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런 인력 부족 문제는 국내 기업들만의 고민은 아니다. 미국과 중국, 대만 등 반도체 산업을 키우는 나라에서는 모두 인력 확보가 최우선 과제가 됐다. '반도체 수요 폭발→공장 증설→인력 부족'의 고리에 점점 속도가 붙으면서다.


전 세계 반도체 생산량의 약 60%를 차지하는 대만 반도체업계에서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3만4000명이 부족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대만 정부는 15년 전부터 매해 전문인력 1만명을 육성하기 시작한 데 이어 지난해 5월 반도체 관련 대학 학과의 정원을 10% 더 늘리는 내용의 '반도체 교육 장려 법안'을 제정했다.

박재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은 "중국은 반도체 자급자족을 선언하면서 베이징대, 칭화대에 반도체학과를 개설해 1년에 반도체 전공자를 20만명씩 키워낸다"며 "미국의 강력한 견제로 중국이 반도체 시장에서 여전히 더딘 걸음을 하고 있지만 엄청난 숫자의 인력 양성을 감안하면 두려움이 생기지 않을 수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학계에서는 정부의 이번 반도체 학과 확대 방안을 두고 학생이 문제가 아니라 교수가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반도체 전공 교수가 부족해 인력 양성의 뿌리가 말랐다는 얘기다. 황철성 교수는 "6~7년 전부터 인력난에 대비해야 한다고 학계와 업계가 목소리를 냈지만 정부가 신경쓰지 않는 새 반도체 고급 인력풀 자체가 바닥난 상황"이라며 "반도체 학과를 만들더라도 가르칠 교수가 없는데 어떻게 수업과 연구의 질을 확보할 수 있겠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