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송해 선생님,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편히 쉬세요~

사진출처=스타뉴스DB

"우리나라는 동해, 서해, 남해 그리고 송해가 있다. 선배님 안녕히 가시라."


10일 오전 4시 30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는 유족과 지인, 연예계 후배 8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8일 세상을 떠난 방송인 송해의 영결식이 진행됐다. 생전 고인과 각별한 사이로 알려진 이용식이 추도사를 맡았다. 그는 "천국에서 아드님과 사모님과 다 함께 만나서 이제는 아프지 마시고 편히 쉬시라. 우리나라는 동해, 서해, 남해 그리고 송해가 있다. 선배님 안녕히 가시라"고 애도를 뜻을 표했다.



송해. 이 이름은 예명이다. 1927년 황해도 재령에서 태어난 송해의 본명은 송복희. 그런데 왜 송해일까? ‘바다 해(海)’를 썼다. 6.25전쟁이 발발하고 부산으로 가는 미 군함에 오른 그는 바다를 건너며 이 같은 예명을 스스로 정했다. 전쟁통에 북에 있는 가족과 생이별을 하고, 바다 위에서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지은 이 이름에는 꼭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들을 만나겠다는 다짐이 담겼다.


송해는 지난해 그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송해 1927’의 시사회 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혈혈단신 월남해서 어렵게 제 소질과 희망을 찾아다니는 것도 마음이 아팠고, 유랑극단 생활을 거쳐서 아픔을 딛고 일어선 것이 향후 활동의 원동력이 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영화 '송해 1927' 스틸컷

하지만 그 꿈을 이루지는 못했다. 송해는 ‘전국노래자랑’을 진행하며 평양 공연을 진행하는 기회를 얻었다. 이 곳에서 불과 차로 30분만 가면 재령 땅을 밟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쉬 허락되지 않았다. 당시 누이를 만나면 주겠다고 색동 저고리와 치마를 챙겼던 송해는 이 옷을 고스란히 챙겨 남으로 돌아오는 길에 펑펑 울었다고 한다.


송해의 삶은 단순히 나이 많은 한 연예인의 삶이 아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경험한 후 그 애환을 자신의 진행 과정에 담은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시대의 아이콘이다. 송해는 자신의 상징적 지위를 결코 내세우거나 이용하지 않았다. 항상 낮은 자세로 임했다. 고령의 몸을 이끌고 전국을 돌고 또 돌았다. 그렇게 만난 사람만 1000만 명이 넘는다. 생전 고인과 만났던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사람을 많이 아는 당신이 가장 부자다"라고 말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게다가 그는 사람을 가려 만나지 않았다. 모든 지역에서 평등하게, 눈높이를 맞추며 소통했다. 남녀노소 누구나 그를 좋아한 이유다.


송해를 이야기하며 ‘전국노래자랑’을 빼놓을 순 없다. 그는 1988년 이 운명과도 같은 프로그램을 만났다. 이후 6년간 진행하고 1994년 하차했다. 하지만 시청자들이 가만히 있지 않았다. 송해의 복귀를 바라는 요청이 빗발쳤고 결국 7개월 만에 복귀했다. 이후 그는 28년간 이 자리를 유지했다. 방송사나 연출자가 아닌, 시청자의 부름이니 어찌 응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송해가 이토록 사람을 귀하게 여긴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실향민으로서 그가 겪은 아픔이 가장 큰 밑거름이 됐다. 고인은 한평생 북에 두고 온 어머니를 그리워했다. 고향에 돌아가 "복희가 돌아왔습니다!"라고 외치는 것이 소원이라 했다. 그런 그는 남에서 결혼 후 가정을 꾸렸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받은 사랑의 기억으로 내리사랑을 실천했다. 그러다 아들을 잃었다. 불의의 오토바이 사고로 아들이 세상을 떠난 후 송해는 시름에 빠졌다. 극단적 선택도 했다. 그는 "남산 팔각정에 올라가 ‘가족들에게도 미안해’하면서 눈 꼭 감고 내리뛰었는데 소나무 가지에 걸려서 살아 돌아왔다. 그 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온 게 오늘날까지 왔다"고 고백한 바 있다.


이후 송해는 더욱 많은 이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에게 귀기울이고, 또 그들을 위로했다. 자신을 통해 힐링을 받는 사람들을 통해 재차 자신이 위로받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몸이 아프고 고돼도 ‘전국노래자랑’ 진행을 거르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갑작스러운 별세 소식은 더욱 마음 아프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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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노래자랑’ 진행은 그의 삶의 루틴이었다. 하지만 2020년 초 코로나19가 창궐한 후 야외 녹화가 사라졌다. 그의 운동량이 크게 줄어들었다. 건강하던 그는 지난해 두 차례 입원 치료를 받았고, 올해도 1월과 5월 입원했다. 지난 3월에는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완치 후에도 후유증이 남았다고 언론 인터뷰를 통해 밝힌 바 있다. 결국 그는 스스로 제작진에 ‘전국노래자랑’ 진행이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의견을 전했다. 프로그램을 쥐고 있겠다는 욕심보다는 제작진과 시청자들에게 불편을 끼칠 수 없다는 배려가 앞섰기 때문이다. 6월 초 2년여 만에 재개된 ‘전국노래자랑’ 야외 녹화에는 송해가 없었다. 그리고 불과 며칠 후, 그의 별세 소식이 들려왔다.


그럼에도 ‘전국노래자랑’은 마지막까지 그와 함께 했다. 10일 열린 영결식에는 ‘송해 1927’에서 발췌한 생전 육성이 흘러나왔다. 이어 34년 간 ‘전국노래자랑’을 진행한 송해의 상징인 "전국∼"이라는 선창이 나오자 참석자들은 눈물을 머금고 "노래자랑∼"이라고 화답했다. 발인 후 서울 종로 송해길에서 노제를 마친 운구차는 서울 여의도 KBS본관으로 향했다. 고인과 함께 전국을 돌며 ‘전국노래자랑’ 악단이 운구차를 맞았고, ‘전국노래자랑’ 시그널송이 추모곡으로 흘러나왔다.


송해는 지난 1월 방송된 ‘KBS 2022 설 대기획 여러분 고맙습니다 송해’에서 이렇게 말했다. "땡을 받아보지 못하면 딩동댕의 정의를 모릅니다. 저 역시 늘 ‘전국노래자랑’에서 내 인생을 딩동댕으로 남기고 싶었던 사람입니다."


송해의 인생은 ‘딩동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