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반려식물의 시대"…넷플릭스보다 '식집사'가 더 재밌다?

'식집사' 백일홍씨의 홈가든/사진=인스타그램 '그린어스' 제공

"비가 계속 오네요. 베란다 창문을 열어뒀는데 식물들이 다 맞겠어요."

지난달 29일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기자와 만난 한성민씨(30세, 남)는 자리에 앉자마자 이같이 입을 열었다. 창문을 열어둔 곳으로 빗물이 들어오면 집의 발코니에서 키우고 있는 식물들에게 좋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였다.


갑자기 내린 비에 가장 먼저 자신이 키우고 있는 '식물'을 걱정하는 사람. 한씨는 2020년부터 화분 약 50개를 집에서 키우고 있는 이른바 '식집사(식물을 키우는 집사)'였다. '반려식물'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한씨와 같은 '식집사'들이 최근 사회적 현상으로 떠오르는 중이다.

이들은 왜 '식물'에 주목한 것일까. 식물을 키우는 것에서 어떤 것을 얻어가고 있는 것일까. 이번 '찐터뷰'는 '식집사'들에 관한 얘기다.
"내가 쏟은 정성 만큼 자라는 게 재밌어"'식집사'들이 식물을 키운 계기는 딱히 특별하지 않아 보였다. 질문을 던지니 "어찌어찌 키우다 보니 너무 즐겁고 보람된 일이어서 계속 키우게 됐다"는 취지의 답들이 일관되게 나왔다.

부모님이 준 식물을 시작으로 '식집사'의 길을 걷고 있다는 한성민씨는 "스킨답서스라는 식물을 처음 키우는데, 그게 엄청 크게 자라났다. 신기하더라. 그 이후 하나하나 구매하다가 보니 화분이 많아졌다"며 "식물이라는 게 기본적으로 물을 주면 꾸준히 자라나지 않나. 정성을 쏟은 만큼 크는 게 재밌었다"고 말했다.


2019년부터 식물을 키우기 시작해서 현재 200개가 넘는 화분을 관리하고 있는 백일홍씨(34세, 여)는 "식물을 키우는 게 생각보다 즐거운 일이다. 관심을 주며 애정을 쏟으면 예쁜 신엽과, 멋진 수형으로 보답을 한다. 뿌듯하고 성취감도 있다"고 말했다. '그린어스'라는 이름으로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채널도 운영하는 백씨는 "식물을 기르는 친구들과의 소통도 재밌다. 아직 아이가 없지만, 엄마들이 맘카페에서 소통하는 이유를 알겠다"며 웃었다.

'식집사' 서아림씨의 온실/사진=네이버 블로그 '아디미' 제공

사무실에 46종류의 화분을 키우고 있는, '식집사' 두 달차인 서아림씨(31세, 여)는 "녹보수나무를 선물받았는데 뿌리파리가 엄청나게 생겼다. 그걸 잡기 위한 장비들을 산 게 시작이었다"고 했다. 지금은 아예 '온실'까지 만들어 식물 키우기에 여념이 없다고. 그는 "빛, 바람, 습도, 흙 등 환경을 만들어주고 나면 식물들이 금방금방 좋다는 듯이 새 잎을 내고 뿌리를 키운다. 잘 자라주는 식물들이 기특하고 신기하다"고 밝혔다.

이들 '식집사'는 식물을 키운 계기를 밝히면서 '정성을 쏟은 만큼 반응하는' 것에 매력을 느꼈다고 공통적으로 언급했다. 나 자신의 능동적인 활동으로 맺어지는 '결실'이 '재미'로 다가왔다는 것이다.
'식멍'에 빠진 집사들…"넷플릭스보다 좋아"'식집사'들이 식물을 키우는 재미로 빼먹지 않는 개념이 '식멍'이다. 식물을 가꾸면서, 또는 바라보면서 '멍'하게 있는 시간을 즐긴다는 뜻. 끊임없이 챙겨줘야 하는 '동물'을 키우는 것과 차별화가 명백히 되는 지점이다.

'식집사'가 된 계기와 '식멍'에 빠진 이유를 종합해보면 △'자극' 보다는 '편안함'과 '안정감'을 원하는 사람들 △그러면서도 조직 속에서의 '수동적인 역할'을 행하기보다 나를 위한 '능동적인 역할'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홈가드닝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다음은 이런 심리를 보여주는 '식집사'들의 코멘트다.

"퇴근 후 저녁에 '넷플릭스'를 보는 게 일상이었는데 이제는 그 시간에 식물을 돌본다. 새순이 올라올 때마다 행복하다. 식물이 건강하게 자라주면 내가 뭐라도 된 느낌이 든다. 회사에서 얻지 못한 성취감과 기쁨을 식물에게서 얻었던 것 같다. 아침에 눈 뜨면 식물부터 살펴보는 게 일상이다."(백일홍씨)

'식집사'의 자세/사진=인스타그램 '그린어스' 캡처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 홈가드닝으로 마음의 힐링 시간을 가졌다. 식물만 보면 마음이 편안하다. 힘들 때는 '너네라도 편안하고 행복하거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지금도 화가 나거나, 신경쓸 일이 많아지면 식물에 물을 주면서 '식멍'을 하게 된다. 회사에서 진을 다 빼고 집에 와도, 식물을 딱 보면 심리적으로 너무 안정이 된다."(한성민씨)

"영국의 환경운동가 존 뮤어는 '흙에게 치유할 수 없는 슬픔이란 없다'고 했다. '정원을 가꾼다는 것' 이라는 책에 실린, 내가 좋아하는 문장이다. 식물들의 끈질긴 생명력을 보면 사람이 더 나약하고, 쉽게 포기한다는 생각이 들더라. 한낱 풀 한 포기들도 조금의 조건만 갖춰지면 그걸 붙잡고 살아서 잎을 틔운다. 끈질기게 살아 남아야겠다는 귀감을 받는다."(서아림씨)
'반려식물'의 시대…생명을 키운다는 책임감홈가드닝 관련 사업을 하는 오주원 틸테이블 대표와 김광수 가든어스 대표의 '식집사' 열풍에 대한 시선도 비슷했다. 시장에서 바라보는 이들의 시선은 보다 분석적이었다. 오 대표는 2007년부터, 김 대표는 2018년부터 홈가드닝 시장의 미래를 보고 사업에 뛰어든 인물들이다.

오주원 대표는 "식물에 대한 관심은 트렌드가 아니라 '본능'에 가깝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본능적으로 산과 숲을 찾지 않나"라며 "특히 MZ세대들은 취업, 부동산 등 스트레스가 굉장히 많다. '나'의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식물을 보며 힐링을 하는 것이다. 식물을 '반려식물'의 느낌으로 자세히 보면서 또 다른 재미를 느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광수 대표는 자신 역시 대기업에 근무하던 시절 힘들 때마다 홈가드닝으로 '힐링'을 했었다고 밝혔다. 그러다 창업까지 하게 됐다는 것. 그는 "식물을 통해 살아있음을 느꼈다"며 "최근 식물이 '반려동물'처럼 의식주의 하나로 들어오기 시작한 것 같다. 그렇게 된 이후 반응이 폭발적이 됐다. 식물은 이제 단순한 화분 하나의 의미가 이니다"고 말했다.

오주원 틸테이블 대표(왼쪽)와 김광수 가든어스 대표

자극적인 미디어에서 벗어나고픈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나 자신만을 위한 시간이 필요한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위로받고 싶은 젊은 사람들이 생겨날수록, 자연과 생명을 존중하는 문화가 확대될수록 식물이 갖는 가치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나도 모르게 어느새 '식집사'가 되는 사람들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중요한 건 '내가 사고 싶은 식물'이 아니라 '내가 키울 수 있는 식물'을 기르는 것이다. '반려식물'을 키우는 시대에는 식물을 하나의 생명체로 존중하며 책임감있는 홈가드닝을 해야 한다. 그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식집사'의 태도다.

오 대표는 "식물이 예쁘다고 그냥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집 안에서 잘 키울 수 있어야 하고, 환경에 맞는 식물을 사야 하는 게 첫 번째"라며 "제대로 식물을 알게 하고, 가드닝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게 큰 임무"라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자연·환경에 대한 관심이 커질수록, 홈가드닝에 대한 관심도 커질 것"이라면서도 "홈가드닝 시장이 확대되고 있음에도 사후 서비스를 신경 안 쓰는 곳이 많다. 판매자들도 책임감있게 식물을 팔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