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 스치면 8개월 간 부항·약침·추나…나이롱환자·한방병원 '짝짜꿍'

머니투데이

김세관 기자

#경남에 거주하는 46세 여성 A씨는 최근 정차 중 추돌사고를 당했다. 다행히도 크게 다친 데는 없었지만 뒷목과 허리가 뻐근했다. 교통사고 상해급수상 12급에 해당되는 경·요추염좌라는 진단을 받았다. 12급이면 경상환자에 해당된다. 그럼에도 A씨는 한방병원에서 8개월 간 다양한 치료를 받았다. 어떤 날은 하루에 △침술 △부항 △약침 △추나요법 △온냉경락요법 △구술(뜸) △한방파스 △경근간섭저주파요법을 일시에 진행하기도 했다. 금액은 모두 상대방 보험사에서 지불했다. 본인부담금이 없다보니 A씨는 자신과 병원 모두 '윈윈'이라고 생각했다.

대표적인 한방병원 과잉진료 사례다. 양방과 달리 한방 진료비는 수가기준이 명확히 정해져 있지 않아 발생하는 경우라고 보험업계는 설명한다. 자동차보험 한방 경상환자들의 진료비 증가는 불필요한 보험금 누수를 발생시키는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자동차보험 한방진료비 5년만에 184%↑…"수가 구체적이지 않다"

30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자동차보험 진료비 총 2조3916억원 중 한방 진료비가 1조3066억원(54.6%)이다. 사상 처음으로 양방 진료비 1조850억원을 넘어섰다.

2016년까지만 해도 한방 진료비는 4598억원, 전체의 27.7% 수준이었다. 당시 양방 진료비는 1조1988억원으로 72.3%를 차지했다. 진료비 규모로만 보면 양방은 거의 그대로인 반면 한방 진료비는 184% 증가했다.

자동차보험은 배상책임보험으로 진료비 내의 급여·비급여 치료 항목이 모두 보상된다. 특히 비급여는 국토교통부의 고시인 '자보수가기준'에 의거해 보험사가 전부 보상한다.

다만, 수가가 상대적으로 명확한 양방 치료와 달리 한방 치료는 구체적이지 않다는 지적을 그동안 받아왔다. 유사한 목적과 유사한 효과의 진료 항목을 동시에 진료해도 삭감할 수 있는 근거는 없어서다. 보험업계는 한방 진료비가 최근 우려를 자아낼 정도로 증가하고 있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경상환자에 '세트청구'·'상급병실' 등 과잉진료 지적

보험업계는 한방 의료기관의 '세트 청구'를 대표적인 자동차보험 과잉진료 사례로 꼽는다. 교통사고 환자가 방문했을 때 증상과 상관없이 다수의 한방 진료항목을 일시에 진료하는 행위를 지칭한다.

경미한 증상의 환자임에도 불구하고 침, 구, 부항, 한방물리요법, 첩약, 약침 등이 일시에 처방되고 비용도 한 번에 청구되면 보험사로서는 부담이 누적될 수밖에 없다. 신청되는 족족 보험사의 손해율로 잡힌다.

아울러 상급 병실 운영도 자동차보험 누수를 키우는 원인으로 지목된다. 일부 한방 병원들은 호텔과 비슷한 인테리어에 고급 안마의자를 두고 넷플릭스와 같은 OTT 스트리밍 서비스까지 이용 가능한 TV 등을 갖춘 1~2인 병실을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로 홍보한다.

국토부의 자보 수가 기준 상 7일까지 상급 병실을 이용할 수 있다는 규정을 악용한 것이다. 더욱이 의원급 의료기관은 일반병상을 전체의 절반 이상 확보해야 하는 것이 일반적인 규정이다. 하지만 10병상 이하로 운영하면 의원급은 일반 병상 확보 의무가 없다. 일부 한의원들이 10병상 미만의 1~2인 상급병실을 구성해 과잉진료를 부추기는 일이 적지 않다고 보험업계는 강조한다.

전용식 보험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자동차보험 과잉진료는 개개인 계약자의 향후 보험료 상승을 야기하고 결과적으로 보험사와 계약자 간 신뢰관계를 무너트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자동차보험 관련 기준이 너무 느슨해서 생기는 일로, 장기화 되면 자동차보험의 존폐까지도 우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동차보험 한방 진료 환자들도 4명 중 3명은 첩약 방치

교통사고 경상환자들이 한방 의원을 통해 과잉진료를 받고 있다는 건 소비자 인식에서도 나타난다. 시민단체인 '사단법인 소비자와함께'가 2020년 한방진료 소비자 인식 설문조사 결과 치료를 받은 4명 중 3명은 첩약을 버리거나 방치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약을 다 복용하지 않는 이유(복수응답)는 △귀찮아서 28.6% △효과가 없을 것 같아서 22.3% △부작용 우려 21.0% △너무 많아서 9.6% 순이었다.

특히 보험금이 아니라 자신이 한약 비용을 지급한다면 처방받지 않겠다고 한 비율도 60.5%에 달했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자동차보험료 인상 요인 억제와 자동차보험 환자 건강을 위해 한방치료의 효용성을 객관적으로 입증하고 이에 부합하는 합리적인 보상기준이 마련돼야 한다"며 "당국도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관련 대책을 내놨지만 현재 진행이 지지부진한 상황이라 속도를 좀 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