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법인 둔 외국펀드도 외국 기업…정부, 핵심기술 유출 막는다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영상회의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반도체 포토마스크를 바라보고 있다. /사진제공=대통령실

정부가 외국인이 투자해 국내에 세운 사모펀드에 대해서도 외국 기업으로 분류하는 등 외국인의 투자·인수·합병 절차를 강화한다. 반도체·조선·철강 등 국가핵심기술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다. 또 국제 경쟁력을 제고하고 분쟁에 휘말린 우리 기업을 돕기 위해서는 핵심기술 관련 문건 반출 과정을 간소화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4일 산업기술보호위원회를 열고 △기술수출 개념 확대 △외국인 범위 확대 △외국인투자 인수합병(M&A) 심의대상 확대 등 기술보호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기술 보유기관의 부담 경감 및 관리 강화를 주된 내용으로 하는 '산업기술보호법'(산기법) 개정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반도체·디스플레이·전기전자·자동차·철도 등 12개 분야 73개 기술을 국가핵심기술로 지정하고 해외 유출, 기술 탈취, 기술 수출 등의 과정 전반을 관리하고 있다.

산업부는 우선 국가핵심기술 유출 방지 차원에서 외국인 범위와 외국인 투자 심의대상 범위를 확대한다. 현재는 주된 투자자가 외국인으로 구성된 사모펀드가 반도체 설계·공정·소자 기술 등을 보유한 한국 기업을 인수하더라도 국내에서 세운 법인으로 인수 절차를 진행하면 규제 대상에서 제외된다.

한국 기업을 자회사로 보유한 외국 모기업의 매각 시 한국 자회사의 기술 유출도 방지한다. 예를 들어 미국에 법인을 둔 모기업이 다른 기업에 매각될 경우 미국 법에 따라 관련 절차를 진행하기 때문에 한국 자회사도 모회사와 함께 매각된다. 이 때문에 해당 기업의 국가핵심기술 유출 위험성에 대해 우리 정부가 대처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기업 M&A 과정에서도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의 경우 30% 이상의 지분을 확보하면 지배적 경영권을 획득했다고 보지만 산기법은 50%를 경영권 획득 기준으로 해석하고 있어 외국계 기업 또는 외국인 투자자가 국가 핵심기술 소유 기업에 대한 인수·합병이 쉬운 상황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현행 법상 국가 핵심기술 유출이 쉬운 △외국인 범위 △외국계 기업의 M&A △외국계 사모펀드 운영 등 규제 사각지대에 놓인 부분을 개선할 것"라고 설명했다.

우리 기업이 현장에서 경험한 애로사항도 개선된다. 국제회의에서 우리 기업의 기술력을 발표하거나 국제 소송 진행 과정에서 관련 자료를 제출해야 할 때도 국가 핵심기술이라는 이유로 기술 수출 승인에 준하는 정부의 복잡한 절차를 밟아야 했다. 산업부는 이에 대해서는 절차 간소화를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산기법 개정 방향에 대해 민간 주도의 '기술안보포럼'을 출범해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친다.

이창양 산업부 장관은 "오늘날 기술 빼가기 수법은 법·제도가 따라잡기에 버거울 정도"라며 "잘 정비된 산업기술보호제도는 우리 산업의 혁신과 도약을 위한 필수 공공재로 규제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지나친 부담은 덜어내는 실효성 있는 제도를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날 회의에서는 △자동차분야 국가핵심기술 수출 승인 △철강분야 수출 및 조선분야 해외 M&A 조건부 승인 등 총 3건의 안건이 의결됐다. 2차 전지 관련 소재·공정·생산기술 수출 관련 안건은 해외 유출시 국내 산업경쟁력과 국가안보에 부정적인 영향을 우려해 승인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