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총장이 외친 "횡재세", 이미 도입한 나라들…업계는 '반발'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유엔 연설에서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큰 이익을 본 화석연료 기업들에게 '횡재세'(windfall tax)를 물릴 것을 촉구하면서 다시금 낯선 이 세금이 주목받는다. 러시아가 일으킨 전쟁 여파로 에너지 대란을 겪고 있는 유럽에서는 몇몇 나라에서 이미 횡재세가 도입됐고, 미국에서도 관련해 운을 띄운 상태다. 업계는 반발한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사진=로이터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20일(미국 동부시간 기준) 뉴욕 유엔본부에서 시작된 제77차 유엔총회 일반토의 기조 연설에서 폭염, 홍수, 가뭄 등 점점 더 심해지는 기후변화 피해와 관련해 "오염 유발자들이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화석연료 생산자들, 투자자들, 그 조력자들에게 이를 통고할 시점에 이르렀다"며 "모든 선진국들에게 화석연료 기업들의 횡재 이익에 세금을 부과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그는 석유·천연가스·석탄을 생산하는 기업들의 초과이익을 대상으로 거둔 '횡재세'는 기후 위기 피해가 심각한 나라들, 식량과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고통을 겪는 이들을 위해 쓰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횡재세는 기후변화로 인한 기상 재난과 식량난을 야기하고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수익을 올리고 있는 에너지 기업들을 겨냥한 것이다. 세계 최대 석유 업체 엑손모빌은 2분기에 178억 달러(24조8000억 원)라는 역대 최대 순이익을 거뒀다. 같은 기간 프랑스 에너지 대기업 토탈에너지가 115억 달러(15조9000억 원), 영국계 셸도 98억 달러(13조5000억 원)의 역대 최대 분기 이익을 각각 기록했다.
유럽에는 이미 '횡재세'가 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25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EU 정상회의 중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FPBBNews=뉴스1

유럽연합(EU)은 이미 횡재세 도입을 추진 중이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은 지난 14일 유럽의회 연설에서 발전 및 화석연료 업체들의 초과이익에 횡재세를 매겨 1400억 유로(195조 원)를 마련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전쟁으로 혜택을 받아 기록적 이익을 얻는 것은 잘못됐다"며 "이런 시기에 이윤은 가장 필요한 사람들에게 분배되고 전달돼야 한다"고 했다.

일부 유럽 국가는 이미 횡재세를 시행 중이다. 영국은 석유 및 가스 업체들에 초과이윤세를 25% 늘려 부과 중이다. 이탈리아는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3월까지 500만유로(약 69억원) 이상 이익을 낸 에너지 기업에 25%의 횡재세를 추가로 물리기로 했다. 헝가리도 올해와 내년에 에너지 기업 외에도 보험사, 항공사 등에 초과이윤세를 부과해 총 8000억 포린트(3조 원)를 걷기로 했다.


스페인 정부는 은행과 에너지 기업에 2023~2024년 2년간 한시로 초과이윤세를 부과해 70억 유로(9조2000억 원)를 거둬들이겠다고 밝혔다. 스페인 정부는 횡재세를 통한 세수 증가분을 수도 마드리드에 공공주택 1만2000호 건설, 9~12월에 국영철도 무임 승차권 발급, 16세 이상 장학생 대상 월 100유로씩 추가 장학금 지급 등에 쓸 계획이다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도 지난 6월 "엑손모빌은 올해 신보다 돈을 많이 벌고 있다"며 꼬집었고, 미 의회는 이익률 10%가 넘는 석유 기업에 21%의 세금을 추가로 물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업계는 반발 "에너지값 하락 때 시설 유지했는데"

/AFPBBNews=뉴스1

반면 과세 대상이 되는 기업 등 업계는 반발하고 있다. 고유가로 인한 불만을 정유사에 떠넘긴다는 주장이다. 일부 전문가는 장기적으로 에너지 수급 불안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타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에너지 시장은 호황과 불황을 반복한다"며 "현재의 에너지 부족 상황에서 에너지 공급에 제공되는 보상을 과장한다면 이는 다음 에너지 공급 위기를 더욱 악화시킨다"고 주장했다.

업계와 일부 전문가들은 현재 고유가 상황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친환경 사업 전환에 따른 정유업 투자 감소 영향으로 전 세계적 수급이 불균형해진 탓이라고 주장한다. 일시적 가격 상승에 대해 초과이윤세를 부과하는 게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에너지 가격이 떨어졌을 때 생산 시설 유지한 업체들이 누리는 보상을 빼앗는다는 지적도 있다. 또 세금을 높이면 정유사는 공급을 줄일 것이기 때문에 에너지 가격이 오르는 역효과가 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영국이 초과이윤세 부과를 결정하자 지난 5월 석유 메이저 BP는 180억 파운드(28조4700억 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