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핑크│글로벌 걸스 온 탑①

블랙핑크, 사진제공=YG엔터테인먼트

블랙핑크가 'K팝 걸그룹 최고'라는 타이틀에는 반박할 여지가 없다. 앨범 초동으로 154만 여장을 기록(한터차트 기준으로 수출 물량은 미포함)하고, 150만 명을 동원하는 월드 투어를 개최하는 일은 그 어떤 걸그룹도 해내지 못한 일이다. 하지만 이는 K팝 보이그룹이나 여타 인기 팝스타들도 쉽게 해내지 못하는 일이다. 단순히 'K팝 걸그룹 최초'라든가 'K팝 걸그룹 최고'라는 타이틀에 국한해 블랙핑크의 성과를 매기는 것은 굉장히 소포장된 평가라 볼 수 있다.


블랙핑크가 지난달 16일 발매한 정규 2집 'BORN PINK(본 핑크)'는 선주문으로만 더블 밀리언셀러를 기록하고, 글로벌 음악 시장의 중심지인 미국과 영국에서 동시에 차트 정상을 찍었다. 여성 아시아 아티스트로서 양대 차트를 동시에 석권한 건 블랙핑크가 최초다. 걸그룹으로도 2001년 데스티니 차일드 이후 21년 만의 기록이다. '빌보드 글로벌 200'과 '빌보드 글로벌 차트'에서도 1위를 동시에 기록했는데 이는 인기 팝스타 중에서도 저스틴 비버와 테일러 스위프트만이 해냈던 일이고, 국내에서는 방탄소년단이 이 기록을 유일하게 보유했었다. K팝 걸그룹 최고가 아닌, '글로벌 걸스 온 탑'임을 증명하던 순간이다.



SNS 저력은 국내 아티스트 중 최고다. 멤버들의 개인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지수 6520만 명, 제니 7100만 명, 로제 6390만 명, 리사 8310만 명)를 종합하면 총 2억 8000만 여 명에 달한다. 방탄소년단 멤버 중 가장 많은 팔로워 수를 보유한 뷔가 5210만 명임을 감안하면 더욱 대단한 수치다. 유튜브 구독자 수는 전 세계 아티스트를 통틀어 1위(8230만명)다. 인기 팝스타 저스틴 비버(7030만명)나 테일러 스위프트(4770만명), 심지어 방탄소년단(7120만명)보다도 구독자 수가 최소 1000만 명을 앞선다. 블랙핑크가 유튜브 조회수로만 내는 수익은 최소 월 30억 원으로 추측되고 있다.


SNS나 유튜브 팔로워 수는 인기의 척도로도 볼 수 있지만, 수익과도 직결된다. 패션업계에서는 지수가 인스타그램에 디올 관련 게시물 하나로 거둘 수 있는 미디어 영향 가치(MIV)를 약 174만달러(약 25억원)라고 분석했다. 제니가 지난 3월 파리에서 진행된 샤넬 2022/23 가을·겨울 레디 투 웨어 쇼에서 창출한 MIV도 360만 달러(한화 51억원)로 추정했다. 로제(생로랑)나 리사(셀린느)도 명품 브랜드의 엠버서더인 점을 감안하면 이들이 개인 인스타그램 게시물로만 거둘 수 있는 수익은 수십 억대 그 이상으로 추정된다.

블랙핑크, 사진제공=YG엔터테인먼트

내년까지 예정된 월드 투어로도 엄청난 수익을 창출한 것이란 분석이다. 총 150만 명 관객을 동원할 예정인 'BORN PINK' 월드 투어는 단일 공연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다. 돔뿐만 아니라 스태디움 공연까지 구상하고 있어 약 40회로 계획된 투어 규모가 더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티켓 수익뿐만 아니라 앨범, MD 등 다양한 분야에서도 수익 창출이 엄청날 것이란 관측이다. 특히 투어 자체가 그룹에 대한 가장 큰 홍보 수단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투어를 진행하는 동안 더한 성장 효과도 기대되고 있다. 증권가에서 예측한 현재 해당 투어의 예상 매출은 최소 2025억원(단가 13만 5000원 가정)이다.


미국 대중음악 시장에서 K팝 아티스트가 진출 이상의 성과를 보이기 시작한 역사는 길지 않다. 방탄소년단의 2016년이 가장 대표적이고 오래됐다 할 만하다. 그 중에서도 걸그룹이 자리를 잡기까지는 보다 시간이 걸렸다. 블랙핑크의 2019년 미국 TV 데뷔 시점에서 바로 그해 미국 최대 음악 페스티벌인 코첼라 무대에 서게 된 건 엄청난 성과라 할 만하다. 미국에 가지 않고도 그들과의 소통 창구를 열어 둔 소셜미디어가 그 출입로를 활짝 열어놨고, 본격적으로 그 안에 발을 들인 블랙핑크의 기대 이상의 음악과 퍼포먼스, 세련된 아웃핏이 인기를 가속화했다.


블랙핑크의 음악은 힙합을 뿌리로 두고 각종 힙하고 화려한 것들이 응축돼 있다. 수반하는 퍼포먼스 역시 보이그룹의 그것과 맞먹을 정도로 역동적이다. 여기에 여성의 유연함까지 동시에 갖추며 글로벌 팬들이 주목할 수밖에 없는 특별한 지점이 존재했다. 팀명 그대로 블랙의 단단함과 핑크의 부드러움을 동시에 품고 있으면서, 패션을 비롯한 비주얼은 미(美)의 집합이라 할 만큼 매력적이다. 주체적인 모방과 소비의 대상인 '워너비형' 걸그룹이라는 포지션으로 글로벌 시장에 빠르게 뿌리 내릴 수 있던 셈이다. 이는 여성 소비자의 주도로 이뤄지는 문화 산업에서 블랙핑크가 이성 위주의 성(性)적 어필 없이도 세계 문화 주 소비층을 끌어들여 정상에 오를 수 있었던 동력이다. 인플루언서 특징을 띠는 소셜미디어에서의 트렌드세터 활약과 아티스트로서 공연 행사를 뜨겁게 만들 수 있는 여러 차원의 존재. 덕분에 블랙핑크는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시장을 적극적으로, 그것도 영리하게 공략하는 팀이 되었다. 그리고 족적으로 남기는 숫자들이 이들의 현재 위상과 가치를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다. K팝 걸그룹 최고가 아닌, 세계 정상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