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진정 실탄 급한데…" 흥국생명 사태, 한국 신용에 생채기 내나

[서울=뉴시스] 배훈식 기자 =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2022.11.04.

흥국생명보험의 5억달러(약 7000억원) 규모 외화 신종자본증권 조기상환(콜옵션 행사) 포기 여파로 우리 기업들이 발행한 외화채권에 대한 시장의 신뢰 훼손이 우려된다. 자칫 정부가 환율 안정을 위해 발행하는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에까지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정부는 이번 흥국생명 사태가 외평채를 비롯한 외화채권 등 채권시장 전반의 문제로 확대될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6일 관련 부처에 따르면 현재 국회에 계류돼 있는 정부의 '2023년 예산안'에는 내년 외평채 발행 한도가 올해(10억달러)의 3배인 30억달러로 설정돼 있다. 외평채는 환율 안정 목적으로 운용하는 실탄인 외국환평형기금의 조달을 위해 정부가 발행하는 채권이다.


정부가 내년 외평채 발행 한도를 대폭 확대하기로 한 것은 환율 불안이 당분간 계속될 가능성이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내 자금시장 경색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최근 발생한 흥국생명 사태 영향으로 외화채권 시장 내 한국 기업에 대한 신뢰가 크게 훼손되고, 결과적으로 국가 신용 악화에 따른 외평채 발행 차질까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 1일 흥국생명은 2017년 발행한 5억달러 규모 신종자본증권의 조기상환을 연기한다고 싱가포르거래소에 공시했다. 신종자본증권 투자자들은 통상적으로 조기상환을 염두에 두고 투자하기 때문에 이번 흥국생명의 결정은 외화채권 시장에서 우리 기업 전반에 대한 신뢰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가 내년 필요한 만큼 외평채를 발행하지 못할 경우 외환보유고 투입을 통한 환율 안정에 제약이 생긴다. 국가 신용도가 낮은 상태에서는 외평채 발행에 성공하더라도 가산금리(미국 국채금리 등 지표금리에 더해 발행자 신용도에 따라 추가 지급하는 금리)가 높게 매겨지는 문제가 있다. 외평채 가산금리는 민간 외화채권의 벤치마크(준거금리) 역할을 하기 때문에 높아지는 만큼 우리 기업의 외화 조달 비용이 늘어난다.

[서울=뉴시스] 배훈식 기자 =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2022.11.04.

최근 우리나라는 '레고랜드 사태' 등으로 인한 자금시장 경색,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등 영향으로 국가 부도 위험을 보여주는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이 계속 오르고 있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지난 3일 외평채 5년물의 CDS 프리미엄이 전일대비 6bp(1bp=0.01%포인트) 오른 75bp를 기록했다. CDS 프리미엄은 지난달 31일 5년 만에 최고치인 70bp를 기록했는데 이후에도 오름세를 이어가고 있다. 국내 기업의 외화채권 신용 스프레드(미국 국채 대비 가산금리)는 올해 초 145bp에서 지난달 말 192bp까지 치솟았다. 신용 스프레드가 오르면 그만큼 높은 금리로 외화채권을 발행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정부는 이번 흥국생명 사태가 외채시장, 나아가 채권시장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신종자본증권은 일반 채권시장과 완전히 무관한 정도는 아니더라도 상당 부분 분리돼 있다고 봐야 한다"며 "이번 사태로 한국물 채권 전반에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주장은 지나친 해석"이라고 말했다. 이어 "외평채는 내년에 언제 얼마나 발행할지도 정해지지 않았다"며 "(외평채 발행 차질 가능성은) 지나치게 앞선 걱정"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