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4년...근로자 10명 중 7명은 '괴롭힘 참는다'

한 지방고용노동지청./사진=뉴스1

올해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지 4년째지만 괴롭힘을 경험한 근로자 중 '참거나 모른척했다'고 답한 근로자 비중이 꾸준히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대응해도 상황이 나아질 것 가지 않고 향후 인사 등에서 불이익을 예상한 탓이다.

31일 시민단체 직장갑질 119에 따르면 이 단체가 지난해 4분기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중 28%가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직장 내에서 괴롭힘을 당한 경험이 있는 응답자(280명) 대상으로 괴롭힘을 당했을 때 대응법을 조사한 결과 '참거나 모른척했다'가 73.2%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한 근로자 10명 중7명은 여전히 '참거나 모른척'하고 있는 셈이다.


참거나 모른척한 이유에 대해서 '대응을 해도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 않아서'(68.4%)가 가장 많았다. 다음은 '향후 인사 등에 불이익을 당할 것같아서'(21.2%)였다.

더욱이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후 직장갑질119가 관련 조사를 시작한 2019년 9월과 비교해 '참거나 모른척했다'고 답한 응답자 비율은 13.5% 증가했다.

권두섭 직장갑질119 대표(변호사)는 "회사 내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신고하기 어렵다는 구조적 한계도 있다"면서도 "결국 고용노동부가 그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반증의 한 사례로 본다. 심각한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한 사업장은 강도 높은 근로 감독 등을 시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실효성이 낮은 탓에 근로자들이 실효성을 꺼린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현행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근로기준법 제76조에 따라 사용자가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한 근로자 등에게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처우를 한 경우에는 근로기준법 제109조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처벌하고 있다.
또 △사용자(친족 근로자 등 포함)의 가해행위 발생시 1000만원 이하 과태료 △사건조사·피해자보호·가해자 징계 등 조치 이행하지 않을 경우 500만원 이하 과태료 △ 조사내용 누설시 500만원 이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한다.

현행법은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하면 회사가 조사해서 자체 징계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셈이다.

박점규 직장갑질119 전문위원은 "누가 봐도 회사는 가해자의 편인 경우가 많다"며 "회사가 조사해서 처벌하도록 하다 보니 심각한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피해자는 어디에서도 자신의 괴로움을 해결해 줄 수 없다고 믿고 극단선택에 이르게 된다"고 말했다.

사용자는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해 사용자에게 신고한 후 조사·징계 등의 처리 내용을 고용노동부(노동부) 등 관계기관에 신고할 의무는 없다. 2019년 6월 시행 후 얼마나 많은 사례가 발생했는지 파악조차 하기 어려운 것이다.

사용자(또는 친족 근로자)가 가해자인 경우나 괴롭힘 피해를 신고를 했지만 사용자가 조사 등을 제대로 진행하지 않은 경우 피해자는 노동청에 신고 또는 지도를 요청할 수 있다.

직장갑질119가 지난해 강은미 정의당 의원실을 통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직장 내 괴롭힘 신고 통계'를 보면 노동청에 신고된 '직장 내 괴롭힘' 신고 사례 2만2764건(2019년 7월16일~지난해 5월31일) 가운데 노동청이 개선지도한 건이 11.5%, 검찰에 송치한 건이 1.5%였다. 대다수는 기타(51.7%) 신고취하(33.4%) 등으로 처리 됐다. '기타' 사유에는 근로기준법을 적용할 수 없는 5인미만 사업장인 경우가 대다수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법 취지 자체가 사업장에서 발생한 괴롭힘을 자율적으로 조치하도록 하는 것"이라며 "괴롭힘 행위 유형이 다양할 수밖에 없고 폭언이나 폭행 등은 형법 등 개별법률의 적용을 받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피해자에게 불이익을 줄 경우 형사처벌과 함께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에 따라 2021년엔 과태료 부과 사안도 추가했다"고 설명했다.

박점규 직장갑질119 전문위원은 "노동청의 회사 조사 결과를 동의할 수 없으면 노동청에 신고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노동청이 조사하는 내용은 직장 내 괴롭힘 유무가 아닌 법에 따라 조사를 했는지 여부"라며 "저희는 회사가 1심 기관으로 조사와 징계에 나서면 노동청이 2심 기관이 돼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