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사'로 남겨진 노견(老犬)…입양한 특수청소부[인류애 충전소]

보호자는 고독사로 숨졌다. 노견 '행복이'는 10일 넘게 그 집에 홀로 남겨져 있었다. 고인의 마지막 흔적을 지우러 간 특수청소부가 행복이를 집에 데려가 돌봤다. 이제 행복해질 참이었던 행복이는, 그 소박한 행복도 다 누리지 못한 채 지난해 12월 강아지별로 떠났다. 특수청소부는, 몇 달을 함께했던 행복이의 마지막 길을 잘 챙겨 보내주었다./사진=김새별 바이오해저드

/일러스트= 조보람 작가(@pencil_no.9)

집에 살던 이는 고인이 돼 흙으로 돌아갔다. 홀로 살던 50대였다. 아무도 알 수 없던 그 죽음은, 10일이 지난 뒤에야 집 밖으로 삐져나왔다. 지난해였고 계절은 여름이었다. 냄새를 견딜 수 없던 이들이 신고했다. '고독사'였다. 고인은 그제야 떠났으나 집엔 오래된 흔적이 남았다. 아무나 쉬이 지울 수 없는.

그래서 특수청소부가 온 거였다. 김새별 바이오해저드 대표(49)의 일이다. 고인 흔적을 지워주고, 황급히 떠난 이의 이사를 돕는다. 하늘로의 마지막 이사다. 김 대표가 컴컴한 집에 들어갔다. 현관에선, 이미 집을 떠난 고인을 향해 인사를 꾸벅했다. 흑백처럼 정지된 집의 냄새가 특수마스크를 뚫고 들어왔다. 한참 전에 죽은 집이었다.

고인의 집안을, 거기 남아 있는 많은 유품들을, 하늘로 마지막 이사를 해주는 특수청소부이자 유품정리사. 김새별 바이오해저드 대표가 집안을 청소하는 모습./사진=남형도 기자

그때였다. 죽은 집에 살아 움직이는 존재가 있었다. 하얗고 작은 개였다. 보호자가 떠나고 홀로 남겨져 10일이나 있었던 개. 유가족도 돌봐줄 수 없다고 해, 갈 곳을 잃은 개. 차마 유기견 보호소에 보낼 수 없어 김 대표는 개를 집에 데려갔다. 이름은 '행복이'였다. 병원에도 데려가니, 수의사는 행복이가 10살이 넘는 '노견(老犬)'이라 했다. 이빨도 다 빠진 개였다. 행복이 털도 깎아주고 치료도 해줬다. 함께 살기로 맘 먹었다.


그로부터 5개월이 지난, 지난해 12월의 어느 날. 그해 겨울 행복이는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고요히 잠든 모습이었다. 김 대표는 행복이의 장례를 잘 치러주었다. 행복이가 떠나던 날, 몇 달새 정든 가족들의 눈물이 그치질 않았다. 홀로 죽는 이들을 봐달라고, 떠난 후 남겨진 것들을 생각해달라고. 13일 밤에 나눈 김 대표와의 이야기는 서로의 울음이 틈틈이 섞여, 묵직하고 또 묵직했다.

'마음의 병' 앓던 보호자…피아노 뒤에 숨어 떨던 행복이

함께 살던 보호자가 떠나고, 고독사 현장에 홀로 남겨져 있던 '행복이'. 밖으로 나오는 것도 무서워 피아노 뒤에 숨어 있었단다. 꼬리를 잔뜩 말고서, 고개만 살짝 내밀고서. 떠난 뒤에 남겨지는 존재들, 맘 아픈 장면이다./사진=김새별 바이오해저드 대표

그날 그 집에선 무슨 일이 있었고, 행복이와 처음 만난 날은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을까.

형도 : 고독사이고, 10일 지나고 발견된 거고요. 걱정되는 상황인데, 행복이는 어땠나요.
새별 : 작은 방에 있더라고요. 피아노 뒤에 숨어서 고개만 빼꼼 내밀고 있는 거예요. 제가 말을 걸었지요. "어…너 누구야, 어디서 왔어. 여기 사는 거야? 괜찮아. 이리와." 이렇게 말이지요. 쉽게 다가오지 않더라고요. 자꾸 뒷걸음질치고 꼬리를 말고 숨었어요. 겁이 나는 것 같아서 "거기 있어, 괜찮아"라고 했지요.


형도 : 행복이 상태가 많이 안 좋았겠어요. 어떤 모습이었을지요.
새별 : 10일 넘게 혼자 지냈잖아요. 굶어 죽기 일보 직전에, 유가족이 사료와 간식을 듬뿍 줬다고요. 빼빼 말라 있고, 털이 덥수룩하고 잘 걷지 못하더라고요. 관리가 잘 안 돼 있었어요. 보호자가 '마음의 병'을 앓았다고 하더라고요.

행복이가 살던 집, 보호자가 남긴 흔적들./사진=김새별 바이오해저드 대표

형도 : 혹시 보호자가 잘 챙겨주지 못했던 걸까요.
새별 : 관리가 잘 안 된 걸로 봐선 아마도요. 청소하며 봤는데, 강아지 용품도 보이지 않더라고요. 사랑 받지 못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불쌍하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하루아침에 보호자를 잃은 거잖아요.

형도 : 보호자가 떠났다는 걸, 행복이도 알았을까요.
새별 : 현장에 반려견이나 반려묘가 갑자기 튀어나올 때가 있거든요. 제가 느끼기엔 얘들도 자기 보호자가 죽었단 걸 알아요. 되게 불안해하고요. 얌전하게 있어요. 날 보호해줄 사람이 이제 없구나, 그걸 아는 것처럼요. 어떤 개들은 보호자가 잠자는 줄 알고 얼굴을 계속 핥아주기도 해요. 닳아질 정도로요.

'유기견 보호소' 알아보란 말에…집으로 데려온 '행복이', 노견이었다

김새별 대표의 집에 온 행복이. 털도 깎아주고, 발톱도 다듬어주고, 목욕도 시켜주었다. 긴 발톱을 제때 자르지 못해 잘 걷지도 못하는 상태였단다./사진=김새별 바이오해저드 대표

보호자를 잃고 갈 곳이 사라진 하얗고 작은 존재. 그러나 김 대표의 역할은, 실은 고인의 집을 청소해주는 것까지였다. 행복이가 어떻게 김 대표와 함께 살게된 걸지 궁금했다. 아무래도 모른척하지 못했던 맘 때문이었을지.

형도 : 고인은 홀로 떠나셨지만, 행복이를 키워줄 유가족 분들이 계시잖아요. 데려가기 힘든 상황이었을까요.
새별 : 유가족 분들이 애를 어떻게 해야하는지 고민하더라고요. 데려가 키우긴 힘들다고요. 이미 반려견이 여럿 있다고 하면서요. "유기견 보호소로 보내야 하나"라고 하시는 거예요. 행복이가 갈 데가 없어진 거지요.

형도 : 그래서, 행복이를 가족으로 맞아야겠다 생각하신 거고요. 쉽지 않은 결심인데요.
새별 : 제가 동물을 워낙 좋아해서요. 행복이를 거둘 사람이 없으면 당연히 제가 데려가야겠다고 생각했지요. 그 전에도, 고독사 현장에서 반려동물을 발견해 데려간 적이 있었어요.

형도 : 예전엔 어떤 일이 있으셨던 걸까요.
새별 : 극단적 선택을 하신 분이 있었어요. 사료를 큰 걸 하나 뜯어놓고 돌아가신 거예요. 보호자가 안 일어나니까 반려견이 엄청 짖었어요. 그러니까 주민들이 너무 시끄러워서 신고했죠. 그래서 그 녀석을 병원에서 치료해줬지요. 잘 따르던 직원이 있었는데, 그만둘 때 반려견을 데리고 갔어요. 평생 가족이 생긴 거예요.

털을 깎고 난 뒤의 행복이./사진=김새별 바이오해저드 대표

형도 : 정말 다행이네요. 행복이는 집에 온 뒤엔 어땠나요.
새별 : 병원에 가서 몸 아픈데 없는지 검사했지요. 발톱이 길어서 제대로 걷지도 못했었어요. 수의사 선생님이 "이빨이 이렇게 다 빠졌을 정도면 10살도 넘는다"고 하셨고요.

형도 : 노견이었던 거지요. 돌봄이 필요했을텐데, 그리고 나선 집에 많이 적응하던가요.
새별 : 얌전하던 애가, 집에 온 다음 날 처음 짖더라고요. 목욕시켜주고 예쁘다고 하고 있을 때요. 그래서 "행복아, 너 짖을 줄도 알아?"라며 웃었어요. 그리고 많이 따랐고, 산책도 잘했고, 전에 누려보지 못한 행복을 누린단 생각이 들만큼 좋아보였지요.

그리고…7개월만에 '행복이'가 떠났다

이름처럼 행복한 삶이었을까. 데려온 몇 달 동안이나마 그리 해주지 못한 것 같아서, 김새별 대표는 행복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단다. 고맙다, 미안하단 말을 하며 마지막 길을 챙겨주었다./사진=김새별 바이오해저드 대표

행복이는 간밤에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지난해 12월이었다. 행복이가 새로운 가족을 맞은지 5개월 만이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행복이가 움직이지 않았다. 안아서 심장 마사지를 했으나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행복이가 숨진 원인은 정확히 밝히지 못했다. 그리, 행복이는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형도 : 마음이 아픕니다. 함께한 그 행복도 얼마 누리지 못한 것 같아서요. 많이 힘드셨겠어요.
새별 : 진짜 눈물이 많이 나더라고요. 몇 달 정들었다고 속상하고 죽겠더라고요. 너무 황망해서 온 식구들이 다 울었어요. 데리고 오면서, 예전 보호자보다 더 잘해주고 싶단 생각만 했는데, 괜히 많이 못해준 것 같고 미안했지요.

형도 : 떠나고 나면 못해준 게 더 기억에 많이 남아요. 저도 17살 노견이었던 아롱이를 보내봐서 잘 알지요. 행복이는 화장을 한 거지요.
새별 : 그냥 화장만 해줄 수가 없어서 장례를 치러주었어요. 그곳에 계신 분들이 정말 예의를 갖추어서 행복이를 보내주셨는데, 그게 너무 고맙고 위로가 되더라고요.

형도 : 마지막 길을 잘 챙겨주셔서, 무지개다리를 편히 건넜을 거예요. 고맙습니다, 정말로요.
새별 : 행복이가 많이 말라 있어서, 처음엔 잘 먹였거든요. 살이 부쩍 찌기에 중간부터는 "너무 많이 먹으면 안 돼"하면서 양도 조절해줬었어요. 그런데 이리 갈 줄 알았으면 그냥 맛있는 것 많이 먹일 걸 그랬나, 그런 후회도 들더라고요. 좀 더 잘해줄 걸, 간식 많이 줄 걸, 그런 생각이 들어요.

국화꽃 한 송이 얹어주고, 화장장으로 들어가는 행복이의 마지막 길. 이름처럼 이젠 행복한 일만 있기를./사진=김새별 바이오해저드 대표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졌을 때의 공허함이 계속 남아 있단다. 이리 마음 아픈데 다음엔 거두지 말아야 할까, 그런 생각을 했단다. 또 상처 받을까봐 싶어서다.

지금이니까 이런 얘기라도 하는 거라며 덤덤히 쏟아내던 그가, 별안간 또 울었다. 우연히 연을 맺고 정을 나눈단 것. 그건 역시나 지우기 힘든 복잡한 흔적이 남는 거라고. 특수용액을 부어 고인의 혈흔이며 기름을 다 지우는 전문가여도 별 수 없다고. 쇼핑백에 물건을 잠시만 넣으면 뺀 뒤에도, 그 모양대로 고스란히 남아 있듯이.

할머니가 홀로 숨진 어느 집안의 모습. 함께 살던 반려견이 뒤따라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떠난 뒤 남겨질 존재들에 대한 생각을 해달라고 했다. 잘 살아달라는 당부였다./사진=김새별 바이오해저드 대표

에필로그(epilogue).

한 청년이 숨졌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거였다. 김 대표가 유품을 정리하다 태블릿PC를 봤다. 죽음과 관련된 검색어가 남아 있었다. 아들의 모친과 통화했다. 눈물이 마를 정도로 울었다. 어머니는 "우리 아들 유품 정리하러 갔다가, 아무 것도 못하고 나왔다"고 했다. 대신 잘 정리해달란 말에 김 대표도 위로하는 말도 다 잊은 채 꺽꺽 울었다.

할머니가 홀로 돌아가신 반지하 집도 갔었단다. 화장실이 조금 높은 곳에 있었는데, 할머니가 가다가 넘어져 숨졌다고 했다. 집안에 교통사고 현장처럼, 숨진 흔적이 남아 있었단다. 두 사람이 엉킨듯한 자국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할머니가 키우던 리트리버 반려견이었다. 숨진 할머니 옆에 기대어 죽은 거라고 했다.

이런저런 이야길 내놓는 그에게 말했다. 힘든 기억을 다시 꺼내놓게 해드려 죄송스런 마음이라고. 그랬더니 그가 이렇게 답했다.

"그럼에도 이야길 들려드리는 이유는, 지금도 어딘가에서 잘못된 선택을 하는 분들 때문이에요. 내가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엔 물건만 있는 게 아니에요. 사람도 있고, 가족과 같았던 반려동물과 식물, 물고기도 있고요. 여러분의 행복을 빌겠습니다."

그러니까 부디, 어떻게든 살아달라는 진심이 담긴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