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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봐, 해봤어?"…쌀가게 직원서 30조 그룹 만든 '이 사람'[뉴스속오늘]

머니투데이
  • 박효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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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3.21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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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포니' 발표회에 참석한 고(故) 정주영 회장 /사진=현대그룹 홈페이지
현대자동차 '포니' 발표회에 참석한 고(故) 정주영 회장 /사진=현대그룹 홈페이지
2001년 3월 21일. 현대그룹 창업자인 정주영 회장이 86년의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했다. 요즘 말로 치자면 '흙수저'였던 그는 불굴의 도전정신으로 대한민국 최고 재력가 자리에 오른 인물이다. 그가 세상을 떠난 2001년 당시 현대그룹의 가치는 30조원이었다.

22년이 지났지만, 그가 남긴 업적과 정신은 여전히 회자되고 있다. "기업 경영에는 오로지 신념, 도전 그리고 결과가 있을 뿐입니다",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모두 정 회장의 했던 말이다. 성공 신화를 이룬 그의 도전 정신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표현이기도 하다.


원조 흙수저에서 왕(王)회장 되기까지…시작은 쌀가게


1915년 가난한 농사꾼의 맏아들로 태어난 정 회장은 강원도 통천소학교 출신이다. 지독한 가난이 싫어 소학교 졸업 후 원산, 금화, 경성, 인천 등 도시로 가출해 막노동하며 전전했다.

이후 쌀가게 취업했다가 해당 가게를 인수하며 본격적인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의 나이 23살이었다. 하지만 중일전쟁으로 쌀 배급제가 실시되며 간판을 내려야만 했다.

이후 그는 '아도서비스'라는 자동차 수리공장을 인수했다. 사업이 잘되는 듯했지만 공장에 불이 난 데 이어 조선총독부 압박에 시달렸다. 결국 공장은 개점 3년 만에 문을 닫았다.
현대자동차공업사 설립 당시. /사진=현대자동차그룹
현대자동차공업사 설립 당시. /사진=현대자동차그룹
하지만 정 회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광복 후 그는 1946년 미 군정청에서 불하받은 땅에 '현대자동차공업사' 간판을 걸고 자동차 수리공장을 다시 차렸다. '현대'를 지향해서 발전된 미래를 살아보자는 의도였다. 결국 현대자동차공업사는 후에 현대건설, 현대자동차, 현대조선 등 현대그룹을 탄생시키는 토대가 됐다.

정 회장은 현대자동차공업사 설립 이듬해 현대토건사를 세웠다. 1950년 1월 두 회사를 합병해 현대그룹 모체인 현대건설주식회사를 설립했다. 회사는 전후 교량, 도로 등 파괴된 국토 복원사업을 도맡으며 급속하게 성장했다.

1971년 현대건설, 현대자동차, 현대시멘트를 총괄하는 현대그룹을 출범시키고 1973년 현대중공업을 설립했다. 이후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 항만공사 등 '중동 신화'를 써 내려갔다.


소 1001마리와 함께 방북…"이봐, 해보기나 했어?"


정 회장은 유별났다. 항상 남과 다르게 생각했고, 그것을 실천했다.

그 대표적인 일화로 조선소 건설 이야기가 꼽힌다. 당시 정 회장이 조선소를 짓겠다고 하자 '무슨 경험이 있다고 조선소를 만드느냐'고 얘기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당시 현대는 조선소 건설을 위해 영국 최고 은행이던 바클레이은행과 4300만 달러(약 510억원)에 이르는 차관 도입을 협의했다. 하지만 바클레이 측은 현대의 조선 능력과 기술 수준이 부족하다며 거절했다.

이에 1971년 9월 정 회장은 바클레이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인물인 선박 컨설턴트 회사 '애플도어'의 롱바텀 회장을 찾아갔다. 롱바텀 회장 역시 고개를 저었다.

그때 정 회장은 재빨리 지갑에서 거북선 그림이 있는 500원짜리 지폐 한 장을 꺼내 펴 보이며 한국의 잠재력을 역설했고 결국 추천서를 받아냈다. 이후 차관도입 협정을 끝마쳤고 2년 3개월 만에 조선소를 준공했다.
1998년 소떼 방북을 앞두고 서산농장에서 키운 통일소를 끌고 있는 정주영 /사진=아산정주영닷컴
1998년 소떼 방북을 앞두고 서산농장에서 키운 통일소를 끌고 있는 정주영 /사진=아산정주영닷컴
소 떼 방북 일화는 전 세계 이목을 끌기도 했다. 1998년 6월 소 500마리를 실은 트럭 50대가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으로 갔다. 당시 이 모습은 미국 CNN을 통해 전 세계로 중계됐고 프랑스 문명비평가 기 소르망은 '20세기 최후의 전위예술'이라고 평가했다.

이후 정 회장은 북한 측과 금강산 관광 개발사업 추진 등에 합의했고 같은 해 10월 2차로 소 501마리를 북한으로 보낸 데 이어 한 달 후 금강산 관광 사업이 시작됐다.

아무도 해보지 못한 일, 감히 상상도 못 할 일을 정 회장이 해낸 것이다. 그는 새로운 일을 시도할 때마다 난색을 보이는 직원들에게 "이봐, 해보기나 했어?"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살았다. 그의 한마디는 허무맹랑한 상상으로 치부됐던 일을 해내는 원동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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