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개혁 강행' 이스라엘 총리, 국방장관도 해임…시민 분노 폭발

27일(현지시간) 사법개혁 반대 시위대가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총리 관저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AFPBBNews=뉴스1

이스라엘 전국 각지에서 사법개혁에 반대하는 시위가 격화하고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사법개혁 중단을 외친 국방부 장관을 전격 해임한 게 시위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대법원 판결을 의회가 뒤집을 수 있는 사법개혁을 둘러싸고 이스라엘의 국정 혼란이 가중되는 모양새다.

26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네타냐후 총리는 이날 요아브 갈란트 국방부 장관을 해임한다고 밝혔다. 갈란트 장관이 TV 연설을 통해 사법개혁 입법안 표결의 연기를 촉구한 지 하루 만이다. 갈란트 장관은 "심각한 분열이 군 내부로 확산하고 있다. 이는 이스라엘 안보에 중대한 위협이다"라며 사법개혁 중단을 요구했다.


갈란트 장관은 최근 사법개혁에 대한 반발로 예비군들의 복무 거부 움직임이 일자 네타냐후 총리에게 우려의 뜻을 전달했으나 네타냐후 총리가 강행 입장을 고수하자 공개 행동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갈란트 장관은 해임 소식 후 트위터를 통해 "이스라엘의 안보는 내 인생의 사명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갈란트 장관의 해임은 사법개혁에 반대하던 시민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예루살렘의 총리 관저 인근에선 수천 명의 시위대가 도로를 봉쇄하고 철제 바리케이드를 부수며 거칠게 항의했다. 경찰은 시위대에 물대포를 뿌려 해산을 시도했다. 전국 각지에서도 시위가 이어졌다. 시위 규모는 20만명을 넘는다고 외신은 전했다. 예루살렘 시위에 참여한 교사 엘라 나오르(36)는 "안주하던 사회가 깨어났다"며 "승리할 때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 주재 이스라엘 총영사 아사프 자미르도 네타냐후 총리의 갈란트 장관 해임 결정에 항의해 사의를 표했다. 그는 트위터에 사직서를 올리며 "나는 네타냐후의 사법개혁이 민주주의 체제의 근간을 훼손하고 법치를 위협한다고 믿는다"고 적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AFPBBNews=뉴스1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우파에 치우쳐 있다고 평가받는 이스라엘 현 정부는 지난해 말 집권 후 최우선 과제 중 하나로 사법개혁을 추진 중이다. 입법안의 핵심은 대법원에 대한 실질적 통제권을 의회가 확보하는 것이다. 개혁안이 통과되면 정부는 대법관 임명을 통제하고 대법원 결정을 무효화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된다.

개혁을 지지하는 측은 사법부가 너무 많은 권한을 가지고 있으며 이 권한을 좌파 의제를 위해 쓴다고 주장한다. 이는 우파 정부를 세운 민심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파는 사법 개혁을 사법부의 독립성을 무력화하려는 시도로 본다. 이들은 사법 개혁이 추진될 경우 삼권분립의 원칙을 무너뜨리고 외교적·경제적 후퇴를 초래할 것이라고 말한다. 뇌물수수 혐의를 받는 네타냐후 총리가 재판을 방해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적지 않다.

저항이 커지자 입법안 의회 표결을 앞두고 여권 내부에서 조심스럽게 연기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네타냐후 총리의 측근인 미키 조하르 문화부 장관은 "네타냐후 총리가 사법개혁을 중단하기로 결정한다면 당은 그를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네타냐후 총리가 여기에서 멈출 경우 극우 동맹의 반란으로 인해 연정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예루살렘의 히브루대학 아브라함 디스킨 교수는 "사법개혁 중단은 네타냐후 총리에게 정치적 자살 행위일 수 있다. 하지만 강행한다면 이스라엘 안보를 위협에 빠뜨릴 것이다"라면서 "네타냐후 총리는 점점 궁지에 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예루살렘 소재 이스라엘민주주의연구소의 기드온 라하트 선임 연구원 역시 네타냐후 총리가 정치적 필요에 의해 극우와 동맹을 맺었지만, 그가 통제권을 쥐고 있는지는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네타냐후 총리는 호랑이 등에 올라탔고 이제 호랑이는 제 갈 길을 가기 시작했다"고 비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