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중동의 대공세…K-화학 "신사업 투자없인 미래도 없다"

/그래픽=이지혜 디자인기자

증설은 약 4500만톤, 수요 증가는 약 2600만톤.

석유화학 업계 및 증권가가 파악하고 있는 2020년부터 2024년까지 글로벌 에틸렌 수요·공급 증가 예측이다. 공급 증가분이 수요 보다 거의 두 배 가까이 많다. 에틸렌은 플라스틱, 비닐, 합성고무, 건축자재 등의 기초 원료 물질이어서 '화학산업의 쌀'로 불린다. 이런 에틸렌의 수요보다 공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상황이기에, 석유화학 산업의 업황 부진이 지속되고 있다.


공급 과잉은 중국이 주도하고 있다. 2020~2022년 사이 에틸렌 증설의 56%가 중국에서 이뤄졌다. 2019년 연 2711만톤이었던 중국 에틸렌 생산능력은 올해 5174만톤에 달할 전망이다. 값싼 인건비를 앞세운 중국 범용 제품의 저가 공세가 더욱 강화될 수밖에 없다. 국내 기초 화학제품의 가격 경쟁력은 바닥에 떨어진 지 오래다.

화학업계는 중동의 영향력에도 주목한다. 풍부한 원유와 막대한 자금을 앞세워 시장을 공략할 수 있는 중동이다. 한 화학사의 고위 관계자는 "중동 업체들의 경우 워낙 저가 원료를 쓰기 때문에 원가 면에서 경쟁이 되지 않는 상황"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국내 정유·화학사들은 △수요가 공급을 따라가지 못하는 업황 △중국과 중동의 저가 공세 속에서 결국 '생존'을 위해 '변화'를 택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현재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고부가가치 신사업을 준비하지 않는다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위기감이 업계를 휩쓸고 있다.


선제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대표주자는 SK이노베이션이다. 국내 최초의 석유화학회사였던 자회사 SK종합화학의 이름을 SK지오센트릭으로 바꾸고 플라스틱 재활용 사업에 '올인'하기 시작했다. 에틸렌을 만드는 국내 1호 NCC(나프타분해설비)의 가동을 중단하고, 1조7000억원을 들여 세계 최초 플라스틱 재활용 종합단지 울산 ARC를 2025년까지 만들기로 했다.

SK이노베이션 울산콤플렉스의 모습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SK이노베이션은 '조' 단위의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SK온을 설립하고 이차전치 시장에도 뛰어들었다. SK 관계자는 "정유사를 운영하는 기업이 무슨 배터리를 만드냐는 일각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래를 위해 결단을 내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SK이노베이션은 이밖에도 1조원 대의 유상증자를 통해 각종 배터리 소재, SMR(소형모듈원자로), 수소 및 암모니아 등에도 지속적 투자를 이어갈 예정이다.

LG화학 역시 마찬가지다. LG에너지솔루션이라는 배터리 회사를 이미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다. LG에너지솔루션의 물적분할 이후로는 배터리 소재 사업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재 12만톤 수준의 양극재 생산능력을 2028년 47만톤까지 확대한다는 구상이다. 전구체, 분리막, 탄소나노튜브(CNT) 등 핵심 소재 사업 역시 육성하고 있다.

LG화학은 적자에 허덕이는 범용 석유·화학 사업에 대한 사업 구조조정을 예고하기도 했다. 배터리 및 친환경 소재에 더욱 투자를 확대하기 위한 취지다. 화학업계는 이 소식을 더욱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LG화학은 배터리 소재 쪽에서 수익을 크게 늘리며 흑자를 이어온 기업인데도 가장 먼저 사업 구조조정 카드를 꺼냈다"며 "변화의 흐름을 감지하고, 더 빠른 속도로 미래를 위해 준비해야 한다는 절박감이 아니겠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