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짓던 야드에 담은 '바람'…해상풍력으로 부활하는 성동

기존 조선소 시설을 개조해 해상풍력 하구구조물 제작 공정에 쓰고 있는 HSG성동조선의 생산시설 일부/사진=권다희 기자

지난달 24일 찾은 경상남도 통영시 HSG성동조선 야드 곳곳에선 블록(선체 기본 구조물)을 만드는 공정과 함께 거대한 철판을 자르고 구부려 이어 붙이는 작업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다. 높이 약 85m, 무게 약 2000톤의 해상풍력 발전기 하부구조물을 만드는 공정의 앞부분이다. 한때 배를 만들던 거대한 야드의 한 부분을 해상풍력 하부구조물 일감이 차지한 풍경이다. 하부구조물 제작 공정은 현재 야드 면적의 약 10~20%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 비중이 올해 말 약 40%, 내년 상반기께 약 70%까지 늘어날 예정이다.

옛 성동조선, 법정관리 졸업 후 해상풍력 시장서 활로 옛 성동조선해양은 2000년대 수주잔량 기준 세계 10위권 조선사였지만 글로벌 금융위기와 외환파생상품 손실, 조선업 침체 등으로 2010년대 들어 10년간 지난 한 구조조정을 겪었다. 2011년 채권단과의 자율협약 체결 후 결국 2018년 법정관리에 들어가 세 차례의 매각 불발을 겪었다. 2019년 12월 HSG중공업이 인수해 가까스로 청산을 모면했고, 2020년 5월 'HSG성동조선'이란 새 이름으로 법정관리를 졸업했다.


법정관리 졸업 3년여가 흐른 지금 HSG성동조선은 끝이 없어 보이던 구조조정 터널을 통과해 해상풍력 및 에너지기업으로의 전환에 한창이다. 120만㎡ 규모의 넓은 야드, 배를 만들던 각종 설비, 수백 톤을 들 수 있는 대형 크레인 등 조선업의 '유산'을 고스란히 이어받아 해상풍력 구조물을 만드는 기업으로의 '전업'이 진행 중이다. 올해에만 수천억원 규모의 해상풍력 하부구조물 공급 계약을 맺으며 약 2년만에 성공적인 전업을 입증했다.

HSG성동조선은 지난 5월 덴마크 해상풍력 개발사 오스테드가 대만에 짓는 창화 2b & 4 해상풍력 발전단지에 하부구조물 33기를 공급하는 계약을 단독 체결했다. 하부구조물 시장은 첫 진입이 어려운 실적 기반 시장인 만큼 세계 최대 해상풍력 개발사와의 계약 체결은 HSG성동조선의 시장 진출에 물꼬를 터 주는 계기가 됐다.이후 한국과 일본 해상풍력 프로젝트에 진출한 개발사들과의 공급 계약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법정관리 종료 직후가 팬데믹 기간이었던 걸 감안하면 불과 2년 만에 새로운 업종에서 활로를 모색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넓은 야드 등 기존 조선업 자산, 해상풍력 하부구조물 제작에 최적업종 전환은 조선사로서 갖고 있던 기존 자산을 활용해 새로 부상하는 재생에너지 산업에 진입하겠다는 경영진의 전략이 적중한 결과다. 법정관리 졸업 직후 팬데믹이 한창이던 기간 HSG성동조선은 우선 삼성중공업 등 대형 조선사의 블록 생산에 주력했다. 그러나 이는 팬데믹 기간의 일시적 대책이었다. 궁극적으로 신산업에서 활로를 찾아야 했다. 조선업은 대표적인 노동집약적 산업인데 긴 조선업 불황기 동안 기존 인력이 다른 업종으로 빠져나갔기 때문에 설계·구매 분야에 필요한 수백 명의 인력을 단기간에 확보하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존 강점을 결합할 수 있는 신사업을 검토하던 중 해상풍력이 시장 성장성이 높고 기존 보유 자산을 활용할 수 있는 분야라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옛 성동조선이 보유한 넓은 야드, 2000년대 지어져 상대적으로 대형화한 시설 등은 해상풍력 하부구조물을 만드는 데 최적화된 자산이었다. 옛 성동조선은 일반 조선사들처럼 배를 짓는 공간인 드라이 도크(dock) 없이 선박을 육상에서 건조해 진수하는 시스템을 사용해 왔는데, 하부구조물 같은 초대형 구조물을 야드에서 바다로 운반할 때 드라이 도크 면적의 제한이 없어 유리한 조건까지 갖추고 있다.

특히 해상풍력 하부구조물은 기존 조선업 생산설비를 일부만 개조 해도 제작이 가능했다. 배의 기본 단위인 블록을 만들던 블록공장의 일부는 현재 하부구조물과 풍력 터빈을 연결하는 트랜지션 피스를 만드는 시설로 쓰인다. 조선 소조립 공장에선 하부구조물을 구성하는 대형 파이프를 이어 붙이는 공정이 이뤄진다. 강재가 포스코 등에서 들어오면 이 소조립 공장을 지나 절단 공장을 거쳐 용접 공장으로 이동한다. 여기에 배를 만드는 공정에 비해 자동화 비중을 높일 수 있어 조선업과 같은 인력 투입 부담도 적었다.

트랜지션피스(해상풍력 하부구조물과 풍력 터빈 타워를 잇는 구조물)를 구성하는 원통형 캔을 만드는 과정. 이 원통형 캔들을 용접해 하나의 트랜지션피스가 완성된다. 원래 조선에 쓰이던 시설을 일부 개조해 이 공정에 사용하고 있다/사진제공= HSG성동조선

돌아온 옛 성동조선 직원들…해상변전소 등 해상풍력 사업 집중 법정관리 졸업 후 전원 복귀한 옛 성동조선 직원 670명은 하부구조물 제작이라는 새 업무에 빠른 속도로 적응했다. 하부구조물은 배를 만드는 공정에 비해 기술적으로 더 까다롭다고 평가된다. 용접사의 기량도 더 높아야 하고, 내구성을 포함한 품질이나 안전 등에 대한 요구 수준이 높다. 유럽사가 한 설계를 보유한 설비에 맞게 조정하는 능력도 필요하다. 조선업은 전반적으로 표준화가 이뤄진 반면 하부구조물의 경우 새로운 해양 관련 표준 등에 대한 공부도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과 수개월의 기간을 거쳐 2021년 하부구조물 제작에 뛰어 들었다. 이진상 HSG성동조선 대표는 "새로운 사업으로 방향을 틀기 위해서는 직원들의 의지가 굉장히 중요한 데 이 부분이 굉장히 높았다"며 "이런 소프트웨어적인 측면과 기존 조선업 기반 설비·야드 등 하드웨어 부분이 결합 돼 새롭게 떠오르는 해상풍력 분야와 맞물리며 빠른 성장이 가능했다"고 했다.

HSG성동조선은 2030년이 가까워지며 급성장이 예상되는 부유체(부유식 해상풍력 발전 단지의 하부구조물) 시장 대응에도 경쟁 우위가 있다고 자신한다. 옛 성동조선의 설비 대부분이 2000년대 중반 이후 만들어져 대형화됐고, 이 대형화된 설비가 부유체 제작에 더 적합해서다. 기존 야드의 규모가 넓은 것 역시 경쟁력이다. 하부구조물 외에수천톤짜리 구조물인 해상변전소(OSS) 제작에도 나설 계획이다.

해상풍력 사업에서의 성장은 통영 지역경제의 활성화에도 직결될 수 있다. 조선업은 한 때 통영 GRDP(지역내총생산)의 절반을 차지했고, 옛 성동조선은 통영 소재 조선사 중에서도 가장 큰 기업이었다. 이진상 대표는 "고용 창출의 측면에서 아직은 힘든 부분을 지나고 있지만 사무관리직은 인원을 계속 충원을 하고 있다"며 "통영 지역의 인구소멸 문제 역시 외부 인력 유입이 늘어나면서 완화 신호가 곧 보일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해상풍력 하부구조물 제작 공정 일부 /사진제공 = HSG성동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