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자전거페달 7500km 밟은 증권맨

서울에서 부산, 그리고 다시 서울까지 약 1000km. 부지런히 자전거 페달을 밟아 75시간 내 최종 지점까지 달려야 한다. 잠을 자는 것도, 허기진 배를 채우는 것도 시간 안에서 해결한다. “이러다 죽겠구나 싶은 마음이 들면서도 페달 밟는 걸 멈출수가 없어요.”

곽상준 신한금융투자 영업부 부지점장(부장)은 직장에서 PB(프라이빗 뱅커)로 고객들을 만나고, 투자 관련 팟캐스트를 진행하는 투자 전문가다. 하지만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 중 그가 가장 좋아하는 건 ‘슈퍼 란도너’란 말이다.


란도너스는 제한 시간 내 200km~1200km의 거리를 달리는 비경쟁 자전거 대회다. 같은 해 △200km(제한시간 13시간30분) △300km(20시간) △400km(27시간) △600km(40시간) 등 4개 대회를 모두 완주하면 ‘슈퍼 란도너’ 자격을 얻고,
1000km(75시간)와 1200km(90시간)에 참가할 수 있다.

곽 부장은 지난해 란도너스에 참가해 완주한 거리가 7500km에 달한다.

“처음 자전거를 탄건 10년 전 온 몸에 적신호가 켜지면서에요. 건강을 위해 스쿼시, 헬스, 수영 등을 다 해봤는데 당시엔 평일 따로 시간을 내 운동하는 것 자체가 여의도 증권맨에겐 사치였죠.”


그래서 생각해 낸 게 자전거였다. 집~여의도 약 한시간 거리를 자전거로 출퇴근했고 점점 체력이 쌓였다. 자신이 생긴 그는 자전거 대회에 출전했다.
처음 참가한 자전거 대회에서 상위 20% 안에 들면서 욕심이 커졌다. 국내에 ‘란도너스’가 막 들어온 때였다. 하지만 도입 초기였던 만큼 무엇이든 맨 몸으로 부딪쳐 깨우칠 수 밖에 없었다.

첫 1200km를 달릴 땐 의욕만 앞섰다. “졸립고 힘들어 잠시 쉬고도 싶었지만 시간이 부족해 눈물을 흘리면서 페달을 밟았어요. 완주는 했지만 결국 관절에 무리가 가서 한달동안 걷지 못하는 사태가 생기기도 했죠.”

속초~지리산을 달리는 ‘백두대간 퍼머넌트’는 다시 생각해도 고개가 저어진다. 백두대간 퍼머넌트는 1760km, 4만m 높이의 코스를 4개 시리즈로 나눠 진행한다. 자전거 좀 탄다는 사람들이 도전하는데 국내에서 4개 코스를 모두 완주한 사람은 곽 부장을 포함해 20여명에 불과하다.

“각 코스를 시간 내 완주하기 위해선 밤샘 라이딩이 필수에요. 그렇게 자전거을 탄 채로 졸다 고라니와 정면 충돌하는 사고로 부상을 입었는데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이를 악물고 지리산 성산재를 넘었죠.”

투자 전문가인 그는 란도너의 삶을 통해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나의 한계에 직면하고 뛰어넘었을 때 느끼는 희열은 말로 표현 할 수가 없어요. 달리면서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는 건 또 다른 보상이죠. 투자도 마찬가지에요. 일을 하면서 자괴감에 빠질 때마다 자전거를 탈 때의 나를 떠올려요.”

고통스러워도 란도너스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 프랑스어로 ‘란도너’는 장거리 자전거 여행자를 뜻한다. 추운 겨울이 가고 봄을 기다리는 그는 또다시 자전거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