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구서 통화하며 돈 찾는다면…'어르신, 일단 끊어보세요'

한달만에 보이스피싱 2건을 적극 막아 고객 돈 6300만원을 지켜낸 금융 직원이 있다. NH투자증권 미아지점 윤영미 업무팀장(사진 오른쪽) 이야기다.

보이스피싱의 타깃은 모두 70~80대의 노인들이었다. 이달 초 NH투자증권을 방문한 80대 할아버지는 조심스럽고 속닥거리는 목소리로 직원에게 "지금 돈을 전부 출금해야 된다"고 말을 걸었다. 창구 뒤에 있던 윤 팀장은 이상한 느낌이 들어 할아버지에게 자초지종을 묻자 할아버지는 "금융감독원에서 연락을 받고 4300만원을 인출을 하러 왔다"고 답했다. 이때까지도 할아버지는 "돈을 뽑아 집에 도착할 때까지 전화를 끊지 말라고 했다"며 상대방과 통화를 하고 있는 상황이였다. 윤 팀장은 "도와드리겠다"고 진정시킨 뒤 전화를 먼저 끊도록 했다.


보이스피싱은 치밀했다. 처음에는 우체국을 사칭해 '카드를 발송했는데 반송이 됐다'며 할아버지의 정보를 확인했다. 다음으로 경찰관을 사칭해 '개인 정보가 유출됐다'며 할아버지가 거래하는 은행과 잔액을 확인했다. 전화를 끊을 때는 '금융감독원 모 과장에게 연락이 올 것'이라고 밑밥을 던져 다음에 걸려오는 전화를 믿게 만들었다. 금융감독원 직원을 사칭한 전화는 NH투자증권에 4300만원이 예치돼 있는 사실을 알고 있다며 정보가 유출되었으니 돈을 전액 출금해 집으로 가지고 오라고 지시했다. 경찰관을 만나 서류를 작성하고 현금을 전달하라는 것이다. 끝날 때 까지 전화를 끊지 마라며 끝까지 할아버지 행동을 파악하려고 했다. 든든한 노후자금이 한번의 실수로 날라갈 뻔한 순간이었다.

윤 팀장은 먼저 계좌에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고 할아버지에게 '보이스피싱'에 대해 설명을 드렸다. NH투자증권에 오기 전 다른 금융기관에 들렀는지 등을 파악하고 또다른 보이스피싱에 당하지 않기 위한 대처방법을 안내했다. 배우자에게 연락해 금융사기에 주의할 것을 당부하고 필요시 경찰서에 신고하고 자택이나 다른 곳에 피해있으라고 조언했다. 윤 팀장은 "고객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머릿 속에 보이스피싱 집단이 모여 앉아 차례로 전화를 걸었을 그림이 그려졌다"며 "어르신들이 직접 보이스피싱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니 부모님 생각이 먼저 나더라"라고 말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지난달에는 70대 할머니가 2000만원을 대출해야 한다고 찾아온 것을 윤 팀장이 막았다. 지점에 방문하기 한 시간 전 관리자를 통해 대출 가능여부와 가능금액을 사전 문의 받아 대출 계약이 준비 중이었는데 갑자기 지점 전화로 할머니의 딸에게서 "대출을 한다고 나가셨는데 연락도 안되고 이상하다"는 전화가 왔다. 윤 팀장이 할머니에게 "혹시 감독원에서 온 전화 통화중이세요?"라고 묻자 할머니는 깜짝 놀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윤 팀장이 '사기 전화니 끊으시라'고 말하자 할머니는 망설이다가 화장실로 뛰어가 문을 걸어잠궜다. 화장실에서 한참을 통화하던 할머니는 전화는 끊었지만 계속 '대출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전화를 확인해보니 국제전화 번호였다. 일단 할머니를 안정시키고 금융감독원은 결코 대출을 유도하지 않는다고 설득했다. 만약 2000만원 대출이 그대로 진행됐다면 할머니가 이를 고스란히 갚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윤 팀장은 "보이스피싱을 당하더라도 대출 자금은 피해자 본인이 갚게 돼 있다"며 "70~80대 고객의 돈은 젊은이들이 스스로 벌어 저축하는 돈과 달리 노후 생활자금이기 때문에 이 돈을 갈취당하면 앞으로 살아가시는데 막대한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다"고 했다. NH투자증권은 사고를 방지할 수 있었다는 점이 무엇보다 뿌듯하다는 윤 팀장에게 이달 보이스피싱 예방 우수직원 특별상을 시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