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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훈, “SF의 본질적 정의는 '설명하는 태도'에 있어”

[인터뷰] 7년 만에 장편 소설 ‘고고심령학자’ 낸 배명훈 작가…“인물의 활약이 아닌 사회적 맥락 조명하고 싶어”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입력 : 2017.09.02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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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만에 5번째 장편 소설 '고고심령학자' 낸 배명훈 작가. 배 작가는 "그간 일상에서 보고 들은 벽의 소재를 7년 만에 다시 꺼냈다"면서 "벽이라는 형체를 통해 사회적 관계와 맥락을 짚고 싶었다"고 했다. /사진=김고금평 기자<br />
7년 만에 5번째 장편 소설 '고고심령학자' 낸 배명훈 작가. 배 작가는 "그간 일상에서 보고 들은 벽의 소재를 7년 만에 다시 꺼냈다"면서 "벽이라는 형체를 통해 사회적 관계와 맥락을 짚고 싶었다"고 했다. /사진=김고금평 기자

서울 도심 한복판에 알 수 없는 이유로 갑자기 나타난 30m 높이의 검은 성벽. 눈에 보여도 카메라에 포착되지 않는 기이한 물체의 출현 이후, 역시 원인불명으로 자살하는 사람들의 수도 늘어간다. 인과를 중시하는 과학계에선 설명되지 않는, 그러나 설명해야 하는 상황들.

남다른 소재로 늘 시작부터 호기심을 증폭시키는 배명훈(39) 작가가 7년 만에 내놓은 5번째 장편 소설 ‘고고심령학자’의 주요 얼개다. ‘진격의 거인’에서 이미 확인한 성벽 소재는 상투적인 미장센처럼 보이지만, 이를 ‘해석’하는 그의 솜씨는 우리 생각을 2단계쯤 앞서간다.

성벽 너머 거대 괴물이 출현하는 것도 아니고, 성벽 자체가 지닌 초능력이나 마술을 보여주는 묘기는 더욱 아니다. 성벽은 그 자체가 혼이고, 정신이고, 의식이다. 그 의식에 숨어있는 ‘비밀’, 이를 파헤치는 과정, 그리고 결말은 아무도 쉽게 예상하지 못하는 돌발 변수의 연속이다.

작가는 ‘혼’이라는 비과학적 요소를 철학과 역사 등 인문학적 해석과 과학적 기법으로 스토리를 구성한다. ‘빙의’된 성벽이라는 미스터리한 형체를 ‘고고심령학’이란 학문의 과학적 측정으로 따라가는 것이다.

“가령, 백제시대 사람들의 언어와 생활양식을 아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시대 귀신의 말을 듣는 게 가장 빠르죠. 죽은 혼령의 말을 듣는 심령학에 과학적 관찰이 가능한 고고학을 결합해 풀리지 않는 비밀을 밝혀내려고 한 셈이에요.”

사전에도 없는 ‘고고심령학’이라는 용어는 작가가 처음 만들었다. 주류 학계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학문이기에, 작가는 미지의 학문이 논리적 타당성을 갖도록 소설 전반에 ‘학구적’인 색채를 강하게 드리운다. 우주 전쟁이 아니어도, 인공지능이 출현하지 않아도 ‘과학적 논쟁’의 인문학적 전개만으로도 충분히 SF(공상과학소설)일 수 있음을 작가는 여실히 증명한다.

배명훈 작가. /사진=김고금평 기자<br />
배명훈 작가. /사진=김고금평 기자
“처음에 산발적으로 나타난 벽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의 모양을 맞춰가는 데, 그렇게 빙의된 성벽은 개별 귀신이 아니라, 도시 규모의 정신이 이입되는 형태로 완성돼요. 거대한 정신이 빙의된 도시가 어떻게 망가질 수 있는지, 기존 시스템을 유지하던 정신이 다른 정신으로 대체될 때 느끼는 혼란함을 어떻게 수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싶었어요.”

2007년 단편 ‘누군가를 만났어’를 통해 처음 고고심령학이라는 개념을 소개했던 작가는 그간 여행과 일상에서 도시 속 벽이라는 공간과 접하면서 벽이 지닌 사연을 읽어냈다.

유럽에 남아있는 중세 속 벽 이야기나, 서울 4 대문 안의 성벽 이야기를 7, 8년간 꾸준히 ‘일상적’으로 체화하면서 자연스럽게 꺼낸 것이다. 작가는 “준비 기간은 길었지만, 흔히 볼 수 있는 재료를 오래, 그리고 자주 들여다본 결과물”이라고 했다.

SF 물이 흔히 원칙처럼 쓰는 소재의 규칙성도 배제했다. 남성이 으레 주인공으로 나서는 설정은 여성 4인으로 대체됐고, 내용 어느 한 구석에 나올 법한 재미나 자극 중심의 스토리도 거세됐다. 인간의 내면보다 세계의 본질에 초점을 맞춘 시각도 차별화 요소 중 하나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설은 값싼 오락의 영역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깊은 사색의 철학적 고민에 빠져 증명에 증명을 거듭한다.

“서울이 맞닥뜨린 위기를 타개하는 해법의 주인공으로 꼭 남자여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어요. 또 제 소설의 절정은 기존에 바라보던 세상에 대한 다른 관점, 심오하지만 논쟁하지 않을 수 없는 얘기들에 놓여있어요. SF의 본질적 정의는 ‘설명하는 태도’에 있다고 보거든요.”

새 장편소설 '고고심령학자'에는 SF에서 원칙처럼 쓰이던 남자 주인공 대신 여자 주인공 4명을 내세워 위기에 빠진 서울을 구하기 위한 방법을 찾는다. 새 작품에서 작가는 호기심 넘치는 소재를 통해 더 깊은 철학적 고민을 안겨주는 글쓰기를 선보인다. /사진=김고금평 기자<br />
새 장편소설 '고고심령학자'에는 SF에서 원칙처럼 쓰이던 남자 주인공 대신 여자 주인공 4명을 내세워 위기에 빠진 서울을 구하기 위한 방법을 찾는다. 새 작품에서 작가는 호기심 넘치는 소재를 통해 더 깊은 철학적 고민을 안겨주는 글쓰기를 선보인다. /사진=김고금평 기자

고고심령학의 대가였던 문인지 박사가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난 뒤 제자 조은수, 동료 김은경, 한나 파키노티 박사가 성벽을 둘러싼 의문을 풀어가는 이야기에는 도시와 공간이 그리는 ‘관계의 의미’가 내포돼 있다. 그건 작가가 줄곧 주장해온 사회적 맥락과 닿아있는 핵심 요소다.

벽이 만든 폐쇄적 관계, 그 상황에서 침투된 새로운 정신과의 싸움, 그리고 싸움이 끝난 뒤 정립해야 할 공존의 가치들이 모두 소설이 전하고 싶은 SF 뒤에 숨겨진 인문학적 성찰인 셈이다. 정소연 작가가 이 책을 해설하며 강조한 “성벽이 사라지고 어린 혼령이 사라져도 자라 나갈 관계들”에 대한 사회적 속성의 이야기는 배 작가 글쓰기의 요체이기도 하다.

“한국문학에서 인물이 이야기의 전부라고 흔히 말하는데, 저는 100% 동의하지 않아요. 그것만큼 세계의 본질을 파고드는 작업도 중요하다고 믿거든요. 혼령과 주인공의 이야기 이면에 깔린 사회적 맥락에 더 깊은 관심을 보여주면 좋겠어요.”

◇고고심령학자=배명훈 지음. 북하우스 펴냄. 328쪽/1만4000원.

※ 이 기사는 빠르고 깊이있는 분석정보를 전하는 VIP 머니투데이(vip.mt.co.kr)에 2017년 8월 31일 (12:59)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김고금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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