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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칼럼] 느림의 미학

CEO 칼럼 조운호 웅진식품 대표이사 |입력 : 2004.07.12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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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히 외국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고 있는 한국 여행객들에 대한 연상 이미지라고 하면 '빨리, 빨리'라고 하며, 외국인들이 가장 먼저 배우는 한국 말 역시 '빨리, 빨리'라는 단어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네의 생활문화를 엿보면 빠름 보다는 오히려 느림의 문화인 은근함과 인내가 자리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서서히 가열되어지는 온돌의 주거문화, 밥을 지을 때도 나무의 종류와 불의 세기를 따지며 거의 대부분이 발효음식이었던 음식문화, 삶의 여유로움과 숙성된 깊은 맛을 즐겨왔던 정신문화 등 느림의 미학에 견착하였던 것이 우리의 생활문화였다.

 이동성 문화를 갖고 있어 패스트푸드가 발달하였던 구미권과는 달리 농토에 정착하여 씨를 뿌리고 거두기를 1년 내지는 길게는 5년을 수고하여 수확하였던 정착 문화권인 우리민족이 슬로우푸드 문화와 느림의 미학을 즐겨왔던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그런데 현재에 들어와 왜 우리는 '빨리, 빨리'라는 조급증의 문화를 가지게 되었는가? 자본주의적 맹아가 있기는 하였으나 미처 준비가 안된 가운데 도입된 서구 중심의 시장경제 논리, 한국전쟁 이후 경제부흥의 기치를 내건 압축 성장, 누가 먼저 시장에 물건을 빨리 내놓느냐에 따라 경쟁의 우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공급자 중심의 시장형성이 '빨리, 빨리'라는 문화를 잉태하게 하였던 요인이라 하겠다.

 이러한 '빨리, 빨리' 문화는 성장만을 중시하여 실수에 따른 시행착오를 분석하여 차후 계획에 이를 반영하는 합리적 사고를 등한시하는 결과를 가져왔고 이로 인해 또 다른 사회적 병폐인 '대충주의'와 '적당주의'라는 문화를 우리 사회에 뿌리내리게 했다.

 최근 서울시 교통문제만을 보더라도 '빨리, 빨리'와 '대충, 대충'의 문화가 심각한 정신적 공해 수준으로 성장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제 국제화 시대를 맞이하여 우리가 다시 찾아야 할 것은 고도 압축성장을 통해 얻게 된 경제적 성장은 소중히 하되 이로 인해 부폐된 정서, 문화적 요소는 제거하고 잃어버린 한국적 가치인 여유로움과 느림이 가지는 숙성된 국민성을 찾는 것이다.

 기실 느림의 미학을 게으름의 예찬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 팽배하고 있는 빠름이 잉태한 결과는 환경을 파괴하고 인간을 완전하지 않는 먹거리로 내몰고 있으며, 황폐화된 인간관계를 강요하고 있다.

 느림의 미학이란 인위적으로 가공하여 그 본질을 훼손시키지 않고 자연이 주는 그대로를 천천히 천천히 향유하는 것을 의미하며, 온갖 정성과 인내 속에서 인간을 소중히 생각하는 가치를 의미한다.

 이제 도시를 건설할 때도, 생활에 필요한 온갖 상품을 개발할 때도, 미래의 삶을 계획할 때도 빠름을 우선적인 가치로 두어 인간을 도외시하고 환경을 파괴하는 그러한 시행착오를 되풀이해서는 안된다.

 변화와 개혁의 시대, '이제 변할 것이냐, 말 것이냐'를 선택해야만 하는 이분법적 사고가 지배적인 상황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우리가 변화되어서는 안 될, 소중히 지켜야 할 가치는 느림의 미학이다.

 한 발짝 여유로움이 없어 조급함으로 야기된 시행착오, 인내 속에서 상대를 살펴보지 않아 대립각을 세운 사회적 갈등의 팽배, 이것이 2004년 7월 대한민국의 현주소이다. 새 시대 맏형으로서의 소임을 다하고자 하는 우리가 우선적으로 갖추어야 할 생활의 미학으로서의 "느림"이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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