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한섬, '세기의 결혼' 무산되나

패션업계에서 '세기의 인수합병(M&A)'으로 불리는 SK네트웍스의 한섬 인수 작업이 난항에 빠졌다. 인수가격을 둘러싼 양측의 입장차가 너무 벌어져 일부에서는 사실상 '결렬'로 봐야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그러나 한섬으로선 다른 '대안'이 없어 극적인 합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SK네트웍스는 패션업체 한섬 인수를 둘러싸고 인수금액을 놓고 여전히 견해차를 좁히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현재 양측의 인수 협상은 잠정 중단된 상태다.

패션업계 한 관계자는 "SK네트웍스는 인수금액으로 3000억원대를 제시했지만 한섬 정재봉 사장은 4000억원이상 받아야 한다고 고수해 협상이 잠정 중단됐다"고 밝혔다. 양사는 특히 2007년 한섬에서 분리된 부동산 개발업체 한섬피앤디에 대한 가치 반영에 입장차가 큰 것으로 알려졌다. 한섬피앤디는 한섬이 66.2%, 정재봉 사장이 30.47% 지분을 각각 보유하고 있다. 한섬이 보유한 신사동 땅의 가격 산정 문제에서도 양측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패션업계 기업 매물 '0순위'로 꼽혀온 한섬은 지난 8월 매각 추진을 처음 공식화했다. 당시 한섬과 SK네트웍스는 조회공시 답변을 통해 양측간에 M&A 협상을 벌이고 있다고 공개했다. 패션업계는 이미 양측이 M&A에 합의를 끝냈고, 최종 가격 조율만 남았기 때문에 SK네트웍스의 한섬 인수를 기정사실로 여겼다.


그러나 조율은 의외로 길어졌다. 양측은 정재봉 사장의 한섬 지분(34.64%)과 경영권, 재고물량, 매장 운영권을 놓고 인수 금액에 대한 협상만 두달째 벌였다. 그런데도 최종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협상이 중단됐다. 현재로선 협상이 재개될 지 여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패션사업에 '올인'하려고 달려든 SK네트웍스도 한섬을 비싸서 못 산다면 과연 한섬을 누가 인수하겠느냐"며 "이번 딜이 실패하면 당분간 다른 원매자를 찾기 힘들어 한섬으로선 별다른 대안이 없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양사가 결국 극적인 합의를 볼 수 있다는 관측이다. 양사는 내달 9일 이미 조회공시 답변을 통해 밝힌 내용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재공시를 해야한다. 내달 9일이 이번 인수전의 향방을 알리는 고비인 셈이다.
　
수년째 설만 난무하다 드디어 구체화된 한섬 매각작업이 당초 예상보다 지연되는 것에 대해 증권가도 우려하고 있다. 강희승 신한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계절별로 시장 상황에 대해 신속한 대응이 필요한 의류업체의 속성상 조직을 정비해 사업에 집중해야 한다"며 "한섬이 기업 매각이라는 이슈를 매듭짓지 못한 채 시간을 끌면 실적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밝혔다. 실제 한섬의 3분기 실적은 증권가의 당초 예상치를 밑돌 전망이다.
　
한섬은 타임과 마인, SJSJ, 시스템 등 유명 여성의류 브랜드를 대거 보유한 여성의류 1위 업체다. 정 사장 이후 2세 승계 문제가 불확실해 수년전부터 기업 매각설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