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면칼럼]이슬람채권과 하나님의 나라

#체코 태생의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1860~1911년)가 위대한 이유 중의 하나는 그의 음악이 아름답고 고상하기만 한 게 아니라 천박하고 진부하기 때문입니다. 말러는 자신의 악보에서 "형편없는 마을 음악가나 집시처럼 세상에서 가장 조잡하고 경박하게 연주하라"고 지시합니다.
　
오스트리아 태생의 쇤베르크(1874~1951년)는 무조음악과 12음 기법을 도입해 듣는 사람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악당음정'인 반음을 적극 활용합니다. 쇤베르크가 주장한 것은 '불협화음도 음악'이라는 것입니다. 덕분에 쇤베르크는 현대음악사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습니다.
　
백남준과도 친했던 미국 작곡가 존 케이지(1912~1992년)는 '4분33초'라는 침묵의 작품을 발표합니다. 이 작품에서 연주자가 하는 일은 악장의 시작과 끝에 피아노의 뚜껑을 열었다가 닫는 일뿐입니다. 존 케이지가 던지는 메시지는 '침묵도 음악'이라는 것입니다.

#부처가 열반에 들어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말은 "내가 49년을 설법했지만 한 글자도 말하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금강경에서는 "모든 상은 다 허망하니 만약 모든 상이, 상이 아님을 안다면 여래를 보리라"고 합니다. 자신의 공부가, 자신의 신념이, 자신의 종교가 훌륭하고 완전해서 그것이 절대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순간 곧 '아수라도'에 떨어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중국 선종의 5가7종 중 하나로 우리나라 조계종에 절대적 영향을 미친 임제종의 종조 임제선사는 말합니다. "참 진리를 얻고자 한다면 안으로나 밖으로나 만나는 것마다 죽여 버려라.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큰 스님을 만나면 스님을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여야 어떤 경계에도 얽매이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한국 기독교계를 상징하는 원로 한 분이 대통령의 하야를 위해 싸우겠다고 나섰습니다. 그래도 청와대는 유감 표명조차 하지 못합니다. 여당도 야당도 모두 기독교계의 주장을 수용할 수밖에 없다며 꼬리를 내립니다. 기독교계의 노여움을 산 기획재정부 장관은 과연 얼마나 자리를 보존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섭니다. 이 모든 게 국회에 제출된 '이슬람채권법' 때문입니다.
　
정부는 오일머니에 기반을 둔 이슬람 자본을 적극 유치해 금융위기와 같은 충격에 대비하겠다며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을 추진 중입니다. 이에 대해 기독교계는 이슬람채권에 대한 면세는 특혜고, 테러자금으로 전용될 수도 있다며 극렬히 반대하고 있습니다. 일부 목사님은 이슬람채권법이 통과되면 나라가 망한다고까지 말합니다.
　
분위기가 험악하다보니 이슬람채권에 대한 면세가 특혜가 아니라 실제로는 다른 외화표시채권과 형평성을 맞추는 것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나, 영국 프랑스 미국 일본 등 선진국들도 다양한 방식으로 이슬람채권에 세제혜택을 준다는 주장은 씨도 먹히지 않습니다. 테러자금 전용 논란도 이슬람과 거래되는 모든 금융자산에 해당되는 것이지 이슬람채권에만 관련되는 게 아니라고 설명해도 귀를 막아버립니다.
　
이슬람채권법 논란은 기독교계의 강한 반대로 좌초되는 분위기지만 이번 일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는 것은 조금 멀어진 느낌입니다. 다행일까요, 아니면 불행일까요.
　
위대한 작곡가들은 소음도 음악이고 침묵도 음악이라고 했습니다. 불교에서는 부처를 죽이고 큰 스님도 죽이라고까지 합니다. 그런데 청와대나 국회까지 꼼짝 못하게 할 정도의 힘을 가진 기독교계는 왜 이슬람채권법 추진조차 막을까요. 개신교든 가톨릭이든 이슬람교든 불교든 개별 종교의 진리는 모두 옳고 표현방식에 차이가 있을 뿐인데도 말입니다.